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의 일과 공간

[스페이스 리그램] ⑦ 공유오피스와 가상성
©jibmusil
글. 김은산  자료. 집무실, 로컬스티치, 오-피스

 

‘기억극장(아트북스, 2017)’, ‘애완의 시대(문학동네, 2013)’, ‘비밀 많은 디자인씨(양철북, 2010)’ 등을 통해 사회적인 분석과 미학적인 시선이 교차하는 영역에서 작업해온 김은산 작가가 ‘스페이스 리그램space regram’이라는 연재로 <브리크brique> 독자와 대화의 문을 엽니다. 인문학과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한 그는 인문서점 운영과 사회주택 기획, 지역 매체 창간 등을 통해 공간과 사람을 매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한 컷의 사진을 매개로 도시인의 일상을 돌아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독자 여러분도 짧은 사색의 시간을 가져보시길 기대합니다.

 

지하철역을 벗어나 한적한 거리를 지나 도착한 건물 입구에는 아무런 표지가 없었다. 입구 오른쪽 벽의 출입통제 시스템에 휴대폰 앱으로 연결된 바코드를 인식시키자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 홀로 연결되는 로비에는 아치 모양의 장식벽 위로 양치식물이 늘어져 있고, 라탄 의자와 낮은 좌탁 양옆으로 커다란 야자나무 화분이 기둥처럼 놓여있었다. 도로를 향한 창가에는 라운지 바에 어울릴 법한 스탠딩 테이블이 늘어서 있었다. 로비 중앙의 안내 데스크는 오픈 바를 연상시켰는데 실제로 가볍게 위스키 한 잔을 즐길 수도 있었다. 안내 데스크 뒤쪽으로는 커피를 비롯한 차와 음료, 간단한 스낵이 마련된 간이 주방이 마련되어 있었다.

 

집무실 석촌점 ©jibmusil

 

공간의 첫인상은 상상을 조금 덧붙이면, 가벼운 업무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 호텔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같았다. 물론 이 공간은 호텔이 아니라 공유오피스 ‘집무실’이 운영하는 서울 부도심에 위치한 지점 중 하나다. ‘집무실’은 조금 다른 맥락에서 요즘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공간일 텐데, 명칭이 주는 어감에서 느껴지듯 기존의 공유오피스와는 조금 다른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가상의 공간 경험을 강조하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여행지의 호텔에서 가벼운 업무를 즐기는 듯한 여유와 세련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임을 내비치는 트렌디한 가구와 인테리어는 기존의 공유오피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카페와 호텔 바, 독서실과 서재가 결합된 혼성의 공간 구성은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와 재택근무를 넘어 워케이션으로 변모하는 일과 공간의 변화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공유오피스가 제공하는 공간 경험은 어느 정도 ‘가상성’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자기만의 업무 공간이 없어도 고정 비용 없이 사무기기를 비롯한 기반 시설이 마련된 공간을 공유함으로써 마치 회사나 개인 사무실 공간에서 누릴 수 있는 업무 효율과 만족도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집무실 석촌점 ©jibmusil

 

팬데믹 이후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일과 공간의 측면에서 어떤 특이점을 맞은 것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사무실에 출근하여 함께 일하고, 퇴근한다’는 기존의 상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공장은 노트북이 대신하고, 회의는 줌 공간이 대체하고, 동료는 인친과 팔로워로 대체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현실에서 불가능한 접촉을 온라인 가상 공간으로 대체하는 상황이 이제 일반화되었다. 물리적인 공간을 가상 공간이 대체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해진 것이다.

물론 건축은 현실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것을 공간적으로 가상으로 해결하거나 대체하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현실의 물리적인 세계가 우위에 놓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이젠 디지털의 삶이 주도하는 가상성이 건축과 공간에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 숙고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 같다.

 

로컬스티치 약수점 ⓒBRIQUE Magazine

 

비슷한 맥락에서 얼마 전 트위터에서 읽었던 메타버스에 관한 글은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준다. 대부분 메타버스를 어떤 ‘공간’으로 바라보는데 실은 ‘시간’이나 ‘시점’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가상의 세계로 이동하는 것을 포함하여 가상의 삶이 실제 물리적 삶보다 중요해지는 시점, 그 시점이 메타버스가 시작되는 시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타버스로 명명하진 않았지만 그와 유사한 경험은 이미 현실 공간, 아니 시간 속에 넘쳐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발 더 나아가 가상의 경험이 실은 그 시대에 가장 결핍된 것을 가리는 스크린은 아닌지 질문을 던져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공유오피스가 제공하는 장점은 어디에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은 시도 때도 없이 일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일의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낮아졌고, 일의 의미를 발견할 기회는 점점 더 희귀해지고 있다. 집 책상이든, 카페 테이블이든, 공유오피스든 어디로든 출근은 가능하다. 문제는 ‘퇴근’이다. 퇴근은 어려워지거나 지연되거나 점점 불가능한 것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피스제주 ⓒo-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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