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의 집념과 건축가의 의지가 모인 ‘젊은 날의 초상’

[QnA] B.U.S 건축의 ‘고고익선’
ⒸMAGAZINE BRIQUE
글. 전종현, 김윤선  자료. B.U.S 건축

 

제주도의 한 바닷가 마을에 건물 네 동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쌍둥이처럼 똑같은 집 두 채, 집주인들이 운영하는 카레 가게, 그리고 그들이 공유하는 다목적동은 대지 하나를 기능적으로 분할해 각자의 동선에 맞는 작은 마당을 품고 있다. 집을 지은 목표는 단 하나. 제주도 바다 풍경을 맘껏 즐기고 싶다는 것! 높은 공간감과 광활한 바다를 집으로 들이려는 우정 깊은 두 남자의 집념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의지의 건축가들을 만나 ‘젊은 날의 초상’ 같은 열정 어린 집으로 완성됐다. B.U.S 건축의 박지현, 조성학 소장을 만나 이 집, 고고익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Kyung Roh

 

우정의 산물

이번 건축주는 어떤 분이었나요?

두 명의 남편이었어요. 오랫동안 우정을 쌓은 30대 중반의 친구 사이로, 취미가 여행이라 다양한 나라를 다니면서 여러 공간을 체험한 기억이 뇌리에 깊게 박혔던 분들이었죠. 두 분 모두 직업이 간호사였는데 심신의 피로감 때문에 직업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와서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에서 여유를 찾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게 집 짓기의 시발점이었고. 아내분들이 건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게 좀 의외였는데 결과적으로 남편분들의 우정을 더욱 끈끈하게 만드는 과정의 일부였던 거 같아요.

 

만약 내 남편이 절친과 함께 카레집 한다고 부산에서 제주도 내려가자고 하면 이혼하자고 할 것 같아요. “이혼하고 네 친구랑 살아” 이러면서.

음. 두 분이 확실히 특이해요. 굉장히 독특하고 노매드적 삶을 실천한달까. 일단 일정한 장소를 기반으로 일을 지속하는 성격의 직업이 아닌 게 큰 특징이라고 봐요. 아내분들중 한 분은 크루즈 회사에서 일하시고 다른 분은 카레집을 함께 운영하려고 준비했었고. 그래서 가족 간에 불화가 생기는 큰 제약은 없었어요.

 

ⒸKyung Roh
ⒸKyung Roh
ⒸKyung Roh

 

높이 더 높이

이번 프로젝트의 슬로건을 정하자면 ‘높게 더 높게’ 아닐까요.

건축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공간은 면적보다는 높이에 초점이 맞춰 있었어요. 대략 4~6m의 층고를 원한다고 명확하게 말했죠. 오히려 너비보다 층고가 더 클 정도로 높은 공간감을 만드는 게 핵심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냐 하면 예산이나 부가가치세에 대한 걱정보다 공간 높이에 대한 생각이 프로젝트의 시작과 끝을 관통했어요.

게다가 해당 대지를 구입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바다에 대한 로망 때문이었는데요. 바다를 온전히 보려면 최소한 3개 층은 올라가야 하는데 예산과 법규에 대한 이슈 때문에 2개 층 이상 올리기가 힘든 와중에도 어떻게든 최대한 높은 곳에서 온전히 바다를 바라보고 싶은 마음을 피력했죠. 다락에 가면 엄청나게 큰 창을 통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데 날씨가 안 좋은 날이면 멀리서 태풍 오는 게 보여도 기후에 대한 두려움이 없더라고요.

나중에 생길 일을 걱정하거나 철두철미하게 계산하기 보다 본인이 원하는 경험과 상황에 대한 욕구를 중시하던 직관적인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는 ‘고고익선(高高益善)’이란 단어가 프로젝트를 지배했었죠.

 

ⒸKyung Roh

 

그럼 집 이름이 ‘고고익선’으로 된 건 건축주 뜻인가요?

그건 저희가 먼저 제안했어요. 미팅을 하면서 법규 때문에 높이 올릴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처해도 높으면 좋겠다고 끊임없이 강조를 하더라고요. 이게 안 되는 일인데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하니까 그 상황이 참 난감했죠.(웃음) 임대 사업자나 면적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다다익선(多多益善)’이란 말을 즐겨 쓰는데 이분들은 면적보다 높이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하니 ‘다다익선’이 아니라 ‘고고익선’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집 이름도 그렇게 지었어요.

