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말이 걸고 싶어서

[Portrait] ① 건축가 김효영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진효숙, 황효철  자료. 김효영건축사사무소

 

지난한 일상을 환기하는 특별한 공간, 그 뒤엔 자기만의 방식으로 묵묵히 공간을 구축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공간 크리에이터들의 ‘초상portrait’을 기록합니다. 저마다의 크리에이티비티로 도시에 다채로운 표정을 더하는 이들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건물이 말을 걸어온다. 소리 내거나 손짓하진 않으나 어딘가 다른 생김새를 한 채로. 벽난로와 굴뚝이 거추장스럽게 붙은 외관, 식빵을 연상케 하는 지붕, 콘크리트 뼈대만 남은 고속도로 휴게소···. 건물 안팎을 드나드는 사람과 무심코 그 앞을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조용히 잡아 끈다.

대다수 사람에게 건축은 비바람을 막는 거대한 움막, 부동산이라는 재산 축적 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나 건축가 김효영은 건축과 사람이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조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아가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건축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도 건축가의 자의식 과잉도 아니다. 자신의 업과 그로 인한 결과물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좀 더 진지하게 여기는 것일 뿐. 건축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물 안 또는 언저리에서 어떤 식으로든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면 그로부터 어떤 의미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뜻밖에 마주하는 사유의 시간, 하다못해 찰나의 엉뚱한 상상이라도?

공간으로 말을 건네는 건축가 김효영을 만났다. 나직하게 반쯤 잠긴 목소리,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주춤주춤하는 손짓은 붉은색 뿔테 안경에 초록색 워크 재킷을 걸친 모습과 사뭇 대조돼 보였다. 철학, 사유, 위트, 긍정이 한데 혼재된 그의 건물 같달까? 김효영이 만든 공간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우선 그에 대한 사소한 궁금증부터 해소해보기로 했다.

 

김효영 소장 ©BRIQUE Magazine

 

하루 일과가 어떻게 돼요?
보통 늦게 일어나요. 10시쯤? 일어나면 애는 학교 가 있고, 아내는 자거나 다른 데 나가 있어요. 아침은 먹을 때 있고 안 먹을 때 있고. 오후에 사무실 와서 할 일 있는지 보다가··· 술 마시러 가요.

매일 마셔요?
거의 매일··· 밖이나 집에서. 술이 맛있어서라기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해요. 제일 싼 술, 덜 취하는 술 길게 마시는 거 좋아하고 항상 보는 건축가들 만나서 했던 얘기 하고 또 해요.

어쩌다 건축가가 됐어요?
어렸을 땐 미술하려고 했어요. 누나가 두 명인데 둘 다 미술을 하거든요. 그런데 부모님이 너무 반대하시더라고요. 건축이 미술과 비슷한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전공을 정했어요. 한 번 정하면 그 후론 잘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라, 그때부터 그냥 쭉 해 온 것 같아요.

전공은 멋모르고 택할 수 있는데 직업은 그렇지 않잖아요.
대학 때 ‘나 건축 설계할 거야’ 이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새 설계 잘하는 사람처럼 돼 있더라고요. (웃음) 설계를 진로로 삼는 사람이 워낙 없으니까.

그마저도 자기만족과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말 아닌가요?
제가 자뻑 기질이 좀 있어요. 혼자 만든 거 보고 감탄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게 좀 필요한 것 같아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얘기하죠. 그래야 스스로 응원하며 일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학생들을 많이 격려하는 편이에요?
아뇨, 뭐라고 많이 하죠. (웃음)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김효영은 박정환·송상헌(심플렉스건축사사무소), 김우상·이대규(카인드건축사사무소)와 함께 2022년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네 번의 지원 끝에 얻은 값진 결과지만 수상자 중 가장 연장자라며 겸연쩍어했다. 하지만 때 맞춰 찾아온 감사한 순간임을 부정하진 않았다. 어느 직업이든 십여 년 이상 꾸준히 제 길을 걸어온 이에게 필요한 건 스킬(역량)보다 그 일을 이어 나갈 의미(동력)일 테니까.

 

젊은 건축가상 수상 소감 영상에서 “의미 있는 건축을 해 나갈 힘을 얻었다”는 소회를 밝혔죠.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말하는 거였나요? 
‘건축으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영향을 주고 싶다’ 정도예요. 건축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으나 어쨌든 제 일은 건축이니까. 건축이 사람들과 더 나은 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서는 건물이 투자할 가치가 있는 자산, 필요에 의한 공간 정도로 생각되는데 더 중요하고 의미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예술의 방법론과 궤를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예술의 방법론이라면?
질문을 던지는 거죠. 예술의 역할은 공공적이고 윤리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잖아요.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의미를 찾아가게 하죠. 저도 건축으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건물은 땅에 고정된 물체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는 사유재 또는 공공재이기에 예술 작품과는 태생부터 다르다. 그런데 어떻게 건축이 예술처럼 역할할 수 있다는 걸까? 김효영이 택한 방법은 ‘낯설게 하기’다. 다만 건축은 아주 낯설어질 수는 없기에, 익숙한 대상으로 새로운 시선을 선사하는 ‘르네 마그리트’식*에 근간을 둔다.

