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종우 글 & 자료. 임태희 디자인스튜디오 Limtaehee Design Studio
한 사람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의학적인 병원기록을 ‘카르테karte’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가 건립되고 살아있는 과정도 이러한 기록이 필요하다.
1971년 건립된 광주시민회관은 광주의 근대화 과정에서 여러 역할로 활용됐고, 광주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녹아져 있는 의미 있는 장소다. 한 차례 재조성 작업을 벌였지만 여전히 시민들의 발길이 뜸해진 이 곳을 다시 사랑받는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것. 이것이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이 건물의 ‘카르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했다.
해야할 일은 멈춰버린 이 공간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 넣는 것. 이를 위해 우리는 1차 탄생(1960년), 2차 재조성(2014년)이라는 이 건물의 카르테를 인정하고 지나 온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즉, 두 번에 걸친 건설작업을 존중하고 우리는 시민들이 이 공간을 멋지게 바라보고 사용하도록 친절하고 촘촘한 사용법을 만드는데 집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우리의 작업은 폐허처럼 황량해진 그 곳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 사랑받는 공간으로 되살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광주시에서 설정한 이 공간의 주요 용도는 청년 창업 지원이었다. 따라서 현재 발탁된 청년 창업자의 프로그램에서 운용의 변화가 예상되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우선 공간을 기획하고 예상하는 일부터 시작했고, 불특정한 여러 팀의 청년 창업자의 공간을 하나의 사각 공간으로 상정하고 도시에 건물을 짓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각각의 공간을 조성했다.
1층의 공원이나 광장에 사각형의 가구를 하나의 가게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고객 공간이 서로 이분화되지 않도록 동선을 섞고 길을 만들고 도시를 설계하듯 사각형의 가구로 만든 공간들을 디자인했다. 1층을 공원이나 광장처럼 생각하고 사각형의 가구를 하나의 건물 혹은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구성한 것.
이에 따라 평면에서 보았던 사각형의 단순한 도형들이 실제로는 각각 다른 높이를 가지고, 심지어 하나의 사각형 안에서도 각기 다른 높이의 기능을 갖게 되었다. 하나의 사각형이 테이블이 되었다가, 어떤 부분은 의자가 되었다가, 또 어떤 부분은 식물 플랜트가 된다. 단순했던 사각형이 각각의 이야기를 갖고 다양한 경험들을 만들어냈다.
2층 스탠드석은 옛날 모습 그대로 카페로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층에서 내려다보는 풍경도 멋지지만, 향후 무대에 스크린이 설치가 되고 영화나 공연이 상영되면 여기 앉아서 무대를 관람하거나, 기회가 된다면 음향이 지원되는 앱을 개발해 같은 스크린을 보면서 각자의 핸드폰에 이어폰을 끼워서 음성지원을 받는다면 여러가지 행위와 경험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되지않을까 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그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공간이 아니라 자연이다. 요즘 자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디자인적 언어로도 자연을 많이 채용하지만, 이곳에서 선물하고 싶은 자연은 진짜 자연스러운 자연이다. 공원의 나무와 바람과 햇살은 인위적으로 만든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들이 꿈꾸는 작업은 공간 디자인이 아니라, ‘공기감’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억지일까. 공기감이라는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다른 말로 설명한다면 ‘공간의 에너지’가 아닐까 한다. 멋진 디테일, 멋진 표현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카르테를 작성하는 의사처럼 담담하게 진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생각이 잘 담겨져 완성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