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고 긴 땅 위의 기적 : 폭 2.5미터, 바닥면적 10평에 지은 협소주택

AnLstudio의 '얇디얇은 집'
ⒸHanul Lee
글. 이현준, 전종현  자료. AnLstudio

 

ⒸHanul Lee

 

때는 2014년.
사무와 거주가 모두 가능한 공간을 찾던 젊은 부부는 땅값 비싼 강남에서 괴상한 땅을 발견했다.

소음을 방지하는 완충 녹지의 경계선에 잘려 가로세로 비율이 1:10인 극단적 세장형 대지였다.

 

ⒸAnLstudio

 

하나의 땅, 두 번의 의뢰

 

첫 건축주를 위한 계획안 ⒸAnLstudio

 

경부고속도로와 맞닿은 서초구의 주거 지역은 소음방지용 완충녹지를 끼고 있다. 잠원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 귀퉁이에 녹지와 바로 인접한, 다소 기형적인 세장형 필지가 서울시 소유로 남겨져 있었다. 2014년 개인 사업을 꾸리던 젊은 부부가 이 땅을 우연히 발견했고, 서울에 사무실을 겸한 집을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발품을 팔던 중에 때마침 경매로 공개입찰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이전에 우리가 종로에 디자인했던 ‘몽당주택’에 대해 알고 있던 부부는 작은 집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바탕으로 이처럼 길고 좁은 부지에도 주택 건설이 가능할지 물어왔다. 우리 또한 아주 재밌는 작업이 되리라 예상했고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우리 디자인 프로세스에선 평면을 이리저리 구획하는 작업이 선행되는데 이 경우는 일자로 긴 땅이니, 평면보다는 수직으로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오리라는 판단이 섰다. 순조롭게 설계가 진행되고 시공 직전까지 갔을 때 건축주의 사정으로 프로젝트가 무산되어 아쉬워하던 기억이 난다.

 

첫 건축주를 위한 계획안 ⒸAnLstudio

 

그리고 2016년, 매물로 나온 해당 대지를 매입한 다른 부부가 전 주인의 추천으로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같은 땅에 대한 설계 의뢰를 두 번 받은 셈이다. 2년 전 건축주와 스터디 한 내용을 새 건축주에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았다. 대지여건, 건축주의 가족관계와 건강상태 등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우선 반영한 뒤 최초 설계안을 함께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각 건축주가 원했던 형태가 조금은 달랐지만 같은 형태의 땅에 건축이라는 해석을 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큰 차이라면 이번 건축주에게는 아이가 있었고, 그간 멀리 떨어져 있던 일터와의 간격을 좁혀 통근 시간을 단축함과 동시에 집 안에서 일과 생활을 병행하기 원했다. 그 결과 1층과 지하층은 근린생활시설과 사무실을 겸한 용도로, 위층은 집으로 사용하는 공간기획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 평소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던 건축주에겐 이 좁고 얇은 집에서 살림살이와 동선을 최소화해서 살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집을 지을 수 없는 땅? 있는 땅!

ⒸAnLstudio
ⒸAnLstudio

 

법규를 살펴보면 대지에 건축물을 지을 때는 대지 경계선에서 안쪽으로 최소 50cm 이상 들어와야 한다. ‘얇디얇은 집’은 도로에 면한 대지 길이가 2.5m이므로 양옆으로 50cm씩 제하고 나면 실제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폭은 1.5m가 된다. 이 수치에 꽉 맞게 집을 짓는다 해도 최소한 벽체의 두께가 있으니 집 안에서 실질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공간의 폭은 1m가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부지 뒤쪽으로 갈수록 폭이 넓어져 가장 안쪽 가용 실내 폭을 2.5m가량 확보할 수 있었다.

 

치열하다는 형용만으론 부족한, 고민이 응축된 집을 지어올리기 위해
두 건축가는 어떤 회심의 카드를 내밀었을까?

