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 ‘2023 프리츠커상’ 수상

에디터. 윤정훈  자료. 하얏트재단 The Hyatt Foundation

 

루이스 바라간, 리처드 마이어, 프랭크 게리, 알바로 시자, 안도 다다오, 렌조 피아노, 노먼 포스터, 렘 콜하스, 헤르조그 앤 드 뫼롱, 리처드 로저스, 장 누벨, 페터 춤토르⋯. 건축을 잘 몰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 건축상The 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라는 것. 
1979년 제정되어 매년 수상자를 선정, 올해로 52회를 맞는 프리츠커상의 수상자가 지난 7일 공개됐다. 섬세하지만 강력하며, 차분하고 우아한 언어로 세계 곳곳에 건축물을 설계해 온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Sir David Alan Chipperfield’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어떤 이유로 올해 프리츠커의 선택을 받게 됐을까?

 

데이비드 치퍼필드 ©Tom Welsh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의미와 기억의 수호자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훼손되거나 버려진 건물의 가치를 되살리는 프로젝트에서 남다른 통찰력과 섬세한 해법을 선보여 왔다. 본래 건물의 디자인과 구조를 복원하되 당대 사용된 재료와 비슷한 소재를 사용하는 등 이질적이지 않은 방식을 택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년 간 방치된 ‘베를린 신 박물관Neues Museum’을 복원할 때는 총탄의 흔적이 남은 기둥을 보존해 그대로 드러내되, 완전히 폐허가 된 부분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메웠다. 베니스의 16세기 관청 건물 ‘프로큐라티 베키에Procuratie Vecchie’를 복원할 때는 지역 장인들과 협업해 ‘건축과 공예가 결합된’ 건축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복원한 단순 보존보다는 가치를 더해 재건한 건축물은 해당 건물의 시간은 물론 도시의 진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베를린 신 박물관(The Neues Museum) ©Ute Zscharnt for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베를린 신 박물관 ©SMB / Ute Zscharnt for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치퍼필드는 건축물 복원에 대한 그의 신념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건축가로서 저는 의미, 기억, 유산의 수호자입니다. 도시는 그 자체로 역사의 기록이고, 건축은 어느 시점부터 역사적 기록이 됩니다. 도시는 역동적이며 진화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건물을 없애고 다른 건물로 대체합니다. 최고의 건축만을 보호하는 개념은 더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도시 진화의 풍요로움을 반영하는 특성과 자질을 중요하게 여겨야 할 때입니다.”

 

프로큐라티 베키에(Procuratie Vecchie) ©Alessandra Chemollo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거대한 관계망을 만드는 건축
치퍼필드는 공공 건축물이든 민간 건축물이든, 건물을 통해 지역 사회에 거대한 관계망을 만들어낸다. 그의 건물은 건물 안팎을 드나드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공존과 교감의 기회, 사회적 소속감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모레퍼시픽 본사 설계 시 유리벽에 알루미늄 루버를 덧대 반투명한 외관을 만들었으며, 1층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제안하는가 하면 건물 한가운데를 뻥 뚫어 공중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커뮤니티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Noshe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아모레퍼시픽 본사 내부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건축가
말하자면 치퍼필드는 유행 및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건축가다. 그의 건물에서는 고유한 스타일이나 기법을 발견하기 어렵다. 특정 사조 또는 스타일을 고집하는 대신 건물이 놓일 지역의 상황을 신중하게 고려한 채 불필요한 요소는 제하고 물리적, 문화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건축물을 선보인다. 건축가의 존재를 지움으로써 보다 지속가능하고 지역 상황에 맞는 건물을 짓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후메스 박물관(Museo Jumex) ©Simon Menges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제임스 시몬 갤러리(James-Simon-Galerie) ©Célia Uhalde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비정형적이고 실험적 형태로 건축의 가능성을 넓히는 건축가가 있다면 치퍼필드는 꾸준히 정반대의 노선을 택해 왔다. 프리츠커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축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건물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다. 다만 상황에 따라 특별하게 디자인된 치퍼필드의 건물을 볼 수 있을 뿐이다.” 환경뿐 아니라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지속가능성이 화두가 되는 지금, 시간과 지역에 대한 사려 깊은 존중은 우리에게 좋은 건축 그 이상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터너 컨템포러리(Turner Contemporary) ©Simon Menges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이나가와 묘지 예배당(Inagawa Cemetery Chapel and Visitor Center) ©Keiko Sasaoka <사진 제공=하얏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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