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단단한 성

[Story] ‘소설가의 집’ 공간 이야기
ⓒJaeyoun Kim
에디터. 김지아  사진. 김재윤, 윤현기  자료. 백에이어소시에이츠

 

작지만 온전한
열 평 남짓 되는 땅에 층층이 쌓아 올린 집. 소위 협소주택이라 일컫는 작은 규모의 주택이 주거의 대안이자 하나의 유형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아파트, 빌라 등 보편화된 주거 형식에서 벗어나 비교적 좁은 땅일지언정 도심 한 켠에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중심으로 협소주택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 속 방점은 역설적이게도 주택에서 협소로 옮겨가고 있다. 가능하다니 가능하리라는 믿음으로, 살 만하다니 그러리라는 짐작으로 생활에 대한 구체를 저버린 채 오로지 그 가능성에 몰두하는 것이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집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때 협소주택은 비로소 협소하지 않다. 세간의 작은 집이 오롯한 은신처가 되기까지, 집이라는 공간에 담겨야 할 본질과 속성에 대한 저마다의 고찰이 필요하다.

 

©Jaeyoun Kim

 

집 짓기라는 과업
‘안이한 편리함으로 기울지 않는 집. 그곳이 아니면 불가능한 생활을 요구하는 집’. 오늘날 협소주택의 원형이 된 스미요시 주택을 설계한 안도 다다오가 남긴 말이다. 설계자가 거주자의 생활에 필요한 지점을 고민하기에 앞서 거주자가 직접 원하는 바를 또렷이 할 때, 즉 거주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할 때 손쉬운 편의에서 멀어져 유일함에 가닿을 수 있다.

©100A associates

 

집 짓기를 일생의 과업으로 여긴 건축주는 막연한 집이 아닌 선명한 집을 그렸다. 각기 다른 개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지닌 이들이 일률적으로 재단된 공간에 사는 일에 의아함을 느낀 그는 원하는 기능과 의미가 담긴 집을 차츰 마음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해둔 시기에 이르러 의도한 집을 구현하기 위해 건축가를 찾았다. 본인을 소개하기 위한 글과 자료, 그리고 직접 그린 도면을 들고 말이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자신만의 집을 짓는 일이 해결해야 할 삶의 과제에 가까웠다는 그의 직업은 소설가. 협소라는 말이 주는 옹색함을 풍요로운 상상으로 풀어낸 동화 속 성을 닮은 소설가의 집을 찾았다.

 

담백한 주택의 초상

 

마곡지구
방화동 좁은 골목 끝자락에 자리한 땅은 행정구역상 방화동에 속하지만 골목을 나서서 만나게 되는 길의 주소는 마곡이다. 낡고 개선이 필요한 지역인 방화와 새롭게 정비된 구역인 마곡 사이, 오래된 시간과 새로운 시간의 경계에 집은 우뚝 놓였다. 서울에서 열 평 남짓한 땅을 찾는 일은 무수한 타협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한정적인 땅에서 원하는 바가 보다 선명할 때 그렇다. 작은 주택에 딸린 간소한 정원을 상상한 건축주의 바람은 땅이 아닌 동네의 서울식물원이라는 녹지를 만나 절충을 이뤘다. 공원과 더불어 인근 건물이 그다지 높지 않아 어디서나 하늘을 조망할 수 있는 장점도 갖췄다. 여기에 개관을 앞둔 LG아트센터와 백화점, 아울렛과 시네마 등 문화 인프라는 생활편의를 돕는다.

 

©Jaeyoun Kim

 

골목 안 성
전형적인 적벽돌 다가구 세대에 둘러싸인 건물은 우두커니 성처럼 존재한다. 작지만 단단한 성을 닮은 외관은 숨기 위한 집을 향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은신처, 보금자리 등 집을 수사하는 여느 어휘 대신 외부의 힘으로부터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집을 표현하고자 건축주가 택한 단어는 ‘성’. 이에 디자이너는 수직적 형태에 거칠고 단단한 질감을 더해 방어할 수 있는 형상을 구현했다. 재료 역시 고층 빌딩용 콘크리트와 두꺼운 철근을 사용해 집이 안기는 인상을 극대화했다. 핑크 계열의 외벽 색은 주변 건물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선택한 것인데, 그 자체로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칫 긴장감이 흐를 수 있는 외관에 여유를 주면서도 주변 환경과의 그럴듯한 조화가 돋보인다.

