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건축가 부부의 시험 주택

[Interview] 금손집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금손건축 SONKIM Architects

 

설계와 시공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각자 경험을 쌓아 온 건축가 손주희와 김도형은 인천의 한 낡은 주택을 매입해 손수 고쳐냈다. 결혼 후 함께 살 집을 마련하고자,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 시험해보고 확인하기 위해. 집은 비좁고 오래된 골목에 자리한 탓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주어진 자리에서 땅, 하늘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우직한 손으로 한땀 한땀 빚어낸 집은 화려하진 않지만 정직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손주희(왼쪽), 김도형 금손건축 소장 ©BRIQUE Magazine

 

‘금손집’은 인천 동구 한 골목가에 위치한다. 대문은 타공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너머의 풍경을 은근히 드러내는데, 문을 열면 자그마한 정원과 툇마루가 살갑게 손님을 맞이한다. 하늘로 활짝 열린 마당을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탁 트인 실내와 정갈한 형태의 목구조가 눈에 띈다. 면적은 약 50㎡에 불과하지만 거실과 주방, 침실, 서재, 두 개의 화장실과 다락을 갖췄고, 층고가 높고 벽이 없어 답답하지 않다. 이 집만을 위해 짜인 가구들이 공간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다. 고개를 들면 지붕에 난 창을 통해 구름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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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金)’과 ‘손’이 지었다는 뜻의 집 이름이 재밌어요. 두 분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손주희(이하 손) 건축을 전공했고, 졸업 후 집이 지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 전공 교수님과 함께 3년간 마을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어요. 이후에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요. 얼마 전 독립해 사무소 ‘금손건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도형(이하 김) 같은 학교 후배였어요. 대학생 때 적산가옥 등을 리노베이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나무로 집을 짓고 구축하는 목공 작업에 특히 관심이 갔죠. 불필요한 꾸밈이 필요 없고 솔직해 보였달까요. 졸업 후 친구와 함께 마찬가지로 낡은 집을 고치는 일을 했어요. ‘무단횡단’이라는 팀으로 활동하며 건축 공사에 드는 소모품을 최소화하는 지속가능한 작업을 추구했죠. 팀 이름답게 들어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요. (웃음) 현재는 시공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BRIQUE Magazine

 

결혼하고 얼마 안 돼 마련한 집이라고요. 어떻게 첫 집부터 이렇게 고쳐 살 생각을 했나요?

건축 일을 하면서 제가 가꿔 나갈 수 있는 주택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신축할 정도로 예산이 넉넉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마침 도형이가 집을 고쳐 본 경험이 있어서 조건이 맞는 건물을 찾으면 우리가 가진 예산과 실력만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겠다 싶었죠. 이건 현실적인 이유이고, 건축가로서 그간 쌓아온 노하우와 건축적 가치를 실현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일을 시작할 때는 공간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는데 점점 의문이 생기더군요. ‘좋은 공간을 만드는 요소’라 믿어왔던 것들이 정말 맞는 것일까, 하고요. 직접 짓고 살아보면 확인할 수 있겠다 싶었죠. 

 

리노베이션 전

 

집의 변화가 놀라워요. 예전 사진을 보니 상태가 다소 암담(?)하던데요. 막상 리노베이션을 하려니 막막하진 않았나요? 

기존 집은 1970년대 후반에 지어진 서민 주택이에요. 30평 내외의 필지에 놓인 15평 공간은 주인집과 셋집으로 나뉘었고, 같은 골목에 동일한 형태의 주택 네다섯 채가 인접해 있죠. 인천의 원도심으로 곳곳에 역사적 장소가 있는 오래된 동네예요. 긴 시간 동안 낙후되어 고령이나 넉넉하지 않은 형편의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죠. 이 집에도 아저씨 한 분이 혼자 살았는데, 처음 방문했을 때 소주병이 한 짝으로 놓여 있고 여기저기 곰팡이도 피어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이 크게 눈에 들어오진 않았어요. 대신 남향에 마당이 있다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죠. “와, 하늘 다 보인다” 이렇게 말하며 신나 했던 것 같네요. (웃음) 현재 모습보다는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집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오래돼도 외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보존할 만하면 일정 부분 살려 리노베이션하는데, 여기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공간은 아니었어요. 애당초 기존의 형태를 존중하겠다는 입장보다는 많이 드러낼 생각으로 접근하니 집의 상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죠. 

 

평면도 ©SONKIM Architects
단면도 ©SONKIM Architects
거실과 부엌 ©BRIQUE Magazine
침실에서 바라본 거실 ©BRIQUE Magazine
서재 ©BRIQUE Magazine

 

기존 건물의 외피만 남기고 그 안에 새로운 목구조 주택을 ‘삽입’하는 방식을 택했다고요. 리노베이션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땠나요? 

골목 폭이 2m 이하로 무척 비좁은 관계로, 이에 따른 법규적 한계와 주변 맥락을 고려해 리노베이션을 진행했어요. 구조적으로 불안정했기에 벽돌로 구획된 집의 바운더리를 제외한 대부분을 철거했죠. 내부 바닥의 높이를 낮추고 목구조를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실내와 마당의 관계를 개선하고 실내 층고를 높였어요. 오래된 집은 공간의 스팬span(구조부재 간의 거리)에 따라 공간의 밀도와 분위기가 크게 달라져요. 금손집은 기존 건물의 규모나 한계로부터 ‘태어난’ 집이라고 보면 돼요. 

