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조호건축 JOHO Architecture
주택이 건축의 백미라 여겨지는 것은 대지가 주는 고유한 아름다움과 이를 해석하는 건축가의 풍미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건축은 기존 지형이 지닌 질서를 존중하면서 그 질서가 지닌 흐름에 부드럽게 편입되어야 한다. 또한 주변을 둘러싼 풍광이 지닌 아름다움을 담아내며 자연 속에 새로운 주체로서 해석되어야 한다.
오래 전 채석장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대지는 주변부와 주요 지반이 암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지에서 암반은 대지의 지세가 시작되는 지점이자 디자인의 모티브가 완성되는 종착점이었다. 즉 강인하게 구축된 주변의 지세와 새롭게 지어질 건축물의 심미적, 기능적인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였다.
개발 행위 제한구역 내의 건축 계획은 대지의 높낮이의 세심한 조절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암반으로 구성된 대지의 조건상 기능적으로 최소화된 지하를 굴착했다. 전면에 펼쳐진 풍광과 이웃대지와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여 북측에 매스를 배치했다. 이처럼 수평적으로 길게 형성된 매스는 남쪽 측면을 최대한 개방해 자연광의 유입과 환기가 용이하도록 계획했다.
전통적인 처마선으로 연결된 테라스는 내외부공간이 중성적으로 만나는 장소이며 계절에 따라 태양광의 유입을 합리적으로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건축적 장치이다. 자연의 선형에 따라 비틀어진 선들로 구성된 매스는 자연과 건축의 절묘한 균형점을 구성한다.
본 프로젝트는 패시브하우스 기준의 고기밀, 고단열로 구성되었다. 또한 폐열회수 환기시스템을 사용해 고성능의 환기와 공기청정 기능을 수행한다. 휘발성 유기화합물, 라돈가스 일산화탄소등의 독성물질 및 초미세먼지를 제어하는 필터를 장착하여 거주자의 건강을 고려하였으며, 소음 25Db 이하로 정숙함을 유지하도록 계획했다. 지하 공간은 고기능 폐열회수 시스템 장치를 위한 기계실, 창고, 주차장으로 구성했다.
1층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다용도 공간으로 구성했다. 전면에 오픈뷰를 가능하게 하는 수평적인 유리창을 사용하여 외부 자연의 변화를 내부에서 즐길수 있도록 했다. 외부에 형성된 상부 처마는 여름철 적절한 각도로 그림자를 생성하며 거실에 서늘한 공간을 형성한다. 또한 겨울에는 길게 형성된 수평창 통해 자연광이 최대한 내부로 유입될 수 있도록 계획했다.
2층은 건축주 부부가 주로 기거하는 서재와 침실, 다용도실로 구성했다. 1층과는 달리 2층은 테라스를 통해 외부 풍광의 변화를 다양한 각도로 감상할 수 있으며 보다 프라이빗한 공간의 영역으로 사용된다. 계단 상부에 위치한 천창은 외기의 빛을 균질하게 내부로 전달하며 감성적으로 풍요로운 내부공간을 구성한다.
대지는 석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하부 또한 강암반으로 이뤄져 있다. 이러한 대지의 컨텍스트와 연계하여 본 프로젝트의 주 재료는 대리석으로 계획했다. 채석장이었던 과거 대지의 역사는 대리석으로 재해석되어 본 대지에서 의미론적으로 재탄생된다. 또한 처마선을 채광을 조절해주는 패시브적 기능으로 계획함으로써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천창과 테라스와 같은 다양한 공간적 요소를 통하여 건축 디자인 자체의 패시브적 요소를 통해 최대한의 친환경적인 공간을 구축하도록 의도했다.
처마선은 주변 산세를 연결 짓는 디자인적 요소뿐 아니라 여름 하지의 태양으로부터 그늘을 형성하여 겨울철 동지 때에는 자연채광을 유입하는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처마는 고기밀로 처리된 창호와 더불어 건축 자체의 디자인으로서 패시브 공간을 구성한다. 이러한 건축적 해결 방식을 통하여 110여평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기 및 가스의 사용량은 동일면적 주택과 비교해 확연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선은 산과 산을 시각적으로 연결한다. 이는 다시 호를 형성하고 면을 구축한다. 전면의 볼륨은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이 만나는 중성적 공간을 구축하기 위하여 다시 선적으로 비틀린다. 즉 입면의 볼륨감을 3차원적으로 구축함과 동시에 하지에 적절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1층의 튀어나온 매스로 만들어진 테라스는 게스트룸에서 정원을 마주하는 적절한 외부 공간을 만들어준다. 산을 면해 비틀린 2층의 테라스는 하부의 주방에 일정한 그늘을 제공하며 상부의 마스터룸에서 외기를 맞을 수 있는 중성적 공간을 제공한다. 선과 선으로 연결된 비틀린 입면을 연결하면 이중곡면이 만들어진다. 이는 우리 전통건축에서 볼 수 있는 처마선의 구조와 유사하다.
STS 원형 파이프는 이를 자연스럽게 채우기 위한 직선 재료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텐파이프를 입면의 선형에 따라 배열하여 곡면을 만들고 내부의 조명과 더불어 그 존재감을 과시한다. 면을 채우는 것은 면이 아니라 선의 집합이며 이들 사이의 군집은 선의 다른 미학을 만들어낸다.
이 집은 단순히 외적 미학만이 아니라 패시브 기준의 성능을 가진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47mm 두께의 프리미엄 유리, 고단열, 고기밀, 그리고 폐열회수 환기 시스템을 적용하여 외기로부터 독립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했다. 특히 계단 면의 상단에는 암막 전동 블라인드와 전동환기창을 설치하여 내부의 기능과 온도에 따라 빛과 공기의 양 조절이 가능하다.
내부공간은 정원 쪽으로 배치해 전면 테라스와 연계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하나의 차경 요소로 감상할 수 있게 의도했다. 외부를 향해 뾰족하게 노출된 도로면 처마는 건축주가 가장 많이 머무는 서재 공간이다. 전면의 관악산 지세와 관문 공원 너머 펼쳐지는 청계산은 이곳에서 비로소 하나의 선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