 

©Jaeyoun Kim

 

수직적 레이아웃의 가능성
건물은 4평 남짓한 4개 층으로 이루어졌다. 한 층에 모든 공간이 배치되는 통상적인 평면과 달리 층마다 다른 기능을 목적하는 것이 배치의 기본 방향이었다. 가구 레이아웃까지 포함한 평면도를 직접 그려 건축가에게 건넬 만큼 스스로에게 필요한 구성을 정확히 계획한 건축주였기에 작은 대지의 크기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대지의 고저차를 활용한 1층은 거실 겸 응접실, 2층은 욕실과 드레스룸, 3층은 침실과 화장실, 4층은 주방 및 다이닝룸으로 구성됐다. 독특한 점은 층별 마감재가 달리 사용되었다는 것. 한 층이 하나의 독립적 공간으로 고유한 역할을 한다는 데 주목해 공간별로 다양한 심상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넓지 않은 면적임에도 기능과 용도에 따라 저마다의 분위기를 품은 공간은 생활에 풍요로움을 선사한다.  

 

©Jaeyoun Kim
©BRIQUE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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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이 된 가구
모든 층에는 가구가 곳곳에 숨어 있다. 가구는 집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로 세심한 선택을 요했다. 콘크리트와 나무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장면은 건축주가 오래간 바라온 것. 색상을 비롯한 명도와 채도는 공간과의 조화를 고려해 건축가와 함께 조율했다. 수납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가전제품, 옷 등 소장품의 규격을 정확히 측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오브제의 치수로 인해 전체 레이아웃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기존보다 더 세심한 기준을 적용해야 했다. 빈틈없이 계획된 가구는 마치 하나의 면처럼 보인다. 신발장과 세면장을 제외한 모든 가구엔 겉으로 드러난 손잡이가 없다. 선과 면이 엉키지 않고 단정하게 자리하길 바란 건축주의 구성, 그리고 건축가의 세밀한 계획에 따른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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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불가결한 계단
설계에 있어 중요한 지점은 평면 배치보다 수직 동선에 있었다. 일말의 자투리 없이 구획된 공간인 만큼 동선과 배치의 사소한 어긋남이 자칫 초래할 불편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큰 변주를 줄 수 없는 한 방향 계단 설계의 관건은 역시나 적절한 치수 설정. 빠듯한 층고에도 키가 큰 건축주가 답답함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폭과 높이를 확보해야 했다. 이를 위해 스케치와 3D 작업을 여러 차례 거친 데 이어 실제 현장에 계단 일부를 만들어 시뮬레이션하기까지, 일반적인 경우보다 계단 설계에 많은 품을 들였다. 충분히 작은 면적의 공간에서는 층과 층을 잇는 수직 동선이 생활의 질과 직결되리라는 판단에서였다.

 

©Jaeyo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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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기 위한 창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창은 이 집에 없다. 각 공간의 성격에 맞게 필요한 빛을 들이기 위해 적절한 위치를 고심해 낸 창이기 때문이다. 보이기 위한 창, 숨기기 위한 창, 나무를 담는 창, 고요함과 평온함, 때론 초월적인 감각을 가져다주는 창. 공간에서 창은 확장의 도구이기보다 머무는 이의 정서를 염두에 두고 구성한 장치에 가깝다. 단순히 기능만을 고려했다면 이토록 크고 작은 창이 저마다의 위치를 점하진 않았을 터. 대표적으로 4층 천창에서 내리비치는 빛은 대다수의 주택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무드를 만들어낸다. 이렇듯 다양한 목적의 창은 매일 같고도 다른 하루의 풍경에 새로운 빛을 안긴다.

 

©Jaeyo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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