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여도 괜찮은 곳

[Gen MZ Style] ⑧ 통영의 예술혼이 숨쉬는 골목길 문화공간 '내성적싸롱 호심'
글. 경신원 도시와커뮤니티 연구소 대표  자료. 내성적싸롱 호심

 

‘도시’와 ‘로컬’이라는 양대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앞서 파악하고 원인을 분석하는 경신원 도시와커뮤니티 연구소 대표를 필진으로 초대했습니다. 연재를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새 주역으로 등장한 MZ세대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들이 욕망하고 소비하는 공간을 함께 따라가 보며 21세기 라이프스타일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경상남도 남쪽 끝자락에 위치한 통영은 반도와 섬으로 이루어진 인구 약 13만명의 도시다. 통영은 과거 ‘동양의 나폴리’ 혹은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던 곳으로, 이곳이 고향인 박경리 작가의 저서 ‘토지’, ‘김약국의 딸들’, ‘파시’에 자주 등장한다. 박경리 작가뿐 아니라 유치환, 김춘수, 윤이상, 전혁림 등의 묵직한 문화계 거장들이 통영 출신이다. 이중섭은 통영 출신은 아니지만, 1950년대 중반 이곳에 머물면서 황소 시리즈를 비롯한 그림 40여점을 그렸다. 아마도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창작혼을 불태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통영도 다른 지방중소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인구감소의 위기를 겪고 있다. 통영의 인구는 1975년을 정점으로 계속해서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인구 14만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많게는 한달에 200명, 적게는 50명씩 통영을 빠져나갔다. 2004년 인구 1만5000명이었던 원도심 인구는 2022년 현재 7000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많은 사람들이 통영을 빠져나갔지만, 발길 닿는 곳마다 예술인의 혼이 숨쉬는 이곳을 다시 찾는 이들에 의해서 통영의 골목길들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용화사와 미륵산으로 가는 길목의 봉평동 봉수골은 현재 통영의 문화와 예술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2003년 전혁림씨의 아들 전영근 화가가 세운 ‘전혁림 미술관’이 있고, 그 앞에는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운영하는 작은 책방, ‘봄날의책방’이 있다. 폐가를 개조한 건물 외벽에는 박경리, 김춘수, 백석 등 예술가들의 캐리커처와 글귀가 있다. 그리고 책방 옆 작은 골목을 따라 들어오면 ‘내성적싸롱 호심’이 숨어 있다.

 

내성적싸롱 호심 입구 ⓒbob_illust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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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싸롱 호심의 주인장인 밥장(본명, 장석원)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여행작가다. 서른 중반 그는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 꽤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그의 독특한 이력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본인의 인생을 온전히 사는 사람으로 알려진 까닭에 강연 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종종 출연한다.

그가 통영에 둥지를 튼 것은 2016년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 역시 통영이 본적이다. 통영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어릴 적부터 이곳에 대한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낯설지 않고 친근하다. 그는 현재 살림집으로 쓰고 있는 ‘믿는구석 통영’ 복합공간을 2016년 친구와 함께 만들어 한동안 통영과 서울을 오가며 지냈다. 2019년 두 번째 복합공간인 내성적싸롱 호심을 만든 이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통영에서 지내고 있다.

 

ⓒbob_illust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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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싸롱 호심을 만든 공간은 통영에서 나고 자라 오랜 시간을 교직에 몸담은 김안영 화가가 1978년에 지어 40년동안 살았던 곳이다. 장석원씨는 이 집을 인수해 1950년대 이중섭과 전혁림 등 작가들이 단체전을 열었던, 이중섭의 작품활동 중 르네상스로 평가되는 시절의 호심다방을 되살려 보자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내성적싸롱 호심에서는 강연이나 북토크, 글쓰기, 그림 교실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장석원씨가 꿈꾸는 내성적싸롱 호심은 어떤 공간일까?

 

ⓒbob_illustrations

 

 

“내성적싸롱 호심이 통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통영 주민들과 통영을 찾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수다를 떠는 문화공간을 꿈꾸었어요. 이곳에서 문화예술의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가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통영에서 사는 건 늘 쫓기듯 살던 서울에서의 삶과는 달라요. 바다를 보면서 천천히 걸어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죠. 그리고 무엇보다 혈연가족이 아닌 관계가족이 생긴 것이 너무 좋아요.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예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이라는 게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잖아요. 하지만 통영에서의 제 삶은 서울과 비교해서 훨씬 풍요로워요. 여기(통영)에서 만난 친구들과 무언가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들이 재미있고 보람이 있어요. 서울에서 경험하지 못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활동이 가능해요.” – 밥장 장석원

 

내성적싸롱 호심은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가 강조한 것과 같이 단순한 물리적인 복합문화공간이 아니라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인 상호작용으로 인해 형성되는 ‘제3의 공간, The great good place’ 이다.

 

ⓒbob_illustr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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