 

얇은 집, 두터운 솔루션 (1)
일자 계단으로 개방감을 극대화하라

 

통상적으로 건물에서는 반 층 올라간 뒤 꺾어서 나머지 반 층을 올라가는 11자 계단을 쓴다. 그 경우엔 반 층 오르면 막히는 부분이 생긴다. 첫 번째 건축주는 단 차이를 두는 교차형 계단을 선호했고, 그 결과 비교적 복잡한 설계가 나왔다. 반면 ‘얇디얇은 집’의 건축주는 공사의 효율이나 사용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해 일자로 쭉 뻗은 계단 형식을 택했다. 우선 집 전체를 관통하니 건물에 진입하면 4층까지 탁 트인 시선을 확보할 수 있다. 2층에 올라서서도 1층과 3층, 좌우 양옆으로 통하며 사방에 연결지점이 생긴다. 아이 방이나 부부 방 등을 고려했을 때에도 쭉 뻗은 계단이 더 어울리겠다는 판단이 섰다. ‘몽당주택’처럼 말려 올라간 나선형 계단도 하나의 대안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주자의 수직 동선을 파악해 최적의 계단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이기 때문에 실제 사는 사람의 생활패턴에 맞춰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계단 형태를 제안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단에 대한 다양한 스터디 ⒸAnLstudio

출입구에서 올려다 본 계단 ⒸHanul Lee
집 내부 2층 ⒸHanul Lee
커다란 창과 1자형 계단으로 개방감을 확보했다 ⒸHanul Lee

 

얇은 집, 두터운 솔루션 (2)
‘반半 사적’인 공간을 확보하라

 

가족 간에도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이 필요하다. ‘반(半) 사적’이라고 해서, 가족 아닌 사람들이 와서 쓸 수 있다는, ‘반(半) 개방’의 의미는 아니었다. 주택 내에서는 구획된 성격에 따라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문으로 인해 단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얇디얇은 집’의 경우 수평적이 아닌 수직으로 확장되니 이미 층으로 구분이 된다. 그러면 구태여 여닫는 행위로까지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층의 공간은 여닫이 문을 거쳐야 하는 ‘강한 구획’이 아니라 미닫이문을 활용한 ‘약한 구획’의 연속이다. 필요하다면 문을 밀고 당겨 공간을 나눌 수도, 개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좁은 폭을 가진 집에서 거주자가 이동함에 따라 풍부한 공간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가족인데 뭐 어때?”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순 있지만, 가족이어도 지킬 건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기 때문이다. 부엌, 거실과 같이 가족이 함께 쓰는 공간을 2층에 배치했다. 2층을 거쳐 자기 공간이 배치된 3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다. 각자의 것은 각자가 가지고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면 된다는 생각이다. 내가 잠자는 공간에서 바로 문을 열고 사람들 틈으로 나가는 것도 어쩌면 굉장히 폭력적인 공간 구성일 수 있다. ‘반(半) 사적’이란 표현은 가족과 외부인보다는 가족 간에 관한 것이다.

 

미닫이문으로 구획한 3층 마스터룸 ⒸHanul Lee
ⒸHanul Lee

 

얇은 집, 두터운 솔루션 (3)
내부 동선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기

 

사실 ‘얇디얇은 집’에는 다른 동선을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없었다. 결국 동선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필연적인 동선을 받아들이는 관점을 바꾸면 주거의 경험이 달라진다는 생각의 변환이 필요하다. 동선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는 것은 다소 일방적인 주장이다. 동선의 효율성과 기능성이 다른 어떤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조리하는 주방과 밥을 먹는 식탁이 가까우면 만들어서 먹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하다. 혼자 먹는 경우엔 조리 직후 바로 먹으면 된다. 그러나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과연 편할까? 기능을 조금 내려놓았을 때 얻는 즐거움이 크다면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사람이 생활하는 주택의 경우 약간의 불편함을 수반하지만, 더 ‘즐거운’ 것이 있다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오토매틱 자동차를 타다가 수동으로 바꿨다. 어쨌든 조작으로 인한 불편함이 따른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 차를 타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자꾸만 타고싶어진다면 그건 불편함이 아니라 즐거움일 수 있다.

 

ⒸHanul Lee

ⒸHanul Lee

ⒸHan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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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장형 필지에 따른 정면과 측면의 극적인 반전이야말로 ‘얇디얇은 집’만의 묘미.
도로를 접한 정면, 자연을 접한 측면의 외관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본다.

 

ⒸHanul Lee

 

가만히 있어도 자연이 깃든다.

