장소성에 기반한 내러티브

[What’s your Flavor] ④ 논스페이스
©Kiwoong Hong
에디터. 박지일  사진. 홍기웅, 김한얼, 윤현기  자료. 논스페이스

 

‹브리크brique› 12호 특집은 맛의 세계 이면에 자리한 ‘맛의 공간’을 다룬다. 먹고 마시는 일은 이제 생존보다 경험 차원에서 더 빈번히 다뤄지고 있다. 소위 SNS 핫플레이스라고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는 곳이 대개 카페나 음식점이듯, 오늘날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는 F&B가 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일상을 환기하는 동시에 오감을 만족시킨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식음 경험은 취향과 소비의 정점에 놓여 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식당과 카페가 쏟아지고 있는 지금, 정교한 기획을 바탕으로 소비자의 이목을 끌고 자생력 높은 공간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맛을 직접 내진 않지만 맛을 한껏 끌어올리는 장소와 분위기, 나아가 서비스까지 설계하는 공간 기획자들이다. 요식업이라는 바탕에 운영자 또는 브랜드의 개성, 독특한 세계관, 콘셉트에 맞게 정제된 각종 디자인 요소를 조화롭게 버무려 고유한 경험과 가치를 선사하는 이들의 작업은 새로운 브랜드가 탄생하는 과정에 가깝다. 공간이 음식의 맛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나 총체적 경험의 만족도를 좌우한다는 점에서 그 전략을 유심히 지켜볼 만하다. 저마다 다른 색깔로 누군가의 취향을 저격하며 F&B 신scene에서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터들과 공간을 소개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맛있다고 했던가. 이제 공간의 맛을 음미해볼 차례다.

 

What’s your Flavor
① 브랜드라는 세계 — 서비스센터
② 공간의 표정, 경험의 온기 — 워프앤우프
③ 맛을 더하는 풍경 — 스튜디오 스토프
장소성에 기반한 내러티브 — 논스페이스
⑤ 공간이 브랜드가 될 때 — 디노바
⑥ 마중물이 되는 건축 — PDM 파트너스
⑦ 차茶를 마주하는 시간 — 오설록 크리에이티브팀
#멋과 맛이 있는 F&B 스폿

 


하루에도 수많은 F&B 공간이 새롭게 나타나고 사라진다. 2018년 뉴욕타임스는 폐업하는 매장들 사이에서도 인스타그래머블을 공략한 곳은 되레 활황을 누리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과거 고객들이 단지 맛을 찾아 매장을 방문했다면 최근에는 맛에 멋까지 더해야 하는 까닭에 관련 기업이나 브랜드는 이러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할 공간 내 즐길 거리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에 자체적으로 콘텐츠를 개발하는 브랜드도 있지만 세계관이 굳건한 디자이너에게 위임해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신중배 대표 ©BRIQUE Magazine

 

‘논스페이스’는 브랜드와 사용자가 만나는 접점을 디자인해 고객 경험의 질을 높이고 브랜드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작업을 전개한다. 공간의 용도와 상업성, 지역의 장소성을 비롯해 대상의 특성을 반영한 이야기를 그려내며 브랜드의 정체성과 철학, 방향성을 담은 공간을 만든다. 공간과 가구는 물론 식탁 위의 수저와 메뉴판 등의 눈에 보이는 것부터 브랜드 전략, 방향, 콘셉트와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까지. 그들의 작업은 넓은 범위에 걸친 대상과 다채로운 표현 방식을 아우른다. 

 

“온라인 시대라고는 하지만 오감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니즈는 계속될 것입니다. F&B는 결국 먹고 마시는 공간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창구로서 역할해야 합니다. 일체화된 하나의 콘셉트를 가지고 특화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내고 이것이 지속가능성을 가지는 것, 생존하는 브랜드의 필수 조건입니다.”신중배 논스페이스 대표 

 

타임투비. 공간 연출에 자연의 요소를 활용하는 것은 논스페이스의 주요 디자인 언어다. ©Kiwoong Hong

 

논스페이스의 구성원과 작동 방식이 궁금합니다.

신중배(이하 생략) 논스페이스는 건축과 공간, 시각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마다 전공은 다르지만, 사례를 조사하고 콘셉트를 설정하는 주요 업무에는 공통으로 참여하죠.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과정에 있어 모든 구성원은 자신의 취향을 주장하기 이전에 공간의 성격과 특성에 집중합니다. 작업을 시작하면 타깃 소비자를 먼저 고려하고 이후 공간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꼼꼼히 살핍니다. 그 이후 브랜드의 가치관과 메뉴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해 여러 대안을 제안하죠. 초반부터 콘셉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습니다. 공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공유하고 다양한 사례 조사를 거쳐 방향성을 설정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합니다. 

