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자료. 유즈플 워크샵
강릉 교동에 위치한 작은 호텔 건물 2층에 특별한 스테이가 문을 열었다. 기존 객실과 사뭇 다른 인상으로 비밀스러움을 자아내는 ‘웜댄콜드맨션Warm Than Cold Mansion’이 그곳. 호텔 한 층을 프라이빗 스테이로 개조한 이곳은 오랜 시간 부티크 호텔을 운영해 온 건축주의 새로운 시도에서 비롯됐다. 개성 있는 스테이가 하나둘 늘어가는 강릉에 차별화된 숙박시설을 만들고자 한 그는 부지를 물색하기에 앞서 코로나로 인해 영업을 중단한 호텔 내 레스토랑을 활용하기로 했다. 독특한 점은 새롭게 디자인한 스테이와 기존 객실 사이에 이렇다 할 연결 고리가 없다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내리면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 펼쳐진다.
산업 디자인 스튜디오 유즈플 워크샵Useful Workshop이 기획·설계한 ‘어 베터 플레이스A Better Place’가 디자인의 단초가 됐다. 어 베터 플레이스는 근미래 주거 공간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탄생한 숙박 브랜드다. 지난해 종로 거리에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비어 있던 상가 건물의 공실을 활용해 더 나은 주거를 위한 아이디어를 담은 첫 번째 객실을 선보인 바 있다. 일종의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공간이 드디어 빛을 발한 걸까. 유즈플 워크샵 문석진 대표를 만나 비슷한 듯 다른 모습으로 구현된 웜댄콜드맨션의 설계·브랜딩 이야기를 나눴다.
‘호텔 내 스테이’라는 지점이 낯설고도 인상적이에요. 종로 상가 4층에 위치한 어 베터 플레이스가 자연스레 연상되기도 합니다.
어 베터 플레이스와 마찬가지로 근미래 주거에 대한 고민과 해법이 담긴 공간입니다. 지역적으로도 종로와 교동은 각각 서울과 강릉의 중심지라는 점에서 유사하죠. 번잡한 거리에서 스테이로 진입할 때 바깥의 환경과는 확연히 다른 대조의 경험을 주고자 한 전략도 동일하게 적용됐습니다.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강릉을 찾는 방문객을 위한 경험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였습니다. 콘셉트는 유지하되 목표를 달리하니 새롭게 만들어내야 할 콘텐츠가 명확해졌습니다.
호텔봄봄이 위치한 강릉 교동은 씨마크호텔, 세인트존스호텔 등이 자리한 해변 인접 지역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택지 개발로 오히려 주거 밀집 지역에 가깝죠. 동네로부터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교동 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소음으로 ‘강릉’ 하면 떠오르는 해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즐겨 찾는 지역이고 유동인구도 많은 곳이죠. 그런 이유로 디자인의 개입이 쉽지 않았지만, 동시에 흥미로운 지역적 장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스테이로서 소구할 수 있는 교동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프로젝트 초반 리서치를 진행하며 강릉은 20~30대 젊은 층의 방문이 가장 많은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해변 숙소를 이용하는 관광객들인데요. 이들을 시내인 교동으로 유입시키는 게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교동은 접근성 측면에서 지역적 매력이 충분한 곳입니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방문객이 대부분인 것을 감안하면 해변이 불과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로컬 맛집이나 숍, 갤러리 등 문화 공간을 이웃하고 있어 강릉을 두루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죠.
웜댄콜드맨션이라는 브랜드명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맨션’은 저택을 뜻하는 사전적 의미보다 1960년대 한국의 맨션 건립 목적을 따른 것입니다. 당시 맨션을 만든 이들은 거주자의 의식을 현대적으로 변화시킬 의도로 모든 공간을 입식 형태로 바꾸고 침실과 다이닝 룸을 구분하는 등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였죠. 웜댄콜드맨션 또한 공간을 체험하는 방문객이 새로운 주거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을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비슷한 형태의 초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지금의 주거 환경에서 벗어나 일종의 대안으로서 이상적 주거 공간을 제안하려 한 것인데요. 쌓고 연결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모듈식 박스와 한 칸 한 칸 조합하고 이동하며 확장할 수 있는 모듈식 부엌 등에서 그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입실카드를 터치하면 손잡이 없는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음악, 커튼, 조도, 냉난방 등은 IoT(사물인터넷)로 연결해 객실 내 비치된 태블릿으로 손쉽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모든 장치는 사용자를 위한 세심하고 따뜻한 배려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공간이 주는 인상은 차가울 수 있지만, 머무르는 동안 방문객은 그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죠.
IoT시스템이 적용된 공간은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웜댄콜드맨션은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주는데요.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자 했나요?