*김효영은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개념을 석사 논문의 주제로 삼은 바 있다.

 

압구정 근린생활시설 ⓒHyosook Chin
인제 스마트 복합쉼터 리모델링 ⓒHyosook Chin

 

건축은 왜 낯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이전에 봤던 방식으로 무언가를 계속 보면 소중함과 중요성을 잊게 되잖아요. 특히 건축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사람과 더 관계할 수 있는데.

사람과 건축이 관계한다는 건 어떤 의미죠?
건축은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할 기능이 여럿 있죠. 생활도 담아야 하고 사적인 것도 보장해줘야 하고 공공적 역할도 하죠. 다만 필요 충족 이상의 역할도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아무리 필요에 따라 지어도 어떤 건물에서 생활하면 그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기 마련이잖아요.

김효영의 건물은 어딘가 조금씩 낯선 구석이 있어요. 이 때문에 그저 ‘특이한 거 좋아하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맞는 이야기예요. 조금 과하고 못생겨 보일 수 있지만 일단 시선을 잡아 끌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건축으로 ‘말을 걸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다른 관계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 있는데 일단 그게 전달이 돼야 하니까. 어떻게 과장되고 특이한지, 그걸 통해 무엇을 강조할 건지 찾는 게 제 작업에서 중요한 일이에요. 건축이 만들어질 땐 여러 조건이 붙어요. 땅의 크기, 자본, 건축주의 취향. 그 과정에 깊게 관여하는 사람으로서 건물이 어떤 성격을 갖고 태어나야 사는 사람, 주변을 지나는 사람,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고민해요.

어떤 방식으로 건물에 성격을 부여하나요? 예를 든다면.
나인혜 소장이 젊은 건축가상 작품집에 비평 한 구절이 기억나요. 제가 “망태기로 채집을 한다”더군요. 성격을 찾기 위해 지어질 건물 주변의 이야기를 채집하는 것 같아요. ‘점촌 기와올린집’은 친구 부모님의 집이었어요. 30평 아파트식 평면에 기와지붕이라는 낯선 조합을 요구하셨죠. 설계 중 레퍼런스를 찾다 1934년 조선일보의 오버코트 광고를 봤는데 갓 쓰고 곰방대 든 사람이 코트를 입은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서로 충돌하는 요구를 이상하다거나 촌스럽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인정하고 더 드러내면 특수성이 되지 않을까. 우리의 기능적 삶과 집에 대한 이상이 어긋난다는 걸 그대로 드러내도 좋겠다 싶었어요.

 

점촌 기와올린집 ⓒHyosook Chin
1934년 조선일보 12월 11일자 오버코트 광고 <이미지 제공=김효영건축사사무소>

 

긍정주의 건축가. 건축주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자 하는 태도에서 붙은 수식어다. 김효영에게 건축주의 취향은 그 건물이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성격의 토대다. 세련되지 않아도 지극히 사적인 욕망이라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요구사항이라는 날것의 재료를 긍정과 과장의 화법으로 치환하는 것. 이는 클라이언트와 건축가 사이에서 김효영이 자기다움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건축주의 요구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편을 택하죠. 그래도 내 이름으로 지어지는데 그런 방식이 부담될 땐 없어요?
그런 순간도 있지만 제가 잘하는 건 건축이니까. 클라이언트의 요구나 이야기가 못나거나 미워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건축주의 이야기가 건물이 가져야 할 중요한 성격, 우리 시대의 어떤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이야기를 오히려 강조하는 동시에 어떻게든 긍정할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려고 해요.

긍정적인 기질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하네요. 평소 성격도 낙천적인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건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사회와 건축의 관계는 긍정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맨날 탓만 하는 건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니까요. 덩어리는 부정적이라도 부분 부분은 긍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이거는 안 돼 저거는 돼, 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일단 다 수용하고 포용해보자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문경 복터진집 ⓒHyosook Chin
ⓒHyosook Chin

 

문경에 위치한 복어 요릿집 ‘복터진집’의 식빵 모양 지붕도 건축주의 요구였나요?
처음엔 ‘신기한 건물’을 요청받았어요. 음식점이다 보니 광고 효과를 노린 거죠. 그러면서도 1층부터 3층까지는 임대를 줄 예정이라 평이하게 지어 달라더군요. 결국 특이하게 할 부분은 머리(지붕)밖에 없었죠. 먼저 확정된 안이 있었는데 어딘가 충분하지 않아 보이는 거예요. 혼자 고민하다가 아치 모양을 그렸는데 통쾌한 느낌을 받았어요.

