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윤선 글 & 자료. 전우진 스튜디오 Jeon Woojin Studio
오래된 연립주택을 고치는 일은 5년 만의 일이다.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건축주와는 몇 번의 상담 과정을 거쳤다. 상담 내용 중에는 그녀가 오랜 기간 집에 대한 꿈을 키워온 과정, 그리고 고심 끝에 우리를 찾아낸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는 나무들 속에 있는 빨간 벽돌집을 꿈꾸었고 정말로 그러한 집을 찾았다. 별생각 없이 내가 해왔던 프로젝트를 설명하다가, 프로젝트를 선택할 때 사용자를 유심히 살피는 과정을 거친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래서인지 어렵게 찾아온 그녀가 ‘면접을 보는 것인가요?’라고 당황해했던 기억이 난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거주자(건축주 혹은 집 주인)는 분명하게도 집의 최초 ‘기획자’이자 그것을 완성하는 ‘배우’이다. 특히 이 집의 완성을 보고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개 어떠한 일의 시작과 끝을 온전하게 볼 수 없다. 음식이 식탁 위에 올라오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그 앞부분(재료들이 자라나는 시간)은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고, 이미 내 손에 주어진 재료들로부터 인식이 시작된다.
집이 완성될 때에는 완성물이 만족스럽든 그렇지 않던 아마도 다른 여러 변수와 함께 ‘나’라는 변수(나의 결함과 실수를 포함한)를 만나서 그렇게 만들어진다.
40년이나 된 이 오래된 연립주택의 첫 번째 매력은 계곡이 보이는 산속의 나무들 사이에 자리 잡은 건물의 위치에 있다. 서울 도심 속에도 산과의 경계에는 때로 이런 아름다운 공간들이 숨어 있다. 두 번째 매력은 ㄱ자 ㄴ자의 두 개의 건물(동)이 마주 보고 앉아서 만든 아늑한 중정에 있다. 재건축이 이루어진다면 예쁜 새들이 함께하는 중정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나무들과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이다. 나무는 계절의 변화를 함께 견디는 좋은 친구가 된다. 이곳에선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이웃 절에서 울리는 목탁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기존 평면 구조는 매우 정직한 복도식 3BAY(28평 남짓한 면적이 내력 벽체에 의해 3열로 분할된) 구성이었다. 복도에서 현관문을 열면 거실 끝까지 깊숙하게 들여다보였다. 거실의 전망은 매력적이었지만 거실이 다소 통로 공간처럼 느껴지는 점이 아쉬웠다. 현관 바로 오른 편, 복도에 면한 작은 방에는 옷과 함께 자잘한 짐들이 채워져서 창고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중정(복도) 방향으로는 창도 열리지 않아 답답하게 느껴졌다.
벽식 구조 건물이었기에 벽체를 철거해 구성을 바꿀 수는 없었다. 구조체를 유지한 상태로 각 공간의 기능을 바꾸기로 했다. 기존에 소파가 놓인 거실 공간은 2.2m 길이의 테이블(소파보다 높은 자세로 앉기 때문에 좀 더 공적인 느낌을 가진다)을 놓아 응접실 겸 식사 공간을 마련했다.
현관 옆 창고로 사용되던 작은 방은 문틀을 제거해 작은 주방으로 바꿨다. 중정의 나무가 보이는 작은 주방은 응접실 공간까지 직선적인 연결성을 가진다.
기존에 주방이었던 공간은 두 짝의 미닫이 도어와 칸막이벽 설치로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거주자 두 명의 작업 공간과 작은 드레스룸이 되었다. 마지막에 거주자가 결정한 세탁/건조기 세트의 위치가 화장실 앞(기존에는 세탁기가 화장실 내부에 있었다)으로 정해지면서 응접실 공간의 성격도 비로소 완성되었다.
모든 공간에서 중심인 응접실 공간은 현관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가리고, 큰 기둥과 같이 만들어진 세탁기 보관장을 경계로 응접실 천장을 15cm 정도 높여서 단계적인 영역성을 갖도록 했다. 응접실 옆 안방으로 쓰이던 공간은 문틀과 날개벽 10cm를 제거해 응접실과 벽 사이로 열려있으면서도 조금 더 내밀한 거실 공간으로 탈바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