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종우 글 & 자료. 나인디렉터스앤컴퍼니 + 나인아키텍터스 9Directors & Company + 9Architectus
건축주와 건축가는 군대에서 선후임으로 만난 사이다. 애송이 시절이었지만, 선임은 언젠가 자신의 집을 지을 때엔 건축가 지망생이었던 후임에게 꼭 맡기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다.
2018년 건축가는 구미로 향했고, 선임이었던 건축주와 20여 년 만에 재회를 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면서 부부와 아이 둘로 구성된 4인 가족의 집을 함께 구상하기 시작했다.
참 행복한 프로젝트였다. 오랜 시간동안 부부가 나이들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공간을 만들고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건축가의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 있는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건축주는 건축가의 의견과 제안을 충분히 신뢰하였기에, 단순히 설계만이 아니라 자금 계획에서부터 설계, 시공사 선정, 시공 감리, 공사비의 정산, 세무처리 등 건축의 전 과정을 건축가에게 맡겼다. 빠듯한 예산에 서울과 구미를 오가며 1년여 동안 선임을 뒷바라지하는 의무(?)가 자연스럽게 주어졌지만, 20년간의 건축 경험을 온전히 투영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시험대가 됐다.
집 터는 구미시 봉곡동에 위치한 약 291㎡(88평)의 대지였다. 봉곡동은 구미시의 구도심에서 서북 방향에 위치해 있으며 도시계획으로 반듯하게 구획된 장소이다. 제2종 일반주거지역(건폐율 60%, 용적율 200%)으로 근린생활가로의 이면도로의 교차로에 접해 있으며, 북쪽에는 대단지의 아파트가 위치했다. 남측으로는 초등학교와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
건축주는 임대 용도의 근린생활시설 2개층과 약 40여 평의 단독주택이 결합된 형태를 요구하였으며, 옥상 공간을 활용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 같은 외부공간이 만들어 줄 것을 원했다.
주택의 경우, 네 명의 가족을 위한 안방, 아이방, 놀이방, 분리된 서재, 거실과 주방이 필요했다. 놀이방과 서재의 경우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손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했다. 남향의 채광, 북향의 테라스를 향한 개방과 연결이 중요한 요소였으며, 4층의 서재를 통한 옥상 마당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지상 1, 2층의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이면 생활가로상에서의 이용상 편리를 확보해야 했고, 임대인들의 바뀔 때를 대비할 수 있는 범용성 있는 공간 계획과 동선 계획이 이뤄져야만 했다.
건축가는 단순한 매스와 단일 재료를 통해 전체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각 부분의 기능과 동선, 채광, 건축적인 아이덴티티를 적절히 구성하고자 했다. 외부계단 및 바닥까지도 동일한 재료인 시멘트 벽돌을 적용했고, 수직적인 층고의 변화 및 기능의 변화에 대응하는 다양한 개구부의 형식을 적용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과 변주를 계획했다. 이를 통해 전체적인 밸런스를 찾아가는 지점을 중요하게 판단했다.
이 흐름을 외부에 노출된 수직동선에 동일하게 적용해 직관적으로 인지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동시에 생활가로에서 건축 아이덴티티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로 활용하고자 했다.
교차로 모퉁이에 위치한 대지의 특성에 대한 대응 방식 또한 중요한 지점으로 여겼다. 일관성을 확보하고자 2개 면의 도로면과 가각부의 입면을 분리하지 않고 창호 및 가각부의 곡면처리 등 다양한 건축적 요소를 활용해 연속되는 입면의 전개로 해석되기를 원했다. 이는 전체적인 측면에서 건축적으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생활가로에서 도시의 구성요소로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이라 생각한다.
작은 규모의 건축과정이었으나, 가족이라는 사회적 구성단위가 천편일률적으로 생산된 공간에서 벗어나는 건축적 해방과 자유를 위한 안내자 역할에 집중했다. 이는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사회적 흐름에 있어 건축의 가치를 형성하고 건축가의 역할을 자리매김하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