 

계획 대 변경

초기에는 증축안으로 진행하다 나중에 신축안으로 바꿨다고 들었어요. 처음 증축으로 시작한 이유는 뭔가요?

이유는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예산이에요. 건축주가 원래 제주에 살던 분들이 아니라서 대지를 구입해야 했고 제주도는 섬이라 내륙보다 공사비가 더 많이 나오는 편이라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걸 처리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기존에 있던 집의 보존 상태가 꽤 좋았어요. 옛 흔적을 유지하면서 건축주의 요구 사항을 반영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건축주는 처음에 신축도 고려하고 있었는데 기존 건물이 어떻게 리모델링되고 변화를 겪는지에 대한 디자인 미팅을 하면서 저희가 제시한 증축안에 찬성했어요.

 

ⒸB.U.S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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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으로 급선회한 이유가 더욱 궁금해지네요.

일단 증축안에서 건축주가 가장 아쉬워한 점은 면적이었어요. 증축보다 신축을 할 때 연면적이 10평 이상 넓어질 수 있었거든요. 그리고 바다…증축한 건물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이 기대치에 못 미쳤어요. 바다를 더 크게 조망할 수 있는 장치를 원했죠. 마지막으로는 평등한 공간인데요. 건축주가 두 세대이고 라이프스타일이 서로 다른데도 쌍둥이처럼 똑같은 주거 공간을 원했어요. 평면, 입면, 창문까지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일치하는! 서로의 집이 다른 상황에서 입주했을 때 생기는 시기와 질투를 미연에 방지하고 싶었나봐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 결정적인 시발점은 한 시공사의 제안 때문이었어요. 증축과 비슷한 비용으로 신축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사필귀정인지 결국 그 시공사는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했고, 예견했던 대로 공사비는 늘어났죠. 지금 들어간 공사비를 염두에 두면 애초에 신축을 제안했을지도 몰라요.

 

대체 공사 비용이 얼마나 늘어났길래…

처음 잡은 예산보다 30~40% 이상 커졌어요. 허허.

 

정말 똑같게

근데 집 두 채가 물리적으로 똑같다고 실제 똑같은 집에서 사는 느낌이 나나요? 불가능해 보이는데.

모든 게 같아도 대지 배치가 달라지는 순간 ‘다른 집’이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는데 요구 사항이 분명하더라고요. 건축주가 중시하는 의견을 침범하는 건 저희 조언 범위를 넘는다고 생각했어요. 어느 선까지는 계속 제안하지만 반응이 없으면 그 이후부터 건축주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요.

 

ⒸB.U.S Architecture

 

세대 간 라이프스타일과 취향이 다를 텐데 이건 조율이 됐나요?

시공 과정에서 조율이 많이 됐어요. 시공자로서 건축주가 상주했는데 자신의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덕분에 각자 집을 꾸미는 단계로 넘어가자 개성이 나타났어요. 어떤 집에는 해먹이 생기기도 하고, 아이가 있는 집에는 디테일이 다르게 풀리기도 했죠. 기본적인 공간 구성이 동일한 거지 내부 장치들은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서 변화를 겪었어요.

 

집념의 알뜰

건축주가 상상 밖의 알뜰함(?)을 보였다고 들었어요.

좀 전에 말한 대로 건축주가 직접 공사에 참여했어요. 근데 건축주 직영 공사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에요. 직영 공사는 건축주가 발주하는 건데, 이분들은 시공사에 일용직으로 취직을 했어요. 현장 막내로 벽돌 나르고 커피 타고…
짓는 건물이 자기 집이긴 하지만 현장에서는 엄연히 시공사에 고용된 노동자라서 회사 대표님 눈치를 보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는 시공 부분이 있어도 바로 말을 못 하고 저희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대신 전달해달라고 하는 등 에피소드가 많아요. 시공사 대표님과 얘기하고 있으면 건축주 분이 커피를 타서 가져오는데 날이 갈수록 얼굴이 수척해지더라고요.

 

ⒸB.U.S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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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여간 특이한 분들이 아닌데 지금까지 만난 건축주 중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일까요?

