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만끽하는 새로운 방식, ‘서울 대청’

에디터. 윤정훈  사진. 윤현기  자료.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높고 낮은 건물과 도로의 차들로 둘러싸인 서울 도심 한복판, 한옥에서만 보던 널찍한 대청마루가 들어섰다.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옥상에 마련된 ‘서울 대청’은 덕수궁 돌담과 높이를 같이하며 도시 풍경을 새롭게 감각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지난 12일, 서울 대청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는 큐레이션 토크가 열렸다. 공모에 당선된 강현석·김건호 소장(SGHS)을 비롯해 공간 조성 과정에서 협업한 권원덕 소목장과 서형석 대표(산수조경)가 패널로 참여했으며, 박정현 건축 평론가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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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정현 평론가, 권원덕 소목장, 강현석 소장, 김건호 소장, 서형석 대표 ©BRIQUE Magazine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은 2019년 조선총독부 체신국 터이자 국세청 별관이 있던 자리에 개관했다. 서울시는 세종대로보다 약 3m 높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전시관 옥상에 서울마루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곳을 시민 휴게 및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서울마루 공공개입’ 공모전을 열었다. 2021년 당선된 스튜디오 히치의 ‘서울 어반 핀볼 머신’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공모에 SGHS(설계회사)의 계획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서울 대청’ 전경 <사진 제공=서울도시건축전시관> ©김재경 
<사진 제공=서울도시건축전시관> ©김재경

 

땅을 더하는 일
전시관이 위치한 세종대로 일대는 조선 시대부터 일제 식민지까지, 현대까지 두터운 시간의 켜가 쌓인 장소다. 덕수궁, 서울시의회, 성공회 본당, 서울시청, 서울도서관과 같은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부터 아득한 높이의 고층 빌딩이 공존한다. SGHS는 이러한 복잡한 맥락의 땅에 다른 요소를 더하지 않고 또 하나의 새로운 ‘땅’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미 건물과 도로를 비롯한 많은 요소가 옥상을 둘러싸고 있기에 벽과 지붕은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들어 올려진 바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도로에서 몇 발짝 올라 이곳에 서면 탁 트인 개방감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경계에 둘러싸인 듯하다. 이윽고 사방에서 익숙한 도시 풍경, 햇빛과 바람이 새삼스레 다가오기 시작한다. 

 

도시를 위한 대청마루
서울 대청은 이름처럼 거대한 마루를 연상케 한다. 이곳에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를 더하기보다 도심 한복판 자리한 공공 옥상의 역할을 부각하기로 했다. 강현석 소장에 따르면 서울 대청은 “서울마루에 기대어” 출발한 프로젝트다. 옥상 공간의 목적과 의미를 다시 환기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감각하는 공공 장소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또한 대청마루의 전통적 역할과 의미를 도시에 적용하고자 했다. “한옥에서 대청마루는 방과 방을 연결하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대청의 역할을 도시로 확장해 주변의 역사적 장소를 연결한다는 의미 또한 담고 있죠. 제사를 지내거나 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이 연장되는 가변적 장소이기에 도시 속 다양한 활동을 수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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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개의 평상과 이끼 정원
공간은 건축, 목공, 조경의 긴밀한 협업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나의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높이 75cm의 평상 126개로 이루어진 집합체로, 각 평상 유닛의 접합부는 전통 가구의 금속 장석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디테일은 소목장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 권원덕 소목장은 “건축물 안에 들어가는 가구를 만들어온 제게 ‘서울 대청’은 무척 흥미로운 제안이었다”며, “야외에 설치되는 작품이기에 목재 두께, 구조 보강, 마감 등에 있어 수정을 거듭했지만 가구라는 작은 요소를 건축으로 확장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다”고 소회를 밝혔다.  
평상 아래에서는 이끼들이 은밀하게 자라고 있다. 격자식 구조로 설계해 적절한 빛과 바람이 들도록 했는데, 눈에 잘 띄는 주변부가 아닌 구조물 아래 정원을 조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 소장은 이 또한 감각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답했다. “평상과 그 아래 공간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일이 저희에겐 무척 중요했습니다. 격자 구조로 다공의 표면을 연출한 것 역시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죠. 비록 앉은 자리에서는 아래 이끼가 잘 보이진 않지만 결국 ‘어디 위에 앉아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존 옥상의 석재 포장면 위에 앉을 때와 들어올려진 틈 사이에 조성된 이끼 정원을 인지하고 앉을 때 느끼는 심상은 분명히 다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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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증폭되는 공간
이곳 서울 대청에서는 일상에서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공간을 경험하는 데 있어서 시각만큼 중요한 것이 청각이라고 판단, 의도적으로 풀벌레, 바람소리, 물소리와 같은 사운드를 틀어 놓은 것이다. “소리는 무척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공간을 정의해주죠. 저희가 의도적으로 틀은 사운드가 주변으로 퍼지면서 도시의 소음과 뒤섞이는데, 이렇듯 모호한 경계를 만드는 점은 프로젝트의 취지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직접 자연에서 소리를 채집하진 않았지만 속된 말로 “멍을 때리게 하는” 음성을 수집했다. 더불어 한 트랙마다 5분의 공백을 두어 당연하게만 여기던 도시의 소음, 이따금씩 울려 퍼지는 새소리에도 집중하길 바랐다.

일정 기간 설치되는 공공 건축물이기에 예산 확보나 조성 과정에 있어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펜스 등 본래 디자인보다 덧댄 요소가 많고, 집회 및 시위 인원에 의해 공간이 점유되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건축가는 그 또한 저들이 “빈 땅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며, “공공 장소가 담아야 하는 혹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냐”며 유쾌하게 답했다. 서울 대청은 오는 12월 7일까지 약 3개월간 전시된 후 이전될 예정이다.

 

<사진 제공=서울도시건축전시관> ©김재경
<사진 제공=서울도시건축전시관>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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