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사색의 공간

[Stay here] ③ 스테이에서의 경험이 만든 ‘서리어’
©Byunggeun Lee
에디터. 박지일  사진. 이병근  자료. 지랩 Z-Lab

 

머무는 공간이자 장소를 뜻하는 오늘날의 ‘스테이stay’는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새로운 경험을 제안한다. ‘여행’과 ‘집’,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재고하기를 요청받는 과정에서 스테이의 맥락은 폭넓게 재편되는 중이다. 브리크는 이번 특집에서 공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가치와 이야기가 명확한 여러 스테이들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각 공간에서 건축가, 디자이너, 운영자가 제안하는 바는 결국 변화하는 동시대의 생활 양식과 닿아 있다. 자연 속에서의 휴식, 자발적 고립, 일과 생활, 스포츠와 문화 활동, 유려한 건축 공간에서의 비일상적 경험까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서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스테이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이 시대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과정과 다름 아닐 것이다.

 

Stay here
① 오늘의 여인숙 – 삼화 여인숙 
② 완벽한 고립의 시간 – 의림여관 
③ 세 가지 사색의 공간 – 서리어
④ 고요함 속 감각을 여는 호텔 – 이제 남해
⑤ 숲속 진정한 나를 마주하다 – 아틴마루
⑥ 호텔과 글램핑 사이 – 글램트리리조트
⑦ 일과 쉼이 공존하는 곳 – 오-피스제주
⑧ 꼭 하룻밤만큼의 예술 – 다이브인 인사
⑨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 어 베터 플레이스


 

운영자의 취향
스테이는 다수의 소비자를 위한 대중화된 숙박 모델이 아닌, 소수의 사람들과 교감할 때 지속이 보장되는 특수한 경험의 공간이다. 따라서 대형 호텔의 디자인이나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공간 디자인을 따르기보다 개성을 온전히 담아낼 것이 요구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운영자의 취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리어의 운영자는 방문객이 이곳에서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면서도, 가족 단위로 찾을 때에도 각자 자신만의 시간을 차분히 가질 수 있는 공간을 요청했다. 이러한 바람은 운영자가 제주의 어느 스테이에서 느꼈던 사색과 휴식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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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의 경험이 배경이 된 공간
서리어의 운영자는 몇 해 전 가족과 함께 떠난 제주 여행의 목적지로 지랩이 설계한 ‘낮은 제주’를 택했다. 이곳은 낮은 제주의 건축주가 어린 시절을 보낸 돌집을 리노베이션한 스테이로, 소박하면서도 디테일한 프로그램과 제주다운 풍경이 매력적인 공간이다. 바다를 향해 펼쳐진 넓은 마당과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객실로 구성된 낮은 돌집은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채 건축주의 어릴 적 기억들을 새롭게 전달하도록 했다. 서리어 운영자의 가족에게 이곳에서의 하루는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았다. 은퇴를 앞두고 제주에서의 새로운 삶을 계획하고 있던 부부는 단순한 귀촌이 아닌, 스테이 운영을 통해 제주를 찾는 이들에게 직접 경험했던 하루의 특별함을 전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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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어는 지랩이 설계한 다른 스테이에서의 인상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곳이다. 건물 앞으로 펼쳐진 밭과 마을 풍경, 뒤로 보이는 숲과 오름에서 오는 여유를 느껴보기를 권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 한잔 마시면서 오름의 숲을 바라보며 새소리를 듣는 것. 그것이 서리어가 가고자 하는 이상적인 방향이자, 누군가가 만들어낼 새로운 스테이의 시작이다.” – 노경록 지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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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 감싸 안은 대지
계획 초기부터 서리어가 위치한 제주 애월읍 금성리의 인상적인 풍경이 부각되도록 디자인했다. 대지와 인접한 대파밭과 그 너머 멀리 있는 마을, 제주 바다와 비양도의 경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경쾌한 새들의 지저귐, 어도오름으로 둘러싸인 대지에서 느껴지는 시원함과 여유로움, 오름의 산자락을 마주하며 느끼는 자연의 생명력은 이곳을 여느 제주의 땅보다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매력을 공간에 온전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전면을 긴 방향으로 배치해 방문객이 진입하며 후정과 산을 만나고 이어 거실로 들어오면 창밖에 펼쳐진 대지와 마주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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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품은 공간과 재료
오름의 울창한 숲 사이사이를 비추는 동쪽의 빛을 담아내고, 회랑과 툇마루가 있는 후정에서 고요한 휴식을 즐기도록 건물은 하나의 지붕을 가진 두 개의 공간으로 계획했다. 거실과 침실, 주방으로 구성된 본채는 노을이 지는 풍경을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도록 커다란 창과 낮은 가구들을 배치했다. 별채는 침실과 다실, 노천탕으로 구성되는데, 차와 다기가 준비된 다실에 앉아 창밖의 노천탕을 경험할 수 있도록 본채보다 낮은 공간으로 설정했다. 회랑과 라운지로 구성된 야외 공간은 오름의 숲과 조용히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 바람 소리와 함께 한층 풍요로운 공간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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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 선정에 있어서도 자연과 어우러지는 것들이 우선 고려됐다. 종석과 스터코는 멀리서 보면 단순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복잡미묘한 질감을 드러낸다. 어도오름 언덕의 형상을 닮은 지붕에는 철평석 기와를 사용했다.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함을 주는 색이고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매력을 지닌다. 이런 재료들은 해질녘 서리어로 드는 빛과 그림자에 깊이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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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사색의 매력
서리어는 세 가지 사색을 위한 경험의 공간이다. 노을을 바라보며 느끼는 저녁의 사색,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준비된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의 사색, 다음날 아침 그늘진 회랑의 툇마루에 앉아 여행을 마무리하는 정리의 사색이 그것이다.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른 경험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내부를 장식하는 가구는 지랩에서 직접 디자인한 후 바이빅테이블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전면의 경관과 후면의 숲을 조망하기 위해 대부분의 가구는 어두운 색의 나무를 사용해 낮은 높이로 디자인했는데,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있어 보이며 차분한 분위기를 이룬다. 별채의 다실 영역에는 사색을 위한 다구와 편의를 돕는 어메니티들이 쇼케이스 형태로 진열되어 있다. 차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어메니티에 둘러싸인 중앙에 배치되어 은은한 빛과 함께 별채에 운치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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