레벨 1~10으로 가정할 때 상대적으로 레벨 10입니다. 특이한 설계를 요구하는 것과는 또 다른 특이함이에요. 직접 시공에 참여하면서 자기 집을 완성하고 시련에 부딪히면서도 설계안을 반드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해내는 등 보통 분들이 아니었어요. 현실적인 대안에 결코 타협하지 않고, 공사가 진행될 때도 계속 질문하고 소통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죠.

 

비유에스 건축의 박지현 소장(왼쪽)과 조성학 소장 ⒸBRIQUE Magazine

 

완성해야만 한다

증축과 신축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시련 속에서도 프로젝트를 포기하지 않았네요.

주택 하나를 완성하는 건 해당 건축주에게 일생일대의 사건이고, 저희에게는 커다란 보람으로 다가와요. 아무리 과정이 복잡하고 변화가 난무해도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는 거죠. 특히 고고익선은 저희가 제주도에 짓는 첫 프로젝트라서 더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혼이 나갈 만 한데, 혹 특별한 멘탈 관리법이 있을까요?

음…저희는 최종 결과물이 베스트라고 믿어요. 지나간 것에 대해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죠. 지금도 증축안보다 실제 완성된 신축안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확고하답니다. 저희 아이디어가 실제 건축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 같아요.

 

정말 꼼꼼한 그들

증축에서 신축으로 설계 방향을 재확정하면서 주요 고려 사항은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제일 중요한 건 배치였어요. 전원주택을 지을 땐 일반적으로 대지 한 쪽에 건물 한 덩어리를 놓고 나머지 공간을 마당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전원생활의 로망 중 하나가 넓은 마당에서 BBQ 해먹고 잔디 관리하고 그런 거잖아요. 근데 실제 넓은 마당을 가진 집에서 10년 이상 생활한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마당 관리가 너무 어렵고, 휑한 모습을 보면 기능적인 의구심이 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전원주택에 딸린 넓은 마당에 대한 믿음을 깨려고 했어요. 마침 주택만 두 채에다가 카레집 건물, 다목적동까지 총 네 동의 건물들이 필요하니까 마당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비록 크기는 작지만 각자의 마당을 점유하도록 전체 배치를 바꿔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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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푸르른 마당이 분리되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건 동선이 분리된다는 점이죠. 만약 건물이 하나였다면 가게에 들른 손님과 집에 거주하는 사람의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사생활을 침해받게 되요. 그래서 카레집에 가는 사람은 메인 도로로 들어가고, 가게 앞에 있는 마당을 정원처럼 사용하는 거죠. 일종의 대마당인데요. 대신 집은 현관문을 의도적으로 뒤쪽에 배치해서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했어요. 각 집에는 작더라도 각자의 앞마당을 갖게 되죠. 이렇게 기능 별로 마당이 분리가 되니까 건축주 분도 오랜 기간 살진 않았지만 만족하는 것 같아요.

 

ⒸB.U.S Architecture

 

다목적동은 왜 만든 거예요?

옛날에 대문이 있던 자리인데요. 다목적동은 외부에서 집 앞을 바라보는 시선과 발길을 심리적으로 차단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이건 1차적인 기능이고 주된 용도는 두 가족의 별관 개념이죠. 건축주가 골동품, 미술품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어서 나중에 벼룩시장 같은 잡화점이나 판매점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다목적동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고 하던데요(웃음)

이건 건축주와 저희만 아는 건데요. 여기에서 느낄 수 있는 주변 풍광이 정말 끝내줘요. 다목적동 앞에 마늘밭이 있어요. 봄, 가을 두 번 작물을 심기 때문에 푸릇프릇한 마늘밭이 제주도 특유의 돌담과 어우러지는 광경이 정말 멋지죠. 바다 전망도 좋지만 저희는 여기에서 향유할 수 있는 풍경에 감동받았어요.

 

ⒸKyung Roh

 

집 내부로 들어가 볼까요. 긴 계단은 주요 동선이자 전체 공간을 구획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벽이 없어서 내부가 뻥 뚫려 있어요. 가족 간 프라이버시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나요?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면 다목적동에 숨으면 돼요.(웃음) 일단 집의 평수가 굉장히 작은 편이에요. 그래서 개방감을 유지하는 게 무척 중요했어요. 사실 이 정도로 집 전체가 개방감을 갖게 설계하는 기회도 흔치 않죠. 건축주 분의 라이프스타일과 어긋나지 않았기 때문에 실현이 가능한 설계였어요. 지금은 완전히 개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벽을 만들어 공간을 구분하고 시선을 분리할 수 있는 준비는 해놨어요. 전기선이나 스위치 등이요. 가족 구성원의 변화에 대비한 공간적인 포석이죠.