 

©BRIQUE Magazine

 

‘집에서 하늘을 본다’는 큰 목표에서 출발해 구조 계획을 해 나갔어요. 충분한 빛이 드는 집을 원했기에 지붕의 모양과 창의 위치가 중요했죠. 처음엔 남쪽을 향해 사선으로 들린 지붕을 계획했는데, 절대적인 고도값이 높아지면 안 된다는 규제가 있어 설계를 변경했어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처음 계획대로 했으면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았을 테고, 햇빛이 너무 많이 들어와 오히려 불편했을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잘된 셈이죠. 
공사는 기존 목구조를 보완하고 새로 기둥을 세우는 데부터 시작했어요. 중목구조와 경량목구조를 혼합하는 구축 방식을 적용했죠. 건물 전면의 폭에 딱 들어 맞게끔 경간이 1,350mm인 중목구조 모듈로 큰 틀(기둥과 지붕)을 만들었어요. 중목구조를 그대로 노출해 집의 구조적 리듬과 힘을 드러냈고, 여기에 경량목구조를 더해 횡력에 저항하도록 했죠. 가구도 모두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거예요. 무단횡단 팀으로 활동할 때 쓰고 남은 합판(1,220×2,440mm)을 활용해 600mm 모듈 가구를 제작, 로스를 최소화했죠. CNC 가공을 거쳐 조립하는 방식이라 친환경적이고요. 

 

©BRIQUE Magazine

 

금손집을 ‘젊은 건축가 부부의 시험 주택’이라고도 소개했죠. 두 분이 생각하는 ‘좋은 집’에 대한 기준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뜻으로 읽히는데요, 직접 살아보니 어때요? 

집에는 여러 자극이 침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곳곳에 난 창문, 외부 공간 등이 내부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 이에 따라 거주자의 행동이 계속된 변화가 일어나는 거죠. 빛이나 공기의 흐름, 사람의 움직임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집을 만들고 싶었어요. 금손집은 거실, 주방, 침실, 서재, 다락 등으로 나뉘지만 각 공간은 완전히 닫혀 있진 않고 곳곳에 여러 개의 창호를 두고 있죠. 마당으로는 쉽게 드나들 수 있게 해 땅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자 했어요. 
이 집에서 산 지는 거의 1년이 다 돼 가네요. 예전엔 서울의 연립주택에서 살았는데, 그땐 답답해서 카페 등으로 자주 나가곤 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거실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아요. 해의 고도에 따른 변화를 크게 체감하는 중이에요. 햇살이 여름에는 마당과 툇마루로 쏟아지고, 겨울에는 집 안까지 들어와 벽에 닿죠. 하늘의 색이나 마당의 식물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어요. 집, 마당, 하늘이 서로 영향을 주는 가운데 시시각각 변화하는 공간의 분위기와 성격이 고스란히 느껴져 좋아요. 

 

©BRIQUE Magazine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어디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마당이요. 도형이가 건축의 구조나 기하학적인 측면에 몰두해 왔다면 저는 땅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마당의 식물을 보고 있으면 집 안에서 무언가가 자라고 바뀌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지인이 놀러오면 식물을 보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요. 기본적인 생활을 뒷받침하는 공간에는 이렇듯 재미난 것들, 어쩌면 사치스럽다고도 여겨질 수 있는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공간이 더욱 풍부해지니까요. 

집을 이루는 여러 재료가 잘 어우러지면서도 각자의 존재감을 은은히 드러내고 있어요. 재료 선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목재는 구조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소재이기에 주되게 사용했어요. 기존에 갖고 있던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의도와 함께 전체적인 결을 맞추고자 가구도 목재로 만들었고요. 외장재로 쓴 사이딩은 아는 형이 설계한 건축물을 보고 멋있어서 사용한 거예요. (웃음) 거실과 침실 사이 벽을 두지 않았기에 공간을 구분하고자 거실 바닥은 어두운 색의 타일로 마감했어요. 마당에 비슷한 색의 자갈을 깔아 거실과 외부 공간이 연결되는 느낌을 주었죠. 덕분에 마당이 실내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해요.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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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두 다락의 높이가 조금 다르네요. 난간이 없어서 조금 무섭기도 한데요. (웃음) 어떤 의도인가요?

구조목 하나를 덧대 높이차를 두었어요. 두 다락의 역할이 달라요. 창이 난 동쪽 다락은 아늑한 가운데 쉼을 누릴 수 있는 ‘숨는’ 다락, 서쪽은 수납 등을 해결할 기능적인 다락이죠. 

같은 다락이어도 기능과 위상을 달리하니 좀 더 흥미로운 공간이 만들어진 것 같아요. 난간을 설치하지 않은 건 개방감을 유지하기 위함이에요. 공간이 협소해 난간 하나만 있어도 답답해보일 수 있거든요. 물론 저희가 사는 집이라 과감히 생략한 것이지만요. 

 

다락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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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노베이션 작업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계획부터 시공, 살아보기까지 했으니 소회나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리노베이션은 ‘어떤 환경이 이렇게까지 바뀌고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의미가 있어요. 바뀐 집에서 ‘내가 이런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경험할 수 있죠. 외부와 내부, 실내 개별 공간 간의 관계를 재정의해주는 것만으로 거주자의 정서나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몸소 체감하고 있어요. 

눈앞에 산재한 문제를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무언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제겐 흥미로워요. 적절한 구조 보강 방식을 찾아 나가는 재미도 있고요. 커다란 부재를 거칠게 덧대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 섬세하고 아름답게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을 찾을 때랄까요. 집 곳곳 더 잘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자꾸 눈에 띄어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웃음)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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