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현경 글 & 자료. 씨드아키텍츠 CIID
합정동. 변신(Metamorphosis) 중인 동네
합정동은 홍대 상권의 확장과 당인리 발전소 공원화 계획에 힘입어 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발전소 노동자들의 주거지와 생활 터전이었던 이곳이 현재는 특별한 느낌의 거리로서 가치가 변한 것이다. 이런 흐름에 예민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나름의 문화 감성으로 곳곳에 모여들게 되니 조금씩 드러나게 되어 이곳만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오랜 시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건축주는 1990년 후반 ‘걷고 싶은 거리’의 끝자락이자 상권의 영향이 비교적 덜 미친 조용한 주택가였던 이곳에 사옥을 자리 잡았다. 건축주는 이곳에서 20여 년이 흐르는 기간 동안 그렇게 열정적인 삶을 이어오다가 최근 고별전을 끝으로 주변을 정리하며 인생 2막의 새로운 꿈을 구상하던 도중 우리를 만나게 되었다.
짓기. 옷을 짓기(Make). 건물을 짓기(Build).
사실 이 건물은 오랫동안 교회의 예배당, 교육관, 식당, 숙소로 사용되며 주민들에겐 꽤 알려진 장소였다. 그러다가 교회가 이전하게 되며 새로운 임대 방향을 고민하던 건축주는 최근 이 동네의 동향에 맞추어 일반 임대 건물과는 차별화된 성격을 부여해 새로운 문화적 콘텐츠를 수용 할 수 있는 건물로 바꾸고자 하였다. 특히 동네 주민들의 모임 장소였던 이곳의 성격을 이어나가 옛 것과 새 것이 함께 조화하는 좀 더 적극적인 소통의 장이 되길 희망했다.

20년이나 된 건물은 너무 낡아 새로운 단장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리고 겉만 화려한 새 모델을 세우기보다는 익숙한 스케일의 덩어리는 그대로 존치하게 하되, 여기저기 망가진 곳을 수선하며 덩치에 적절히 맞는 옷으로 갈아입히는 것이 최대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새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좋은 이곳만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수용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 테니까.
우리는 리모델링의 특성상 공사 중에 발견되는 여러 즉흥적 상황, 문제들에 대해 덧붙이거나 수정해가며 건축해 나가는 과정이 옷을 짓는 과정이 모델의 체형과 핏에 맞추어 하나하나 꼼꼼히 완성해 나가는 점과 유사하다고 여겼다. 건축가가 주도하는 일방적인 방법론이 아닌 의상 제작방식 중 하나인 커스텀 메이드custom made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작품-로서 패션디자이너인 건축주와 콜라보collaboration 방식으로의 작업을 제안하게 되었다.
입기. 연속된 주름(Pleats)이 만드는 파사드façade
먼저, 건물의 내부와 외부 가로가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교류가 일어나길 원했다. 그래서 1층에는 투명한 유리로 최대한 개방감을 주어 가로에서 내부로, 내부에서 가로로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였다. 주변처럼 카페나 레스토랑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을 텐데 그동안 주민들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을 계속 이어서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방문객인 외지인 또한 거리를 거니는 주민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이 동네가 그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장소임을 무의식중에 느낄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여기에 기존의 예배당 역할을 위해 닫혀 있었던 지하는 동굴 입구 같았던 계단실 벽과 1층 바닥을 일부 오픈하도록 해 가로가 지하까지 확장되도록 했고 채광과 시선, 움직임이 개방되어 임대공간으로서 가치와 접근성을 극대화했다. 기존 벽돌 마감의 거친 물성을 부분적으로 철거함으로써 그 느낌을 강조해 이 공간의 세월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연출했다.
상층부(2층~4층)는 주변 다세대 주택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완전히 열린 구조이기보다는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줄 보호막이 필요했다. 빛과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 않고 움직임과 실루엣이 드러나는 시스루 커튼의 개념을 바탕으로 기능과 내구성에 대한 고민 끝에, 기존의 마감재 위에 덧입힌 개념으로서 메탈에 ‘플리츠’라는 섬유 직물의 주름 접기 방식을 부분적으로 적용한 ‘파셜 플리츠’를 구상해냈다. 펀칭 메탈의 소재가 강한 빛은 걸러주고, 내부에서 바라보는 외부의 편집된 실루엣은 인접 거주공간과 가까운 거리로 인한 불편함을 새로운 풍경으로 치환되게 해준다. 구부려진 금속 패널이 교차하며 연속된 흐름은 주름진 커튼처럼 시각적으로 느껴지게 하고, 가로에서 바라볼 때의 금속패널 표면에 어스름하게 반사되어 입혀지는 주변 풍경의 색감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게 하여 메탈의 차가운 속성을 소거시킨다.
5층은 증축해 서로 연계가 가능하도록 복층 형태로 두어 다양한 성격과 규모의 임대 요구에 대응하는 역할을 한다. 주변 프라이버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정면의 뷰를 멀리 당인리 발전소 공원과 한강을 향해 열어둠으로써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조망의 장점을 극대화했다. 높은 층고를 바탕으로 앞쪽과 뒤쪽이 동시에 열려있도록 해 내부에서 최대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게 한 점은 주거지에서 쉽게 누리기 어려운 특별한 공간적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그곳 만의 장소성을 부여했다.
즐기기. Enjoy Life
누군가에게는 이 동네가 특별한 경험을 위한 방문의 장을 제공하는 곳이라 한다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도시 근로자로서의 정주지이면서, 외국인 여행객들의 방문지, 좋은 추억을 누리기 위한 힙한 동네인 이곳은 다양한 목적을 가진 이들이 살고 부딪치는, 조용하지만 역동적인 장소로서 점점 변해가고 있다.

그런 도시풍경의 배경 중 하나로서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 존재했던 건축물 또한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려는 움직임에 동감해 줄 필요가 있다. 생명력 없는 오래된 건축물로 여겨 그 가치를 평가절하해 없애고 새로 만들기 전에, 동네의 추억과 역사를 담고 맥락을 이어갈 수 있는 가소성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유기체라는 관점에서 좀 더 깊게 바라봐 주었으면 한다.

‘파셜 플리츠’는 동네에서 새롭게 변화하는 수많은 건축물 중 하나일 뿐이지만, 시대 감각에 대응하고 주변 상황을 수용하여 과감히 변신하길 원하는, 다원적인 측면에서의 진화를 꾀하는 시도였다. 다공의 플리츠 커튼이라는 생경한 이미지를 통해 일상에 오랫동안 긴밀히 호흡하며 함께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