 

ⒸKyung R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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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창 아래 설치한 해먹, 하부를 비튼 철골 난간, 채광이 아닌 바다 조망에 최적화된 창까지 내부 곳곳에서 건축주의 집념이 느껴집니다.

많은 건축주 분들이 설계 초기에 본인이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아요. 그러다 평면이 완성되고 모형과 3D 모델링이 나오면 그제서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들이 내면에서 올라오며 입 밖으로 나오게 되죠.
이번 프로젝트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특히 건축주들이 시공 현장에 직접 참여하다 보니 공간을 볼 때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시도하고 싶은 것들이 계속 추가됐어요. 난간만 하더라도 건축주 분이 직접 제작했는데, 계단 폭이 좁아서 난간을 일자로 박으면 그만큼 발디딜 공간이 좁아지거든요. 해먹에 대한 로망은 설계 초기 단계부터 있었고요. 천창을 보며 그물에 눕고 싶다, 이런 거죠. 천창도 원래는 1개였는데 이참에 2개로 늘렸죠.

저희는 집 짓기에서 건축주의 로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집을 만드는 동기와 완성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없고 무리되는 선이 아니라면 최대한 그 꿈을 응원하려고 해요. 근데 해먹은 실제 사용해보니 생각보다 사용 빈도수가 적고 만족도가 높지 않다고 들었어요. 하하.

 

ⒸKyung Roh

 

원초적으로

처음 계획안을 전달할 때 마크 앙투안 로지에(Marc Antoine Laugier)의 ‘원시 오두막(The Primitive Hut)’ 개념을 주요 예시로 들었다던데…진심인가요?

어…사실을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는 예산이 빠듯했어요. 근데 건축주 분들이 의욕에 불타서 미팅할 때 재료와 외관에 대한 아이디어가 풍부하신 거예요. 예산을 빼고 설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그게 다 안된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면이 있어요. 장식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예산에 맞춰) 원초적인 디자인으로 돌아가 보자, 뭐 이런 거죠.

근데 틀린 말은 아니에요. 원시 오두막이 나무 기둥과 지붕으로만 지은 주택의 원초적인 원형을 가리키는데 고고익선도 심플하면서 원초적인 디자인과 이관을 가지는 게 이 바닷가 마을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마을 앞에 어부들이 쓰는 박공 지붕의 작은 창고가 있었거든요. 주변을 살펴보니 박공의 논리가 계속 보였고요. 그 형태적, 시각적 문법을 따라 주변 환경의 문맥에 맞춰 집을 짓자는 생각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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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산 절감, 이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겠어요.

아주 ‘원초적인’ 예산이죠.

 

지하 공간이 없는 이유도 설마…?

저희는 지금까지 지하 공간을 계획했던 프로젝트가 거의 없어요. 공사 범위가 땅 파기까지 확장하면 예산이 확 늘어나요. 콘크리트 구획해야 하죠, 지하수 펌프로 올려야 하죠, 기껏 만들어 놔도 유지 관리가 불편하고 쾌적성도 떨어지는 공간이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하 파는 건 고려하지 않아요. 늘 돈과의 싸움이죠.

 

제주도는 섬이라 내륙에 비해 공사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고민이 많았겠어요.

그래서 가능한 한 저렴하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특별한 마감재 없이 골조 위에 미장한 후 흰색을 입히는 정도. 실내 공간도 석고보드를 치지 않고 골조 위에 그대로 페인트를 칠했죠. 마감 재료에서도 비용을 최대한 아끼고 대신 창문, 단열, 누수, 방수 쪽에 필요한 돈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어요.

 

소통 = 힘

건축주와 긴밀히 소통하기 위해 네이버 ‘밴드’를 자주 활용한다고 들었어요.

고고익선은 건축주가 부산에 있고 저희는 서울에 있어서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죠. 근데 저희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요. 집 짓기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고 건축주 입장에서 큰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젊은 분들은 대부분 밴드를 통한 소통에 응답률이 높아요.
저희 건축주들이 40대를 넘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그 성향을 보면 자신의 요구 사항을 건축가에게 적극적으로 제시하며 활발하게 상호 소통하려는 의지가 강해요. 소통이 원활할수록 더욱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니 저희 입장에서는 필수적인 도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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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 없이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혹시 디지털 피로를 느끼지는 않나요?

