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영욱 글 & 자료. 제이와이아키텍츠 JYA-RCHITECTS 사진. 황효철
남쪽으로 작은 공원을 마주하고 있는, 해가 잘 드는 땅에 집을 짓고 싶어하는 부부가 찾아왔다. 꾸밈 없는 모습에 잘 웃고, 사람을 좋아할 것 같은 부부가 집에 대해 처음 언급한 것은 ‘사람을 만나는 집’이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는 안으로는 가족들이 모이고 만나고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중심이 되는 것이고, 밖으로는 찾아오는 지인들, 놀러오는 동료들 그리고 동네의 주민들을 편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통 건축의 대청이나 열린 마당같은 공간의 성격이 담긴 집을 짓고 싶어했다.
가장 먼저 이 가족에게 필요한 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상상해 봤다. 우선 가족들이 모여 각자 혹은 함께 얘기하고, 책보고, 쉬고, 노는 공간인 가족실이 필요했다. 이 공간은 남쪽으로부터 따뜻한 햇살도 충분히 받아야 하고, 해가 질 때는 노을도 볼 수 있고, 집 앞의 작은 공원과 동산도 볼 수 있었으면 했다. 무엇보다 가족 각 자의 다양한 행위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질 수 있을 만큼 여유있는 공간 구조이길 바랐다. 이어서 떠올랐던 공간은 병산서원의 만대루나 남원 광한루처럼 편안하고, 정취가 있는 공간인 ‘누마루’였다. 이러한 누마루같은 공간을 어떻게 재해석해서 내부공간에 구성할 것인지 고민했고, 이 공간을 중심으로 집의 구성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가족실 공간은 2층 중심에 위치한다. 그 양 옆으로 안방과 아이들방이 있어 부모와 아이들은 언제든 이 가족실에서 만나고 헤어질 수 있다. 가족실의 한쪽 벽에는 책이 가득하고 남쪽 창가에는 긴 의자가 있어 낮잠을 즐길 수도 있다. 가족실의 중앙에는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동선이기도 하지만 가족실 공간을 크고 작고 넓고 좁은 공간으로 나눠 주기도 하고 불필요한 시선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이렇게 집 전체의 중심인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가면 마당을 마주하고 있는 주방과 식사 공간(dining room)이 나온다. 1층으로 내려와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바로 이 주방과 식당, 그리고 작은 거실이다. 이 공간들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마당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나가면 작은 툇마루가 있어 마당으로 내려갈 수가 있고, 거실에서 문을 열고 나가면 대청마루로 연결된다.
대청마루에서는 마당을 한 눈에 볼 수가 있다. 전통적인 마당의 구조를 닮았다. 마당의 툇마루나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한 눈에 보이고 집 앞을 지나가는 이웃들과도 인사할 수 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놀다 동네 친구가 오면 마당 한 쪽의 쪽문을 열고 집 앞 공원에 가서 다시 축구를 하며 논다. 이렇듯 열려 있는 마당은 적어도 아이들에게 만큼은 진정으로 만남과 놀이와 교류의 공간이 된다.
이 공간들을 감싸고 있는 집은 전체적으로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다. 또 외장은 건축주의 성향만큼이나 차분한 색의 벽돌로 만들어졌다. 내부에 만들어진 가족실의 공간 형태를 외부에 드러내면서 단순한 형태에 역동적인 사선이 생겨났다. 덕분에 방향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다른 것이 흥미롭다.
‘사람을 만나는 집’을 짓고자 하였던 부부와 세 아들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난다. 아이들 셋은 다락으로, 가족실 구석으로, 거실로, 욕조와 마당으로 몰려다니며 놀고, 동네 친구들이 수시로 놀러온다. 부부는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됐고, 더 자주 사람들을 집에서 만난다.
집은 사는 사람을 닮아간다. 우리는 이 집이 건축주처럼 사람을 좋아하는 담백한 집이 되길 바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쳐 다 담아내지 못한 부족함은 살아갈 사람들이 넉넉한 삶의 일상으로 이 집을 채울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