 

1층과 2층의 커다란 통창은 햇빛을 들이기 위해 부부가 거의 상시 개방해 놓는다. 남편은 항상 1층 또는 지하의 사무실에 있고 아이는 집안 곳곳을 뛰어논다. 거주자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외부 시선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부인은 식탁이나 볕이 좋은 날은 옥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책 읽기를 즐긴다. 집 20m 앞에 이런 녹지가 자리하기는 드물다. 규모가 작은 숲이라 부를 만한 자연이 이렇게 지척에 있으니 어쩌면 자연을 ‘조망한다’ 보다는 자연을 ‘품고 산다’가 어울릴 것이다. 때가 되면 해가 들고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면 나무가 있고 새가 날아드는 것, 애써 찾아보지 않아도 언뜻언뜻 즐길 수 있는 자연이 산재한다는 것 때문에 건축주의 만족도도 매우 높다. 다른 무엇보다 큰 창을 통해 녹지를 보며 사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맘에 들어 했다. 집이 얇은 덕에 새가 지저귀고 풍성한 햇빛이 드는 자연이 일상이 됨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부동산학적으로만 접근한다면 고속도로와 인접한 집은 복잡하고 시끄럽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공간적으로 접근해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건 뭘까를 고민하면 조금은 달리 보인다. ‘얇디얇은 집’은 고속도로 바로 옆이지만 차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어느 땅이나 단점은 있다. 건축주가 필요한 것을 취하되 필연적인 단점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더 중요하다.

 

녹지 조망범위 시뮬레이션 ⒸAnLstudio

 

집 내부에서 바라본 완충녹지 ⒸHanu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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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된 창문인지

 

‘얇디얇은 집’은 사선으로 뚫린 길 하나에 수평적 공간이 기능적으로 층층이 나뉜 집이다. 달리 말해 공간의 변화가 다이나믹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파트에 동일한 여러 세대를 들이듯, 웨딩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아가는 식 외에는 계획의 여지가 없는 조건이다. 그러다 보니 외벽에 창문을 낼 때도 기능적인 면만 고려한다면 단순하게 네모난 모양 일색으로 무미건조한 벽처럼 보이는 게 우려됐다. 창문의 배열을 어느 정도 나누고 구성하는 게 비례 상 좋아 보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창이 날 위치를 정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내부 공간을 기능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식탁이 놓인 곳에서는 앉아있는 높이에서 외부를 조망하기에 가장 적절한 위치에 창을 낸다. 창의 넓이나 길이 등 크기 결정에서는 건축주와의 협의를 거친다. 심미적으로 해석될 외부에서 바라본 창의 배열과 구성 등은 건축가의 몫이다.

ⒸAnLstudio 창호 크기 변경과정
ⒸHanul Lee

 

코르크, 너 맞구나!

 

나무, 녹지와 집이 아름답게 어우러질 수 있는 외벽 재료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고민했다. 넓은 면적의 측면인 만큼 지루해 보이지 않도록 단일 재료, 단일 색상은 지양했다. 가장 흔히 쓰이는 재료의 흰 벽을 비롯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재료를 건축주와 함께 찾다가 코르크 이야기가 나왔다. 나무의 작은 입자들을 강하게 압축한 후 발수 코팅 처리한 외장재다. 그럼에도 천연 재료 특성상 물에 젖고 시간에 따라 변색도 진행된다. 적절한 유지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적인 측면이 강조된 외장재다. 초록이 우거지면 하나의 캔버스처럼 보이기도 하고, 겨울이나 비가 잦은 계절엔 색이 짙어져 나뭇가지와 흙이 도드라지는 주변 경관과도 인상적인 조화를 이룰 것이라 예상했다.흰 면과 코르크면이 대치되며 만드는 비례의 미감을 살렸다. 코르크벽은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1층에서 지하층 오피스로 들어갈 때 코르크면이 입구로 구분될 수 있도록 했다.

외벽에 대한 스터디 ⒸAnLstudio
ⒸHanul Lee

ⒸHanul Lee

우리 집이 생길지는 아무도 몰랐었지

 

사실 ‘얇디얇은 집’이 준공 허가를 받자 구청에 민원이 접수됐다. ‘이 집이 여기 들어서는게 과연 맞느냐’,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땅에 어떻게 허가를 내느냐’며 가장 크게 반발했던 주체는 바로 이 다가구주택 건물주였다. 그러나 건축 허가에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춘 필지에 허가를 내어주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옆 건물주는 불법으로 다세대주택을 개조해 임대업을 하고 있었다. 밀착된 옆 건물과의 관계를 어떻게 매끄럽게 정착시킬 것인지 고민했다. 다세대주택을 면한 쪽으로는 큰 창을 내지 않았다. 환기 목적의 높고 작은 창에도 시선이 교차되지 않도록 불투명한 재질의 유리를 사용했다. 밀도 때문에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원치 않는 시선을 교차하는 등의 문제는 미연에 최대한 방지하려 했다.