‘스마트 리빙’이라는 말이 요즘 어딜 가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가 됐죠. 하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면 음성 인식이나 IoT 연동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기계적으로 구현해내는 일과 실제로 유용하게 사용하는 일 사이에 간극이 있기 때문이에요. 때문에 IoT를 공간에 적용할 때 보다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경험에 중점을 뒀습니다. 비치된 태블릿을 통해 모든 조작이 가능하지만, 적재적소에 위치한 모듈 박스에 직관적인 아날로그 버튼을 설치해 시스템을 이질감 없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아날로그 버튼과 조명, 스피커, 커튼, 에어컨 등의 하드웨어, 그리고 IoT 소프트웨어 세 영역의 매끄러운 연동을 구현해내는 일이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모듈식 박스를 비롯해 대부분의 가구를 직접 디자인했죠. 가구 디자인에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어 베터 플레이스와 달리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모듈식 벽을 설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모듈식 박스를 새롭게 디자인했죠. 비교적 부피가 큰 의류나 부엌 용품 등 벽에 수납하기 어려웠던 물건들을 보관할 수 있고, 모듈 간 조합도 가로로만 연결되던 벽보다 자유롭습니다. 90도로 열리는 도어는 가벼운 업무를 볼 수 있는 책상이나 라운지 테이블, 커피나 차를 만들 수 있는 스탠딩 테이블의 역할도 겸하죠.
수공간 역시 일반적인 스파와는 다른 형태인데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요?
슬로프형 스파는 하중에 대한 제약에서 비롯됐습니다. 건물에 무리를 주는 직접하중 대신 분산하중을 넓게 주되 해당 공간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고민했죠. 그 결과 바다에 몸을 담글 때처럼 서서히 깊어질 수 있는 6.5m 길이의 스파를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엠버 컬러의 유리벽으로 빛이 투과하면서 해 질 무렵 따뜻한 물 속에 몸을 담그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계획했죠.
스파와 부엌, 침실과 거실, 침실과 침실을 각각 구분하는 벽이 있습니다. 직선의 구획을 통해 강조하고자 한 부분이 있나요?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와 미스 반 데어 로어Mies Van Der Rohe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건축은 혁신적이되 명확한 틀 내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했습니다. 공간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우선 큰 틀을 명확히 하고자 했습니다. 바닥 그리드 확장에 따른 좌우 벽과 천장 설계, 가구 배치부터 조명 계획까지 하나의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했습니다. 그리드로 구분된 플로어 위에는 정확히 필요한 위치에 모듈 박스와 유리 벽, 카펫 등을 설치해 다소 실험적인 공간 구획이지만 동시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했죠.
벽과 바닥에 사용된 따뜻한 노란색이 공간에 안정감을 더합니다. 매끈한 바닥 타일과 거친 질감의 마감재가 사뭇 대조적이기도 한데요.
실내 거주 공간과 스파, 화장실까지 한 가지 재료로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넓은 공간 전체에 작은 격자형 타일(200*200)을 사용하는 방식이 한국에서는 드문데요. 디자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다수의 그리드가 형성되어 공간 구성과 배치를 기준으로 사용이 용이한 재료인 타일을 택했습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제한된 수의 컬러와 재료를 선호하기도 하고요. (웃음)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거친 질감을 가진 마감재 위에 타일과 동일한 색상의 페인트를 칠해 미니멀하지만 시각적으로 높은 밀도를 갖도록 했습니다.
곳곳에 녹아든 공예품이 너른 공간에 장면을 만들어내는 일도 인상적입니다. ‘더 니트 클럽’과 협업했다고요.
유즈플 워크샵이 디자인한 가구와 소품 외 공예품 큐레이션은 더 니트 클럽이 진행했습니다. 직선 위주의 공간이 자칫 경직된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여겨 손으로 만든 자연스러운 형태이면서도 공간의 결을 거스르지 않는 단정한 공예품을 골라 배치했죠. 옻칠 테이블 매트, 블로잉 기법의 유리컵, 도예가의 펜 트레이와 양치컵, 섬유공예가의 오브제, 담양 죽공예품 등 공간에 온기와 아름다움을 더하는 물건을 직접 감상하고 사용해 볼 수 있습니다. 자칫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손으로 감각하는 다양한 텍스처의 질감과 시각적 아름다움이 모여 공간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웜댄콜드맨션의 다음을 기대해 봐도 될까요?
웜댄콜드맨션은 강릉 호텔봄봄만을 위한 브랜드로 기획됐습니다. 다만 숙박밀집지역이나 경쟁이 과열된 관광지역에 위치한 호텔들에게 ‘호텔 내 스테이’라는 콘텐츠는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매력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요. 호텔이나 스테이는 설계만큼 운영이 까다로운 비즈니스인데, 다년간의 경험이 축적된 숙박시설의 인프라를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분명 있기 때문이죠. 호텔 2층 비밀스럽게 자리한 스테이에 머무는 이들이 편하게 휴식하며 이상적인 주거 공간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즐거이 나누어 주면 좋겠습니다. 호텔봄봄과 더불어 강릉에서 이색적인 쉼을 경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스테이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