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자료. 도서출판 동아시아
5년차 연인은 결혼 대신 함께 살기 위한 집을 먼저 마련하기로 했다. “집 안에도 바깥 공간 한 평이 있는 집”을 찾은 끝에 만난 곳은 지붕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한옥. 수리비가 억대로 나온다는 말에 집주인마저 공사를 포기해 내놓은 서촌의 폐가였다.
애당초 한옥살이에 대한 로망은 있지도 않았다. 그저 마당에서 하늘을 보며 빛, 바람을 안주 삼아 맥주 한잔하기 바랐을 뿐이다. 어쩌다 덜컥 사버린 집을 수습하는 과정은 한 마디로 ‘대환장파티.’ 하지만 고생 끝에 둘만을 위한 10.5평의 한옥을 얻게 됐다. 평범한 30대 직장인 커플은 어쩌다 도심 한복판에 한옥을 짓고 살게 됐을까?
아파트 중심 도시 서울에서의 험난한 한옥 짓기 여정을 담은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생활자’가 출간됐다. 저자 한은화는 16년차 건축 기자이지만 집 짓기는 난생처음인 초보 건축주다. 유명 건설사의 브랜드가 박힌 신축 아파트는 대한민국 대다수가 꿈꾸는 성공한 삶의 표본이 되었다. 하지만 획일화된 주거 공간은 개개인의 삶을 너무 쉽게 평가와 비교의 대상으로 만들기 쉽다. 저자가 반려자와 함께 집을 지은 이유는 결국 ‘나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재개발과 재생 이슈로 시끌벅적한 동네가 아닌 원하는 ‘삶터’를 찾다 발견한 것이 한옥이었다. 내집 옆에 갑자기 5층짜리 빌라가 들어서거나 카페, 술집 등이 생길 일이 없어 조용한 삶이 가능한 곳. 개발 가치 없는 한옥보존지구는 두 사람에게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다.
형편에 맞는 토지와 건축물을 매입하는 일부터 건축가 및 시공사 선정, 공사 후 집을 이루는 수많은 자재를 선택하기까지, 집을 짓는 일련의 과정은 생각만으로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양옥에 비해 규제가 심한 한옥이라면 집 짓기 난이도는 ‘극상’에 달하게 된다. 집을 구입하고 나서야 알았다. 한옥은 양옥에 비해 공사비가 최소 2~3배 비싸다는 것을.
정부에서 보조하는 한옥 지원금을 받기 위해 관련 규제를 따라야 하는데, 조선시대 한옥을 기준으로 삼아 건축 해당 규제를 따르다 보니 공사비가 더 드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한옥은 시대에 따라 타일, 유리를 사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통 보전이라는 미명 하에 변화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곡선으로 지을 수 없기에 81.4제곱미터의 땅에 집은 10평 남짓하게 지을 수밖에 없고, 2층 이상으로 올릴 수도 없다. 우여곡절은 이뿐만이 아니다. 24.6평으로 알고 산 땅이 실측 결과 18평인가 하면, 구입한 땅이 맹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100장이 넘는 검토 요청서를 만든다. 땅속에 묻힌 지뢰를 제거하는 기이한 경험도 하게 된다.
책은 단순한 집 짓기 에세이가 아닌 한국 주거 정책의 민낯을 탐사하는 르포르타주다. 저자는 집이 지어지는 순간순간 우리나라 주거 정책의 한계를 그 누구보다 직접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주거를 위한 기본적인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오래된 동네는 방치될 뿐이고, 사실상 개선 가능한 방법은 민간 개발밖에 없다. 양·한옥을 포함한 단독주택을 지으려면 아파트보다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이 줄어든다. 요목조목 비판한 현실을 보고 있으면 우리네 건축법과 주거 정책이 획일화된 주거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했음을 알 수 있다. “아파트가 아닌 다른 집에서 사는 것을 더는 꿈꾸지 못하는 시대”인 것이다.
저자의 경험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도시 환경에서 취향에 맞는 집을 갖기란 예상을 훌쩍 넘는 수준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건물을 만드는 것은 인생을 만드는 것”이라는 루이스 칸의 말처럼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책은 기준에 못 미치더라도 원하는 집에서 “나만의 생태계”를 가꿔가는 삶의 기쁨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러한 삶을 꿈꿔보기를 과감히 권하고 있다.
도서명.
아파트 담장 넘어 도망친 도시생활자
저자.
한은화
출판사.
도서출판 동아시아
발행일.
2022년 3월 23일
- 판형 및 분량.
135 x 190mm, 352쪽
- 가격.
- 1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