 

ⒸAnLStudio
ⒸHanul Lee

ⒸHanul Lee

 

“다 못짓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결국 건물이 지어지고 선례를 쫓아 그 지역에 비슷한 예들이 차츰 늘어난다.
이런 땅에는 집 못지으니 원래 있던 집을 고쳐쓰거나 옆 필지와 합칠것을 종용하던 부동산들이,
이제는 ‘이 땅 사세요’ ‘여기 집 지을 수 있어요’ ‘이 집도 지었는 걸요’라고 말하는 거다.
땅 모양이 어떻든 나의 취향, 성향과 맞다면 그 땅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다는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

 

(왼쪽부터) AnLstudio를 이끌고 있는 신민재, 안기현 소장 ⒸMAGAZINE BRIQUE

 

Q. 신민재 소장이 ‘얇디얇은 집’에 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일반적이지 않은 공간이기에, 이 곳에 사는 것을 추천하겠냐고 묻는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고 답할 것 같다. 물론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모든 집은 건축가가 살고 싶게 짓는 게 아니라 의뢰자가 어려움 없이 오래도록 살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얇디얇은 집’은 오로지 이 집을 의뢰한 건축주만을 위한 집이다. 팔려고 지은 집도 아니고, 평생 살 작정으로 자신에게 딱 맞는 공간을 고른 것이다. 분명 ‘저런 데서 어떻게 살아?’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간단하다. 그 집에 안 살면 그만이다. 건축가가 의뢰인의 집에 산다고 상상을 하는 것은 어쩌면 난처할 경험일수도 있겠다. 이 집을 만들며 모두가 기성복에 맞춰 살고 있는 세상에서 기성복이 맞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기성복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느낌과 용기같은 것 말이다. ‘그래, 저렇게까지 집을 짓는데 나한테 맞는 것 좀 찾는게 무슨 큰 문제야?’ 란 생각을 보통 사람들이 한 번쯤 해봤으면 좋겠다.

 

Q. 자투리 땅에 대한 수요와 건축적인 해법들이 늘어날까?

지금까지 도시의 필지는 건축 법규에 크게 어긋나지 않아 빨리 지어 해치울 수 있는 집, 대지가 균일해 짓기 편한 집으로 먼저 채워졌다. 하지만 현재 도시에는 이런 땅이 거의 없다. 만들고 남은 조각과 자투리 땅만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예전에는 조건도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드니 일부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던 땅이었을지 모르나, 이제 조건과 수요가 맞는 사람들에겐 좋은 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얇고 긴 땅을 흔히들 ‘나쁜 땅’, ‘집 못 짓는 땅’이라고들 하는데, 일반적이지 않다고 나쁜 건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서 할 수 있는 범위를 생각해보고, 그 조건을 수용해 살 수 있다면 집을 지으면 된다.  

 

Q. 집을 만들면서 가장 좋았던 점을 안기현 소장이 풀어준다면?

거주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 그게 가장 보람있다. 이 집의 특징은 이미 땅에서부터 결정지어져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뭔가 특별한걸 했다기보다 땅부터가 유별났던것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이 건축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쥐었던 것도 그렇다. 우리 디자인이 빼어나서, 우리에게 엄청난 능력이 있어서 이 집을 완성해냈다기보다 좋은 기회가 왔고, 건축주와의 원활한 소통을 통해 만족할만한 결과를 도출해 냈다는 것. 가장 주목할 부분은 이렇게 얇고 좁은 집에 맞출 수 있는 삶의 양식을 갖춘 사람이 이 집에서 너무나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180도 달라진 시공사 관계자의 반응도 흥미롭다. 처음에는 ‘이게 말이 되는 집이냐’하며 불만을 토로하시다가 막상 완성된 건물을 보시곤 ‘이렇게 지을수도 있구나’ ‘집 짓길 잘했다’라며 입을 모았다.

