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소하 건축사사무소 SoHA Architecture 정리 & 편집. 정지연 에디터
가족의 이야기가 천천히 쌓이는 집
송도의 한 아파트에 살던 건축주는 집에 관한 두 가지 바람이 있었다. 먼저 아이들이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집 안과 밖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랄 수 있는 집, 그리고 가족들 간에 많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가족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천천히 쌓이는 집이 되기를 바라던 건축주는 그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송도를 떠나 아산에 집을 짓기로 했다.
대지는 단독주택지로 조성된 마을의 낮은 쪽 가장자리에, 동서로 길게 뻗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동, 서쪽, 그리고 북쪽으로는 주택지가 조성되어 있었고, 남쪽으로는 약 26m 폭의 도로와 접해 있어 시야가 확 트여 있었다. 정남향으로 햇빛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건축주가 중점적으로 요구한 사항은 첫째, 4인 가족이 사이좋게 많이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집, 둘째, 바람이 잘 통하고 자연채광으로 환하고 밝은 집, 셋째, 마당과 연결되지만 외부 시선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집, 넷째, 비나 눈을 피하면서도 외부에서 언제나 차를 마시고 가족들이 활동할 수 있는 너른 데크를 가진 집이였다. 이러한 요구 사항을 바탕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먼저 집을 동서방향으로 길게 배치해 최대한 남쪽면을 많이 확보했다. 남향의 이점을 살리는 밝은 마당을 길게 계획해 폭이 넓지는 않지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남쪽 도로와 집 사이에는 완충 공간(Buffer Space)을 만들었다. 이 완충 공간에는 길쭉한 마당과 조경을 두어 건너편 학교로부터의 소음을 줄이고, 도로로부터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는 역할을 하게 했다. 집이 길게 배치되면 마을의 경계이자 얼굴로서의 입면을 고려해야 한다. 요란하게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주변과 조화로운 형태를 갖추고자 고민했다.
또한 길이가 길어 너무 폐쇄적일 수 있는 매스를 분절해 ‘사이 공간’을 만들었다. 통로이자 포치(Porch, 건물의 현관 또는 출입구의 바깥쪽에 튀어나와 지붕으로 덮인 부분)의 기능을 가진 사이 공간은 마당과 외부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주거공간과 차고를 구분해주고, 비와 눈 걱정 없이 가족들이 자유롭게 차를 마시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 집의 핵심 공간이다.
집 후면에 있는 도로에서 진입하여 사이 통로를 통해 들어서면 남쪽에 마당이 펼쳐지고, 서쪽에는 차고 문, 동쪽에 집의 현관이 위치한다. 깊은 수납공간을 가진 현관을 지나서 집안으로 들어서면 거실, 그리고 뒤를 이어 식당과 주방까지 시선이 이어진다.
거실은 마당을 향해 열려있고 TV가 시선에서 옆으로 비껴서 있다. 거실의 크기와 동선은 일반적인 거실보다 작고, 통로처럼 쓰이도록 계획했다. 거실을 하나의 방이 아니라, 여러 가지 쓰임이 있는 넓은 공간으로 계획해 그 시선의 방향이 확장과 개방감을 확보할 수 있도록 커다란 고정창을 마당 방향으로 계획하였다.
식당과 주방, 식당과 데크, 식당과 거실은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동선과 시선을 연결했다. 식당을 거실만큼 여유 있는 규모로 만들고, 거실보다 더 오랫동안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한 것은 식당이 밥만 먹는 장소가 아니라, 아이들과 부모가 자연스럽게 서로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식당은 가족 간의 애정과 이야기를 쌓는 중요한 공간이다.
좁고 긴 건물의 단순한 평면 구성으로 인하여 자칫 단조롭고 영역 구분이 애매해질 수 있어 거실과 식당 및 주방 영역을 약간 어긋나게 계획해 소통과 구분을 동시에 수용하고자 했다. 식당과 거실에 마당으로의 큰 창을 계획한 것은 하루 종일 좋은 빛이 드는 밝은 집을 만들고, 데크와 마당에서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은 부모의 마음이 반영된 결과다.
북쪽에 위치한 일자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면 안방과 자녀방 사이 작은 가족실이 있다. 가족실은 방과 방 사이 공간에 위치해 넓은 윈도 시트(Window Seat)로 계획하였고 한쪽 벽면은 모두 책장으로 만들었다. 반대편은 다락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배치해 부모님에게는 서재로, 아이들에게는 책을 보는 공간이자 놀이터로 활용하게 했다.
낮에는 거의 모든 활동이 1층 식당에서 이루어지지만, 저녁시간 이후에는 1층보다 개인적인 공간인 2층 가족실의 활용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가족실을 중심으로 각 방과 화장실이 연결되어 있어 가족의 동선과 시선이 자주 교차해 가족 간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게 유도했다.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 하부에는 피아노를 놓아 작은 연주회를 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집에 누워 달과 별을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바람을 반영해 가족실 상부와 다락에 천창을 설치했다. 또한 바람이 잘 통하도록 남쪽과 북쪽 면에 창을 마주 보게 해 자연환기가 가능하도록 했다. 눈이 많이 오는 아산의 기후를 고려, 창의 열교를 대비해 남부 지방이 아닌 중부 지방 기준의 단열재와 3중 독일식 시스템 창호를 사용했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질 높은 자재를 최우선으로 선택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가족이 사이좋게 생활하며 자주 마주하고 대화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건축주의 소박한 바람으로 시작된 가족의 이야기가 쌓이는 집, ‘담온가’.
이제 가족의 이야기를 하나 둘 담기 시작한 담온가는 더 많은 추억과 새로운 이야기를 매해, 매 계절마다 담고 또 쌓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