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유영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플랜 PLAN Architects office
정주 여건과 동네 문화
건축주가 집터를 고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자연환경이었다. 간선도로변에서 멀리 위치해 차량 소음의 영향이 적고, 마을을 감싸 안은 녹색 공원이 사계절 다양한 풍경을 보여줄 뿐 아니라, 숲이 자아내는 맑은 공기가 상쾌한 일곡동 자연마을. 건축주는 이 땅에 가족의 일상과 일생을 맡기기로 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 동네에 뿌리내리기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건축주는 집을 짓기 전 동네 빌라에 살며 문화를 경험하고, 이웃을 사귀면서 집 짓기에 적당한 위치를 고민했다. 주변에 지어지는 집들을 관찰하며 마음에 드는 시공자와 설계자를 찾는 등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갔다. 이후 거주지 주변에 부지를 매입한 후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외마당과 안마당
동쪽이 1.2m가량 낮은 부지에는 주 출입구를 북향으로 둔 단층 주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폐율 40% 미만 지역에서 건축주가 요구하는 규모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3개 층이 필요했으나, 그보다는 다소 낮고 수평적인 비례의 집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초기에는 지하층을 가진 2층 규모로 검토했지만, 지형 차이가 1.2m로 낮은 편이라 지하 상부가 건폐율에 산정되는 문제가 있어 3층 집을 짓기로 최종 결정했다. 다만 상부를 경쾌하게 처리하고 도로변에서 매스를 분절하여 시각적 부담을 상쇄하는 방식을 취했다.
건축주의 성향을 고려해 부지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사회적 마주침이 가능하도록 성격이 다른 마당 두 개를 제안했다. 안마당은 거실의 레벨에 맞춘 사적 공간으로, 외마당은 주차장과 도로의 레벨에 맞춘 사회적 공간으로 규정했다. 일곡동 자연마을에는 반려견과 함께하는 산책과 마실 문화가 잘 정착되어 있다. 산책하는 이웃에게 현관문을 통하지 않고 낮은 담장 너머로 인사를 건넬 수 있는 부분 개방적인 외마당과 가족이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안마당의 조화는 이 집을 다른 집과 차별화한다. 더불어 단독주택에서의 사회적 공간 탐구라는 지점에서도 소기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보편성과 순환적 공간
내부는 1층 가족 공용 공간, 2층 침실, 3층 취미실과 별채로 구성했다. 보편적 방식으로 실을 안배해 편안하고 익숙함을 추구하되 실별로 특성을 주고자 했다. 아이들 각각을 위한 방을 만들었으나 널따란 마당을 둠으로써 아이들이 문화를 공유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 예다. 본채에서 별채로 가는 동선에는 툇마루와 하늘 마루를 두어 주변 공원을 조망하는 재미를 주었다. 다이닝룸 유리창으로는 안마당과 적벽돌 담장, 그 너머 외마당의 백일홍이 한눈에 들어온다. 입체적인 경관을 공유하며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 공간은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이 집이 기능적이고 편리한 구성에만 집중한 ‘예쁜 방들이 모여 있는 덩어리’로 인식되는 것을 경계했다. 때문에 1층 거실과 2층 복도에 유리 바닥, 주차장과 거실 알코브 사이에 세로로 긴 창을 두어 공간이 시각적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또한 방들이 열린 마당으로 연결되는 순환적 구조를 계획해 구성원 사이에 교감을 만들고자 했다. 도로변 2층 창호 너머로 알루미늄 타공 패널을 설치한 일차적 이유는 내부 공간을 스크린하는 기능을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기능에서 더 나아가 차갑고 무심한 배면이라는 인상을 지우는 동시에, 따뜻한 조도와 입체적 형태의 경관을 조성함으로써 골목 풍경을 더욱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