 

Q. 안기현 소장 말을 들어보니 속칭, 운빨이라고 해석되는데…(웃음) 신민재 소장은 동의하나?

개인적인 생각은 좀 다르다. 모두가 이 땅에 건물을 올릴 수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지을 수 있겠다’ ‘지었으면 좋겠다’ 는 판단을 건축주에게 먼저 내놓았다. 다른 건축가가 이 땅에 계획했다면 물론 비슷한 형태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우리가 확실히 잘했다고 생각한다. 운빨이 절대 아니라는 의미다. 여느 집들을 지을 땐 으레 ‘잘 되겠지’하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 집에 살 의향이 충만한, 건축주라는 지원군이 있었음에도 ‘얇디얇은 집’을 지으면서는 섣불리 예상할 수 없었다. 우리가 나서서 할 수 있다고 말한 집이었기 때문이다. 건축주가 이 집에 살며 느끼는 만족이 우리에게 더 큰 울림이 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다. 우리 스스로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Q. 혹시 ‘얇디얇은 집’은 우리 주거 생태계를 바꿀 수 있을까?

생태계보다 ‘가능성’으로 보고싶다. 몽당주택과 비슷한 케이스다. 몽당은 폭이 좁다기보다 면적이 작았다. 역시 모두가 그 땅엔 건물을 못 올린다고 말했던. 그런데 그 건물이 지어지고 그 지역에 비슷한 예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땅에는 집 못지으니 원래 있던 집을 고쳐쓰거나 옆 필지와 합칠것을 종용하던 부동산들이, 이제는 ‘이 땅 사세요’, ‘여기 집 지을 수 있어요’, ‘이 집도 지었는걸요’, 라고 말하게 된거다. 닫혀 있던 부분에서 어떤 잠금장치를 해제했다는 점에서 ‘얇디얇은 집’도 가능성을 시사하게 된 게 아닐까. 요상하게 생긴 땅이지만 그곳과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맞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집을 짓고 살수 있다는 사례만 되어준다면 좋겠다. 그 정도면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선택한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생태계까지는 아니다. (웃음) 

 

Q. AnLstudio가 생각하는 ‘좋은 집’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는 사람의 취향이 반영된 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성 아파트, 기성 공간이 그냥 좋은거라고 받아들인다. 남들이 다 좋아하니까 ‘아 이게 좋은거구나’ 쉽게 판단을 내리는데, 정작 본인이 좋아하는게 뭔지,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한다. 이를테면 내가 좋아하는 어떤 브랜드가 있는데, 왜 좋아하는지 고민해보면 ‘천을 잘 다뤄서’ ‘특유의 패턴 조작이 돋보여서’ ‘브랜드만의 애티튜드가 맘에 들어서’ 같은 일련의 이유들이 생긴다. 이제는 집과 공간을 선택함에도 그런 기준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집을 새로 짓든, 기존 집을 다시 매만지든, 자기만의 오롯한 취향, 생각과 방향성을 조금이라도 반영하고자 한다면 그게 바로 좋은 집 같다. 세간의 평가에 구애받지 않고 내 시선으로 볼 때 좋으면 그만인 거다. 사는 사람에게 좋은 곳이 정말 좋은 집이니까. 그런 집이 많아지면 우리 주거 공간, 주거 문화도 한걸음 더 내딛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Hanul Lee

ⒸHanul Lee

 


 

AnLstudio  www.anlstudio.com 

AnLstudio는 건축, 인테리어 등 공간 디자인부터 직접 제작하는 수작업까지 포함한 시공, 건축물의 경계를 넘나드는 각종 작업(설치미술, 리서치, 전시기획)에 참여하며 좀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제너럴리스트 그룹을 지향한다. 수직적인 구조가 되기 쉬운 사무소가 아니라 유연한 구조를 갖는 스튜디오로 운영하며 수평적으로 연결된 작업 방식을 추구한다. 외부 전문가, 협업 작가, 나아가 클라이언트까지 그들의 다양한 생각과 문화를 흡수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다. 좁은 시야에 갇히지 않고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21세기의 공간 조건-과거와 현재, 지역과 전체, 이상과 현실, 개인과 집단 등-을 탐구하며 다양한 규모의 삶과 도시, 정보를 해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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