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인가 구원자인가? 리움에 출몰한 ‘문제적 작가’

에디터. 윤정훈  자료. 리움미술관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에게 권위란 그저 조롱의 대상에 불과한 듯하다. 고고한 미술관 로비에 노숙자(모형)들을 모셔 두는가 하면, 작품 설치를 위해 멀쩡한 바닥을 뚫어버리니 말이다. 이뿐만 아니다. ‘신의 대리인’으로 여겨지는 교황이 운석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고, 마트에서 사온 바나나를 벽에 붙여 12만 달러(한화 약 1억 5000만 원)에 팔아버린 전력도 있다.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살면서 당연히 믿어온 것들에 ‘어라?’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괴팍하고 우스꽝스러운 면모 뒤에 숨겨진 발견의 묘미다.

리움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가 열리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카텔란의 개인전이며,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의 개인전이다. 대표작 ‘모두’, ‘우리’, ‘아홉 번째 시간’, ‘코미디언’ 등을 비롯한 조각, 설치, 벽화 등 주요 작품 총 38점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중 놓쳐서는 안 될 대표작 6점을 소개한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하늘의 벌을 받은 교황? : ‘아홉 번째 시간’
운석을 맞은 교황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쓰러져 있다. 제작 당시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르 2세를 표현한 도발적인 작품, ‘아홉 번째 시간’이다. 종교적 지도자이자 바티칸 시국의 원수인 교황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은 이러한 시도는 카텔란이 권위를 다루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짓궂은 농담일까, 권위에 대한 신랄한 비판일까. 1999년 쿤스트할레 바젤에서 처음 선보인 이래 장소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일으킨 이 작품은 전시장을 넘어 사회적 관행과 질서, 권위와 신념을 재고하도록 한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잔혹의 역사는 어디선가 되풀이되고 있다 : ‘그’
‘그’라는 인칭대명사를 사용했지만 보는 순간 단번에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 아돌프 히틀러의 모습이다.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지만 생전에 참회하지 않았던 히틀러. 카텔란은 이 기묘한 조각을 통해 여전히 잔존하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열하게 고민하도록 한다. 히틀러는 죽었지만 학살과 혐오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여전히 유령과 같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듯하다. 작품은 관람자로 하여금 질문하고, 토론하도록 한다. 히틀러가 참회한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 진정한 용서와 화합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는 진정 과거로부터 가르침을 얻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저마다의 비극을 떠올리는 순간 : ‘모두’
레드카펫 위에 놓인 아홉 구의 시신. 비극적 참사의 현장을 연상케 하는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스크린을 통해 사고를 접했을 때의 무심함과는 다른, 좀 더 복잡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흰 천 아래는 있는 것은 대리석 조각일 뿐이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길. 기념비에 쓰이는 카라라 대리석으로 만든 이 얼굴 없는 조각들은 익명의 죽음에 대한 기념비를 뜻하며, 보는 이 각자에게 깊이 새겨진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섬세하고 현실적인 천의 주름은 모순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마치 참혹한 장면임에도 구경을 멈출 수 없는 모순된 심리처럼.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내 안의 또 다른 나 : ‘우리’
양복을 입은 두 남성이 가지런히 침대에 누워 있다. 장례식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가의 얼굴과 닮았다. 현대미술에서는 작가의 정체성이 예술적 실천이 되기도 한다. 1960년대 이탈리아 개념미술 운동의 대표 주자 알리기에로 보에티가 자신을 알리기에로와 보에티라는 두 사람이 합쳐진 쌍둥이라고 선언했듯 말이다. 보에티의 ‘쌍둥이’가 개인과 사회, 질서와 무질서를 왕복하며 분열하는 존재를 대변했다면 카텔란의 이중 자화상 역시 삶과 죽음, 권위에 대한 오마주와 전복을 한꺼번에 단행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한 쌍의 창백한 얼굴은 우리 안의 내적 갈등과 모순을 들여다 보게끔 한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소변기 다음은 바나나? : ‘코미디언’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는 카텔란은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 받는다. ‘코미디언’은 2019년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처음 등장한 문제작이다. 카텔란의 지시에 따라 벽에 덕테이프로 붙은 바나나는 12만 달러에 낙찰됐으며, 바젤이 끝나는 다른 작가는 바나나를 떼서 먹어 버렸다. 이윽고 작품은 새 바나나로 교체됐고, 갈수록 인파가 몰려들어 운영의 어려움을 느낀 갤러리는 작품을 내리기에 이르렀다고. ‘코미디언’이 시사하는 바는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판단하는 모순된 기준이다. 이런 질문도 해볼 수 있다. 수많은 사물 중 왜 하필 바나나였을까? 시간이 지나면 썩는 바나나를 그냥 두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미술계의 침입자 : ‘무제’
바닥을 뚫고 머리를 내민 침입자를 표현한 작품.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바 있다. 당시엔 18세기 네덜란드 대가의 회화가 잔뜩 걸린 방에 설치되어 그림 도둑처럼 보였는데, 영화 ‘마돈나 거리에서 한탕’(Mario Monicelli, 1958)에서 전당포에 침입하려다 실수로 아파트 부엌으로 나온 주인공 같기도 하다. 아니면 바닥 아래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관람객을 초대하려는 시도일까? 한편 인물의 얼굴은 카텔란을 많이 닮았다. 따라서 작품은 스스로를 기성 미술계 어울리지 않는 외부인으로 여기는 카텔란의 정체성을 품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서인지 작품의 제목은 ‘무제’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예술계의 어릿광대를 자처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무례하고 뻔뻔한 태도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동시에 특유의 익살과 유머로 예술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그는 침입자일까, 구원자일까?
관람료는 무료, 온라인 사전 예약 후 관람 가능하다. 더불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다층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전시명.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주최.
리움미술관

일시.
2023년 1월 31일(화) ~ 7월 16일(일)

장소.
리움미술관(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 55길 60-16) 

관람료.
무료

홈페이지.
www.leeum.org

문의.
02-2014-6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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