 

타임투비 ©Kiwoong Hong

 

공간 디자인을 주로 전개했던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건축도 아우르죠. 건축과 공간 디자인은 작업 방식이나 과정이 상이한데 각각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요? 

저희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공간 디자인의 업역이 건축으로까지 확장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건축이든 공간이든 디자인이라는 관점에서 동일한 맥락의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공간만 디자인하는 경우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공간 디자인의 특성상 땅이나 장소와 조우한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죠. 개인적으로 F&B를 포함한 모든 상업 공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요, 그중 하나는 일관성입니다. 카페를 예로 들면 판매하는 음식과 제품, 브랜드의 철학과 방향성 같은 개념적인 것에서부터 판매 음식에 이르는 물질적 요소까지 모든 게 하나의 언어로 일관되게 표현되어야 하죠. 건축 작업에서는 지역의 특성과 장소성이 곧 공간 디자인과 브랜드의 콘셉트, 방향성을 제안할 수 있는 기초가 되기 때문에 일관성을 계획하는 데 많은 장점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신당. 공간이 위치한 신당동의 지역성을 담아 민속 신앙을 주제로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공존하고 또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는 공간을 연출했다. ©NONESPACE

 

공간 디자인의 비중이 높은 편인데 장소성을 강조하는 것이 인상적이네요.

공간을 만드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다 보니 장소와 연계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공간이란 결국 장소를 뜻하니까요. 새로운 공간을 만들 때 그 장소의 이야기와 기억을 담지 않으면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페터 춤토르 같이 지역성을 강조한 건축가를 좋아합니다. 땅이라는 것은 서울만 해도 1억 8천만 평 정도 된다고 해요. 그중 한 곳에서 상업적인 활동을 하려면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요소가 필요할 겁니다. 그것은 장소적 특성일 수도, 지역적 특성일 수도 있겠죠. 이런 지점들을 따라가다 보면 굳이 튀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디자인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신당’ 프로젝트가 좋은 예시죠. 과거 무당촌을 이루던 신당동의 지역성을 반영해 내러티브를 구상하고 십이지신을 콘텐츠로 메뉴 개발까지 진행했으니까요. 

 

주 신당 ©NONESPACE
주 신당 ©NONESPACE

 

이야기한 주신당을 비롯해 많은 F&B 공간을 디자인했죠. 대부분의 공간이 SNS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F&B 공간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지점이 있나요?

F&B뿐만 아니라 상업 공간의 디자인에서 공통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일관성을 비롯해 디자인의 전체적인 내러티브, 수많은 공간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띌 수 있는 유니크함, 필요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은유성 등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웅녀의 신전. 곰에서 사람이 된 웅녀의 설화를 바탕으로 공간 및 브랜딩의 콘셉트를 설정했다. ©NONESPACE

 

각 요소에 대한 설명을 보충한다면요?

먼저 내러티브는 스토리텔링과 맞닿아 있을 것 같은데요. 다른 점이 있다면 개연성이 있느냐의 여부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유 없는 디자인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러티브를 구상하면서 동시에 우리만의 콘셉트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계획하는 편입니다. 용인에 위치한 카페 ‘타임투비’의 경우 하나의 일관된 콘셉트 아래 전체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공간마다 다른 내러티브를 구상했죠. 

유니크함은 브랜드 홍수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 요소를 뜻합니다. 평범한 90%의 기호를 맞추지 못해도 매니악한 10%를 끌어와 특화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인지할 수 있었죠. 은유의 경우는 주로 규모가 큰 브랜드와 작업할 때 사용하는 전략입니다. 공간과 제품의 질이 좋아도 고착화된 브랜드 이미지는 결코 벗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에 상품은 철저히 숨기고 브랜드의 철학을 반영한 공간으로 표현하곤 하죠. ‘섬세이 테라리움’ 프로젝트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에어샤워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의 쇼룸인데,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는 전시 공간으로 기획했죠. 상품을 직접적으로 홍보하기보다 간적접으로 경험하게 하고, 과정의 끝에서 최종적으로 제품을 접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블루 웨일 ©NONESPACE

 

여러 F&B 공간에서 저마다 다르게 배치한 좌석이 독특한데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카페나 다이닝 공간에서 누구나 한 번씩은 손해 보는 듯한 느낌의 좌석에 앉은 경험이 있을 겁니다. 뷰가 좋은 카페인데 뷰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거나, 화장실이 바로 옆이라 냄새가 새어 나온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같은 비용을 지불하고 같은 음식을 먹는데 어느 좌석에서는 그 가치가 떨어지는 거죠. 대구의 ‘엔제리너스 아일랜드’를 예로 들면, 뷰를 온전히 조망할 수 있는 좌석은 상대적으로 불편한 스툴을 배치하고 뷰의 조망이 어려운 곳은 편안한 소파를 배치했어요. 제주의 카페 ‘OOO’는 단을 올려 앞 좌석에 의해 시야가 방해받지 않도록 했죠. 이처럼 어디에 앉아도 손해본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좌석 배치에 신경 쓰는 편입니다. 

