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단상을 고이 모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展

에디터. 정경화  자료.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를 코끝 시린 감정이 밀려온다. 도시의 흔한 일상을 그렸을 뿐인데. 적막한 고독이 배어나고 한편으로는 위로감도 남는다. 도시의 공허를 드러내지만, 이게 나만의 감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위안으로 다가오기 때문일까.
코로나19로 인해 고립과 단절이 극심해졌던 최근, 그의 그림은 더욱 공감을 얻으며 재조명받았다. 지난 2020년, 영국 가디언지는 ‘오늘날 우리는 모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의 예술가인가?’라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고독과 위로를 동시에 전하는 그의 작품이 서울에도 찾아왔다. 4월 20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열리는 전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라는 이름으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 2023, 서울시립미술관.

 

이번 전시는 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 일상을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하는 요즘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국내 첫 대규모 개인전으로, 작가에 관해 독보적 자산을 소장한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공동 기획해 무려 270여 점의 작품과 자료를 선보인다. 숫자로는 짐작이 가지 않는 방대한 규모의 아카이브를 3개 층 전시실에 7개 섹션으로 차곡차곡 나누어 담았다. 이를 통해 그가 뚜벅뚜벅 걸어온 65년의 일생을 엿본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 2023,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제목 ‘길 위에서’는 호퍼가 전시의 섹션인 네 곳의 도시로 향하는 길이자 그곳에서 자신만의 예술을 일구는 여정이고, 나아가 우리가 그 길 위에 서 있는 호퍼를 조우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전시기획자의 글

 
에드워드 호퍼, 〈비스트로 또는 와인 가게〉, 1909. 캔버스에 유채, 61 × 73.3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87.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주목할 관람 포인트는 에드워드 호퍼가 오래 머물고 애정했으며, 작품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던 네 곳의 도시를 주제로 한 섹션이다. 첫 번째로 파리는 그가 학교를 졸업한 뒤 미술을 독학하기 위해 떠났던 곳이다. 이곳에서 작업한 초기작에는 당시 유럽에서 인기였던 인상주의의 흔적이 엿보이며, 대담한 구도, 빛과 그림자의 강한 대비 등 호퍼다운 요소 또한 함께 드러난다. ‘뉴욕’에서는 도시에 대한 관찰이 두드러진다. 그는 고가철도를 타고 아래를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고 텅 빈 거리나 모퉁이에 주목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교각이나 마천루를 좇던 시선은 점차 자연을 향한다. 도시에서 인공적이나마 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공원을 즐겨 그렸고, 특히 센트럴 파크가 자주 등장한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전경, 사진 홍철기. ⓒ 2023, 서울시립미술관.
에드워드 호퍼, 〈오전 7시〉, 1948. 캔버스에 유채, 76.7 × 101.9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and exchange 50.8.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그가 자연을 다루는 지평은 뉴잉글랜드와 케이프코드에서 더욱 넓어진다. 이 시기는 그가 아내 조세핀 니비슨 호퍼를 만나고 본격적으로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도시의 자연을 다각도로 묘사하며 문명과 자연의 조화를 표현했고 수채화와 유화를 그리며 표현 방식을 성장시켰다. 때로는 상상을 더해 건축물이 자연에 침입하는 것처럼 그리기도 했다.

 

에드워드 호퍼, 〈황혼의 집〉, 1935. 캔버스에 유채, 92.1 × 127 cm.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Richmond. John Barton Payne Fund, 53.8. Photo: Katherine Wetzel. ©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에드워드 호퍼는 어렸을 때부터 미술을 했지만, 작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한 것은 40대 이후, 훗날 그의 아내가 된 조세핀 호퍼를 만나고 부터다. 작가가 되겠다는 열망은 늘 있었지만 생계를 위해 삽화가로 오랫동안 일하며 원치 않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고, 초기에는 혹평도 받았다. 그는 비범한 예술가이기 보다는 꽤 평범한 삶을 살았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도시의 고독은 어쩌면 그 또한 일상적인 도시민으로 경험했을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로 인정받고자 끊임없는 노력은 그를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오늘날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다. 여러 화가는 물론 알프레드 히치콕, 마틴 스콜세지 등의 영화감독 또한 그의 영향을 받았고, 국내 CF나 뮤직비디오에서도 여러 차례 오마주 되었다.

 

에드워드 호퍼,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캔버스에 유채, 102.1 × 127.3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purchase with funds from the Friends of 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60.54.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어디를 가든 늘 관찰자가 되어 풍경을 바라보고, 상상과 실제가 뒤섞인 세계로 펼쳐 놓았으며, 이제 그 작품을 통해 수많은 이들에게 다시금 영감을 주는 그의 세계를 따라가 보자.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건축가 유현준의 강연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전시는 8월 20일까지.

 
에드워드 호퍼, 〈철길의 석양〉, 1929. 캔버스에 유채, 74.5 × 122.2 cm.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New York; Josephine N. Hopper Bequest 70.1170. © 2023 Heirs of Josephine Hopper/Licensed by SACK, Seoul

 

 


전시명.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일시.
2023년 4월 20일(목) ~ 2023년 8월 20일(일) 

장소.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서울시 중구 덕수궁길 61)

입장료.
티켓 1만 7000원

홈페이지.
sema.seoul.go.kr

문의.
1588-8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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