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비춰 보는 삶의 얼굴, 에세이 ‘첫 집 연대기’ 출간

에디터. 김유영  자료. 웨일북

 

집은 일상을 어떻게 바꿀까? 그 과정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첫 집 연대기’는 도시생활자의 생애 첫 독립 과정을 그린 에세이다. 저자 박찬용은 가족과 살던 집에서 나와 오래된 단독주택 2층에 새로운 삶을 꾸리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백하면서도 맛깔나게 풀어낸다. 다양한 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해 온 저자는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눈과 확고한 취향을 가진 사람. 그러나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그는 독립이란 취향처럼 선택의 범위가 아니라, 예산의 한계 안에서 협의를 이루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웨일북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글귀를 보게 되었다. 사람이 바뀌려면 사는 곳이 바뀌어야 한다, 같은 그런 글귀였다. 인터넷에 짧은 글귀로 잘려서 돌아다닐 법한 이야기다. 나도 인터넷에서 보았던 것 같다. 회사 컴퓨터로 봤는지 스마트폰으로 봤는지 모를 정도로 기억에서 희미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없는 잠언들은 대부분 쌀로 밥하는 것처럼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데 그 말은 이상할 정도로 기억에 오래 남았다.  – <첫 집 연대기> p.27

 

책은 저자가 얹혀살고 있는 부모님의 집에서 ‘나가기(1부)’부터 시작해 ‘고치고(2부)’, ‘채우는(3부)’ 이야기로 이어진다. 바쁜 일상에 치이는 틈틈이 임대 정보를 알아보거나 오래된 월셋집을 수리하고 매만지는 고군분투에서부터, 새집에 둔 스피커에서 처음 음악이 흘러나올 때 느낀 기쁨처럼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사계절 쾌적한 집과 때로 살기 고된 단독주택이 주는 즐거움의 총점은 같을지도 모른다. 쾌적한 집의 즐거움을 그래프로 그린다면 일직선이 되고, 단독주택의 그래프는 파도처럼 요동치는 것 아닐까. 단독주택의 좋은 순간을 깨닫고 나면 고된 계절의 불편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나는 고된 계절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는 성향이다. 물론 싫을 때는 다 버려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말이지. 가장 좋은 건 온실 같은 집과 야생의 집을 다 가진 채 마음 내킬 때마다 옮겨 사는 거겠지만 삶에서 좋은 두 개를 다 가질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있겠나.

그 집에 책을 나르던 초여름 밤이 ‘단독주택의 스위트 스폿’ 같은 기분이었다.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운 창밖에는 마당에 심은 감나무의 꼭대기가 보였다. 저 멀리 보이는 도로의 불빛을 받아 어둠 속에서 이파리의 진한 초록빛이 숨길 수 없는 생명력을 반짝이며 드러냈다. 도로의 불빛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다른 집들의 틈새 사이로 10차선 도로의 일부가 드러났다. 멀리 어둠 속의 자동차들은 헤드라이트 불빛과 함께 시야 속으로 달려왔다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는 소리와 저 멀리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가 옆집에서 틀어둔 노래의 드럼과 멜로디 라인처럼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 <첫 집 연대기> p.187

 

저자는 새집에 살면서 바람이 불면 삐걱거리는 구석을 살피고 봄이 오면 천장에 낀 거미줄을 걷어 줘야 한다는 걸 배운다. 또한 포기할 수 있는 것과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을 골라내면서 이제껏 쌓아왔던 생각과 취향을 돌아보기도 한다.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따라가다 보면, 집은 사람의 행동은 물론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변화를 안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집이란 숫자나 취향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 그곳에 사는 사람의 세계를 확장하거나 뒤바꾸기도 한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도서명.
첫 집 연대기

가격.
1만5000원

지은이.
박찬용

출판사.
웨일북

판형 및 분량.
128 x 188mm,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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