‘통쾌하다’라···
좀 더 유치한. 뭔가 충분히 유치하달까?

유치할 거면 제대로 유치하게. 이런 거죠?
네. 예전 계획안은 너무 건축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식빵 모양의 지붕을 그려놓고 레퍼런스를 찾았어요. 반대로 디자인을 본 사람들이 이미지를 찾아주기도 하고.

 

복터진집 레퍼런스 <이미지 제공=김효영건축사사무소>

 

그 레퍼런스들이 무척 재밌던데요. 비숑부터 파마한 사람까지. 뒤늦게 그런 이미지들을 찾는 건 어떤 의미예요? 나름의 당위를 부여하는 건가요?
당위보다는 즐거움이에요. 저 건축물을 보고 사람들이 다른 무언가를 상상할 수 있겠구나. 연상되는 무엇이 있다는 게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용기 같은 걸 주는 것 같아요. 초반에 레퍼런스를 찾고 설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뒤늦게 찾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디자인 과정에서 드로잉도 하는데, 건물이 다 지어지고 나서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준공 후 드로잉을 남기는 건 어떤 의도예요?
‘태도’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그 프로젝트만 아니라 다음 프로젝트를 할 때 제가 가져야 할 태도를 생각해요.

 

레퍼런스와 재능있는 사람들이 난무하는 시대. 결국 자기만의 색깔, 스타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태도의 깊이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김효영이 건축물로 말을 건다면 김효영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그림이다. 설계를 하다 미술 작품을 연상하는 순간이 있는데, 작품 자체보다 그 속에 담긴 작가의 태도를 빌려와 작업에 더 몰입하기 위함이라고. 거대한 폐쇄석장을 리모델링할 땐 고갱의 자화상을 떠올렸다. 자신에 대한 연민, 기대, 결심을 품는 화가의 마음으로 버려진 건물의 새로운 시작을 고민했다.

 

동해 폐쇄석장 리모델링 ⓒHyochel Hwang

 

근래 가 본 공간 중 인상적인 데가 있나요?
어··· 없어요. 제가 어딜 잘 안 다녀서. 여행도 별로 안 좋아해요. 이런 성향이 콤플렉스처럼 느껴진 적도 있어요. 건축 일 하는데 건축에 대해 큰 감흥을 느낀 적이 없거든요.

건축물을 보며 크게 감격하는 순간이 없었다는 거네요.
네, 딱히. 전에 그런 일은 있었어요. 대학원생 때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한 분의 수업을 들었는데, 자기는 미술을 하고 있지만 미술 작품을 보고 감흥을 느낀 적이 없다는 거예요.

그분에게서 위로를 받았겠네요!
그렇죠, 그래도 되는구나 싶었죠. 그렇다고 아주 감흥이 없는 건 아녜요. 최근 오랫동안 방치된 대학 건물을 리모델링할 일이 생겨 현장에 방문했는데 중정에는 얼기설기 자란 나무가 있고 건물 안에는 새가 죽어 있더군요. 그런 모습이 좀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평범한 건물도 관심을 가지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일을 즐기는 편인가요? 건축 일을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있다면.
딱히 있지는 않고요. 하게 됐는데 재밌어서···.

어떨 때 제일 재밌어요?
술 마시면서 건축 얘기 할 때? (웃음) 그게 제일 재밌는 것 같아. 날 밤 새서 마감하고 술 마실 때.

 

©BRIQUE Magazine
©BRIQUE Magazine

 

혹, 건축가가 아닌 김효영을 상상해 본 적 있어요?
아뇨. 제가 쓸데없는 전제는 잘 안 해서. (웃음)

요새 고민은 뭐예요?
상을 받고 나서 지금까지의 작업을 돌아볼 일이 많았는데, 이게 맞나? 싶을 때가 있어요. 관계를 생각하지 않는 건축가는 없을 테니까요.

관계보다 더 정확한 언어를 건져 올리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표현의 강도를 고민해요. 말을 걸어도 상대방이 싫어하면 실례가 될 수 있는데 그래도 건축이 말을 거는 게 맞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가 고민되는 거죠. 얼마큼 세게 이야기해야 하나. 덜 세게 해야 하나? 아니면 약한가?

그러면 앞으로 김효영의 건물이 좀 더 순해질 수도 있을까요?
더 세질 수도 있죠. (웃음) 다만 나름의 이유에서 비롯된 형태가 김효영 스타일처럼 보이는 건 경계하려고 해요.

 

©BRIQUE Magazine

 

김효영이 생각하는 좋은 건축이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거? 균형적인 면에서 다른 시선을 주는 건축물도 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건축가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건축가 없어도 집은 지을 수 있잖아요. 직능 이상의 가치를 고민하고 만들려는 사람으로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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