소통이 안돼서 거리감이 생기는 것보다 마지막까지 프로젝트를 위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게 오히려 피로감이 적어요. 밴드의 좋은 점은 무엇보다 기록으로 남는다는 거예요. 나중에 혼선이 일어날 일이 적고, 혹 일어나더라도 기록을 찾아보면 해결이 돼요. 급작스럽고 급한 일은 물론 전화로 소통하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기록의 장점도 있어서 웬만하면 밴드로 얘기하자고 권유하는 편이에요.

 

건축주가 24시간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면 건축가 입장에서는 사생활 침해가 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 만난 건축주들은 기본적으로 매너가 좋았어요. 대부분 업무 시간을 제외한 개인 시간까지 방해하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저희를 찾아온다는 건 저희 전문성을 믿고 집 짓기를 맡기고 싶은 거니까 건축가에 대한 존중이 깔려 있는 것 같아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고 저희 의견에 대해 매너 있게 대응하는 분들이라 지금까지 서로 큰 불화가 없었다는 게 참 다행이죠.

 

미래를 위해

고고익선을 지을 때 건물뿐만 아니라 주변 길과의 관계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면서요.

해당 대지는 담장으로 두른 곳이 아니라 도로와 적극적으로 면해 있어서 길이 건물의 담장 역할도 일부 맡고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길을 올라가며 현장으로 진입하는 경험이 참 좋더라고요. 이런 걸 모두 지우고 텅 빈 마당으로 두면 골목길의 풍경이 갑자기 사라지는 거잖아요.

저희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어요. 새로운 건물들은 예전에 무엇인가 있던 자리를 채워갔어요. 돌집 자리에는 카레집이, 대문 자리에는 다목적동이 들어섰죠. 기존 골목의 선을 유지한 덕에 신축 건물인데도 갑자기 솟아오르는 게 아니라 점진적으로 높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위화감이 상대적으로 적죠.

 

ⒸKyung Roh

 

단순한 디자인의 흰색 건물이 주변 풍경에서 꽤나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제주도 특유의 지역색을 활용하면 어땠을까요?

좋은 지적입니다. 사실 제주스러운 재료는 한정적이에요. 현무암이 대표적이죠. 예산 문제도 있었고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건축물이 굳이 주변과 외형적으로 유사해 지역에 이미 있었던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강박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어요.

대도시에서는 큰 건물을 두고 랜드마크라고 부르죠. 저희는 크기가 작더라도 길을 걷는 사람이 보면서 좋아하는, 지역의 미니 랜드마크를 만들고 싶어요. 저희가 지은 건축물이 지역에 있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길에 새로운 활력과 이벤트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지 건축 환경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건축물이 필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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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익선이 사람들에게 어떤 프로젝트로 기억되길 원하세요?

저희 건축주들은 젊었어요. 미래를 생각하며 일을 의뢰했다기보다 주어진 상황과 현재 원하는 장면, 공간들을 중시했죠. 그 기조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이어져 있었고요. 고고익선이야말로 그들의 ‘젊은 날의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나중에 높은 값에 되팔겠다는 계산이 있었다면 형태는 지금과 분명 많이 달랐을 거예요.

저희는 기능이나 경제적인 측면에 맞춘 집보다는 로망을 반영한 집을 짓고 생활하면서 귀중한 정서가 생겨난다고 믿어요.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추억이 쌓이는 거죠. 지금 한국의 주거 문화를 보면 너무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어요. 그래서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있다는 걸 증명하고 알리는 일이 저희에게는 큰 과제이자 도전이에요. 이런 분들을 만날 때 그들의 삶이 너무나도 멋지고 좋아요. 부디 계속 이 집에서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Kyung Roh

 

B.U.S 건축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가 얻은 것은 확실하다. 자기 집 한 채를 만들기 위해서는 건축주의 열망과 집념이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곁에서 이를 도와주며 꿈을 실현시키는 건축가의 의지 또한 필수라는 점이다. 고고익선은 좌충우돌 끝에 이 두 가지를 모두 이룬 아주 솔직한 예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