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헐리면 고양이들은 어디로 갈까, ‘고양이들의 아파트’ 17일 개봉

에디터. 윤정훈 자료. 엣나인필름

 

2012년 ‘말하는 건축가’를 시작으로 ‘말하는 건축 시티:홀’(2014), ‘아파트 생태계’(2017)를 통해 공간과 사람의 관계, 도시 주거 공간의 역사와 생태를 성찰해온 정재은 감독의 4번째 건축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파트가 헐리면 그곳에 사는 고양이들은 어떻게 될까. 곧 무너져내릴 아파트를 마주한 누군가는 생각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이러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의 배경은 둔촌주공아파트, ‘역대 최대 재건축’이라는 타이틀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단지다.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40여 년간 자리를 지켜 온 아파트는 사람들만의 터전이 아니다. 나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데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고,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구석진 곳과 틈새는 길 위의 동물들의 안온한 서식지다. 특히 오래된 아파트는 길고양이들이 머물기 좋은 장소다. 지하가 온수관으로 되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고, 무성한 나무와 관목들은 몸을 숨기기 좋다. 먹이를 챙겨주는 정다운 이웃도 있다면 더욱 수월하다. 그리하여 둔촌주공아파트에는 250~300여 마리에 이르는 고양이들이 살게 됐다.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정재은 감독의 전작 ‘아파트 생태계’의 연작이기도 하다. 둔촌주공아파트의 고양이들을 염려하며 끝나는 ‘아파트 생태계’의 엔딩은 해당 아파트의 고양이 이주 작전을 모의하는 주민 모임으로 이어진다. ‘고양이들의 아파트’에는 철거 현장으로부터 고양이를 안전하고 생태적으로 이주시키고자 결성된 ‘둔촌냥이’ 모임의 주민들과 그들을 돕는 동물 보호 단체가 등장한다. 주민들은 최선의 이주를 위해 기꺼이 고양이 행동연구가를 자처한다. 좋은 가정으로의 입양, 근거리 이주(급식소들의 위치를 몇 개월에 걸쳐 이동시켜 자발적 이주를 유도하는 방식) 원거리 이주(별도의 공간에 계류장을 마련해 방사하는 방법) 3가지 방식을 통해 이주를 진행한다.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자유로이 살아가는 동물을 이주시키는 것이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으나, 고양이에게 재개발 현장은 곧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고양이는 살던 공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정주성을 지닌다. 게다가 습성상 인적이 드문 건물 지하, 틈새 등에 서식하기 때문에 철거가 진행될 때까지 남아 있다 압사 당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운 좋게 살아 남는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건축 파편, 쓰레기가 난무하는 철거 현장에는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고양이들의 아파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길고양이에 대한 온정의 시선이 아니다. 영화는 고양이를 단순히 예쁨과 보살핌을 받는 애완 동물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대신 도시 생태계의 일원, 독립된 개체이자 인간과 동등한 동반자로 위치시켜 보다 섬세한 공존의 방식을 도모한다. 나아가 같은 처지에 놓인 다른 동식물, 사람들로까지 시선을 확장해보기를 권한다. 살던 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존재는 고양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 삶은 공간을 얻기 위한 노력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엄마의 뱃속이라는 공간에서 세상으로 나와 나만의 방을 갖게 되고, 내 집을 갖게 되고, 이사를 가고,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도 보게 된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명예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인정에의 욕망의 핵심은 공간을 얻기 위한 노력의 역사일 것이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이 도시의 약자인 동물 고양이들을 통해 아파트의 죽음을 다른 시선으로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 정재은 감독

 

<사진 제공=엣나인필름>

 

영화의 시선이 닿는 궁극적 지점은 삶의 터전에 뿌리내린 생명을 일방적으로 지워버리는 폭력적 방식의 도시 계획이다.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재건축 현장은 공간 속에서 맺어진 다양한 삶의 관계가 효율성이라는 명목 아래 너무 쉽게 삭제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거에 대한 불안을 안고 도시 속 삶을 이어가는 모두에게 위로를 선사하는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3월 17일 극장 개봉 예정이다.

 


제목.
고양이들의 아파트 (Cats’ Apartment)

감독.
정재은

출연.
김포도, 이인규, 전진경 외

제작.
영화사 못

배급.
전체관람가

장르.
도시 아카이빙 다큐멘터리

러닝타임.
88분

개봉.
2022년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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