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소하 건축사사무소 SoHA Architecture
사무소를 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여름, 맑은 주말에 공무원 부부가 세종시에서 우리를 찾아왔다. 고운동에 택지를 구입해 집을 짓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싶어하던 젊은 부부였다. 알고보니 건축주가 10년 전 서울 광화문에서 일할 때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남는 시간에 서점에 들려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었다. 그 때 ‘타샤 투터’ 할머니의 책을 보고 이상향을 꿈꾸게 되었다. 마당이 넓은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음식을 만들고 옷도 짓는 삶. 그래서 그동안 재봉과 베이킹을 틈틈히 배우며 집짓고 사는 삶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건축주는 마당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거실에서의 개방감과 마당을 활용하는 생활을 중시했다.
해당 부지는 P자 형태로서, 서측과 남측에 인접대지가 존재한다. 동측과 북측으로는 인도가 있으며 특히 북쪽 인도에는 작은 실개천이 조성돼 있다.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띠는 조금 길고 평평한 땅이다. 작은 공원 길이 단독주택단지를 가로지르고 있어 산책하기에도 좋고 북동쪽과 남서쪽에 원경으로 산이 보이는 입지였다.
고운숲은 남동향의 주택이다. 기본적으로 원경과 향을 고려해 긴 대지에 맞게 긴 매스를 남서향으로 계획했다. 하지만 마당의 크기와 활용도에 대해 고민을 계속 해보니 좁고 긴 마당은 건축주의 생활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추후 남서쪽 대지에 들어설 주택을 감안해 더 넓은 남동쪽으로 마당 위치를 바꾸어 결과적으로 정방형의 집과 정방형의 마당으로 계획하게 되었다.
지구단위계획에서 주차 공간이 지정되어 있었기에 남서측으로 주된 진입이 이루어지고 서측과 북측에 기능적인 실들을 배치했다. 대지 남동측에서 보도가 있어 거실에서 마당으로의 시야가 남서향으로 했을 때부터 넓어 보이고 시원하다. 개방감이 있다는 말은 반대로 프라이버시 확보가 어렵다는 뜻이기 때문에 식당 공간은 마당에 직접 노출되지 않게 좀 더 내부로 깊게 들어가는 구성을 택했다. 마당은 공동주택에서 얻을 수 없는 단독주택만의 특별함이다. 땅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거주의 즐거움을 줄 수 있는지, 땅과 집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이번 프로젝트에서 건축가와 건축주는 계속 소통을 거듭했다.
입면은 단순하면서도 입체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했다. 주택은 늘 동서남북, 그리고 지붕까지 총 5명이 모두 다른 곳을 면해 있어 그 얼굴이 각기 다르다. 남동측면은 마당을 면하고 있기에 필로티를 계획해 차양과 집이 가볍게 떠있어 보이게 구성했다. 북서측면과 북동측면에는 기능적인 형태를 반영해 불필요한 면적을 축소하면서 2층을 절삭해 자연스레 입체감이 풍부해졌다. 남서측면은 이번 프로젝트의 첫 인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입면이므로 주차장과 안방 발코니에 음악을 주어 깊이감을 만들어내고, 매스를 포개어 입체감을 느낄 수 있게 계획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스타코로 외장을 마감했고, 포인트 요소로 변형이 적은 탁화목 루버를 사용했다.
조용한 여가를 즐기는 남편과 요리, 독서를 즐기는 아내의 영역을 구분하면서 연결시켜야 했고, 가족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 또한 필요했다. 그래서 공간이 구분되게 보이도록 거실과 식당, 서재의 레벨을 모두 다르게 계획했다. 레벨이 다르니 각 실에서 마당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관계도 달라져 영역성과 독립성을 얻을 수 있었다. 가족이 공유하는 공간은 별도로 마련한다기 보단 레벨과 영역으로 구분한 공간들을 연결하면서 얻었다. 서재, 거실, 식당, 데크, 마당에서는 시선이 열리며 자연스럽게 흐름이 연결된다.
필로티 주차장과 현관을 지나 거실에 진입하면 넓은 마당을 바라보는 뷰가 펼쳐진다. 레벨이 한 단 높은 식당에서는 식탁을 중심으로 안과 밖, 2층까지 공간이 연속된다. 주방과 식당은 서로 연결되어 대면하는 구성이다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주방에서 보조주방, 그리고 후정까지 걸어다니는 동선을 지닌다. 후정은 필로티 주차장과도 연결되어 외부에서 산 물건을 후정을 통해 주방으로 가져오는 게 가능하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몇 단 오르면 게임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한 작은 서재를 마련했다. 2층에 올라오면 식당과 연결된 작은 오픈 공간이 있고 창을 통해 멀리 고운뜰 공원이 보인다. 돌아서면 두 딸을 위한 방이 있다. 시선은 마당을 향해 열려있고, 천장면은 높은 박공형으로 계획해 공간감을 확보했다. 기능적인 실을 지나면 안방이 나온다. 안방 역시 아이방처럼 지붕의 박공 형태를 인테리어에 반영했다. 안방에는 큰 창과 발코니가 있어 입구에서 손님이 오는 것을 알 수 있고, 멀리로는 산이 내다보인다. 고운뜰 공원을 향해 나있는 작은 창도 존재한다.
단독주택은 건축가 혼자 설계하는 집이 아니라 건축주와 마음을 열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건축가가 대지에 공간을 구성하면, 비워진 공간을 어떻게 채워갈지는 사는 사람의 몫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운숲’은 고운동이라는 동네에서 거주자 가족이 비도 맞고 햇볕도 받으면서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점점 더 풍성하게 성장해 평온히 쉴 수 있는 삶의 거처를 의미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여전히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자신의 숲을 더욱 가꾸고 자연과 공존하면서 제 2의, 제3의 타샤 튜터 할머니처럼 행복한 삶을 보내는 공간으로 자리잡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