 

OOO ©NONESPACE

 

엔제리너스 아일랜드에서는 미디어아트를 활용했고, 섬세이는 플랜테리어를 강조, 웅녀의 신전은 굉장히 콘셉추얼한 이미지로 표현 했어요. 마치 여러 명의 아티스트가 구현한 듯 다양한데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른 결과 인가요?

최근의 클라이언트는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 저희가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믿고 맡겨주는 편이죠. 공통적인 사항이 있다면 MZ세대를 유도할 만한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정도인데요. 그것을 기반으로 공간의 콘텐츠나 기능을 조금씩 변형해가면서 새로운 제안을 더합니다. 하나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나는 우리의 의사가 반영된 디자인으로요. F&B에서 공간 디자인은 철저하게 브랜드를 서포트하는 요소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F&B 공간은 철저한 상업 디자인이지 예술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엔제리너스 아일랜드 ©Haneol Kim

 

많은 프로젝트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예요.

제가 예전에 살던 곳은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동네였어요. 그곳에서 느껴지는 분명한 정취가 있죠.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게 저뿐만은 아닐 거예요. 코로나 때문에 여행이 자유롭지 못해 가까운 곳에서나마 자연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도 있을 테고요. 섬세이처럼 인공 자연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실제 자연을 대체할 순 없죠. 자연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요소는 물이라고 생각해요. 물이 곧 자연이기도 하고 물의 움직임으로 줄 수 있는 효과가 많죠. 예를 들면 물의 파동이 될 수도 있고 떨어질 때의 소리일 수도 있고요. 엔제리너스의 경우는 강하게 들어오는 자연광을 반사시켜 천장에 그 파동을 표현하고자 했죠. 자연을 그냥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는 편입니다. 다른 각도에서 나무가 만드는 그림자를 바라본다든가, 수공간이라면 빛을 반사하는 물결을 보는 식이죠. 

 

엔제리너스 롯데월드몰. 브랜드 진정성을 전달하고자 디자인이 돋보이기보다는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에 집중했다. ©Haneol Kim

 

혹자는 F&B 디자인이 쉽다고 하지만 누군가는 어렵다고도 하죠. 논스페이스의 경우는 어떤가요?

저희 나름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잘 갖추고 있고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중요 키워드를 유념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주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상업 공간은 수익성을 위해 대중의 선호를 고려하면 되지만 주거의 경우는 거주자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리니까요. 

 

엔제리너스 아일랜드 ©Haneol Kim

 

최근에는 공간 디자이너에게 설계 이외에 콘텐츠 개발이나 브랜딩까지 요구하는 추세죠.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디자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흐름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거죠. 콘셉트에 맞춰 마감재나 오브제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공간이 어떤 기능을 할지, 브랜드의 어떤 특성에 기반해 공간이 롱런할 수 있을지 등에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기획’의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간뿐 아니라 제품이나 판매 유도를 위한 장치, 프로그램, 콘텐츠까지도요. 

 

블루 웨일©NONESPACE

 

유니크한 콘셉트의 공간이 많습니다. 논스페이스가 영감을 얻는 원천이 궁금해요.

어릴 때부터 새로운 공간에 가는 걸 무척 좋아했어요. 호텔이나 레스토랑, 카페 등 소문난 곳이라면 일단 찾아갔죠.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사회초년생시절에도한달월급을모아좋다는 곳을 찾아가곤 했어요. 그게 기반이 되어 공간 디자인을 하고 있고요. 디자인 서적이나 산문집, 인문학 서적 등도 두루두루 살펴보는 편이고 정치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깊지는 않아도 넓게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중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마니아층은 또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많이 생각해요. 결과적으로 통찰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타임투비 ©Kiwoong Hong

 

진행 중인 프로젝트 중 특히 기대되는 작업이 있다면요.

현재 영종도에 위치한 500평 규모의 교회를 대수선하는 프로젝트를 마무리 중입니다. 현재 내부 조경 작업을 진행 중이죠. 카페와 베이커리, 브런치뿐 아니라 전시와 체험 콘텐츠가 담길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곧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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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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