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종우 글 & 자료. 스튜디오 모프 건축연구소 studio morph architects
당진주택의 시작은 유년시절을 보냈던 농가주택 옆에 노모를 위해 새 집을 지어드리기로 한 건축주가 적은 예산으로 25평 정도의 집을 구상하면서부터다. 집터는 충청남도 당진시 대운산리에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멀리 보이고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 너머로 작은 소나무 숲이 드넓은 논 한가운데 섬처럼 보였는데, 집이 앉혀질 자리였다. 건축주가 취미로 심은 소나무들과 잡목, 그리고 작물들이 새 집이 들어설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노모가 살고 계신 오래된 농가는 양계장으로 쓰던 텅 빈 비닐하우스들과 허물어진 축사 때문인지 조금은 쓸쓸해 보였는데, 사방에 벼가 자라는 농경지 풍경만큼은 농촌의 건강한 삶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처럼 느껴졌다.
집터는 집의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사방이 열려있는 논 한가운데여서 외부 공간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기존 소나무 숲을 정리하고 뒷쪽으로 둔덕을 만들어 수목들을 적절히 조성한 덕분에 집터의 배후가 조금은 안정되어 보였다. 빈 땅의 일부는 텃밭으로도 활용 될 테니, 살면서 완성되어 갈 외부공간의 풍경이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가 된다. 또한 빈 공간은 미래에 있을 본격적인 귀농생활에 여러모로 잘 사용되지 않을까 생각됐다.
새 집이 앉혀질 영역과 배치는 옛 집과 노모가 관리하실 양계장이 멀지 않은 거리를 고려해 다소 앞쪽에 위치시켰고, 거실이나 안방에서 바라보이는 전면의 논이 바로 지척에 있는 느낌이 들기를 바랐다. 마을에서 떨어져 경작지 한가운데에 집을 짓고 사는 일이니, 가까운 곳에서 커가는 작물을 바라보는 일 자체가 일상이며 농사일의 일과일 것이다.
집의 규모는 본채 30평 내외, 외부창고 7평, 그늘 지붕(외부 작업장) 9평으로 최종 조정되었고, 주생활 공간은 단순한 일자 배치의 형태로 공간의 불필요한 손실을 줄였다. 내부 공간은 시야를 터서, 노모 홀로 집을 관리하며 지내기에 불편함을 줄이려 노력했다.
외부 공간은 본채를 기준으로 앞마당과 뒷마당 영역으로 나눠 장악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일자형 박공지붕 끝에 직각으로 만나는 평지붕이 펼쳐진 날개처럼 붙어서 마당에서 보이는 시선을 적절히 안으로 품을 수 있게 했다. 바깥으로는 영역 구분이 자연스럽게 생겨서 관리가 용이해졌다. 앞의 경작 논은 앞마당의 계절별 조경이 될 것이고, 뒷마당은 둔덕에 새로 심어질 꽃과 나무들이 계절의 변화감을 주리라 기대된다.
동선의 편의성도 고려했다. 남향의 그늘 지붕 아래에선 작물들을 말리거나, 평상에서 다듬은 채소는 앞마당 수돗가에서 씻은 뒤 바로 주방으로 오를 수 있다. 북쪽 다용도실에서는 외부 창고로 이어지는 그늘 지붕이 있어 비 오는 날도 걱정 없다.
외부 창고는 예산 때문에 초기계획에서는 유보되었으나, 다행히 공사 중에 포함하게 됐고, 내부마감재 없이 목구조가 노출된 상태의 창고로 쓰다가 추후 서재로 바꿔 쓸 것을 고려했다. 이곳은 차를 마시는 좌식생활을 고려해 창문의 시선을 낮췄고, 밖으로 보이는 남동향의 별채 마당은 텃밭과 나무가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집에서 길게 고민했던 것은 현관과 현관에 면한 손님방의 성격을 도시의 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는 것이었는데, 현관을 출입의 기능뿐 아니라 외실로써 손님방을 옆에 두고 개방성 있는 열린 공간으로 본 점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실내 툇마루에 걸터앉아 바깥을 바라보기도 하고, 손님방의 미닫이를 열어두면 현관의 공간감이 확장되어 북쪽으로 난 창을 통해 뒷마당까지 볼 수도 있다. 여름철엔 앞뒤로 바람이 잘 통하는 손님방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낮잠을 잘 수 있는 누마루같은 공간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당초 이 방을 목구조가 살아있는 누마루처럼 꾸미고 싶었으나, 바닥 난방 때문에 툇마루와 같은 마루를 깔지 못한 것은 아쉽다. 거실 바닥보다 50cm가 높으니 거실에서 보기에도 마루가 더 어울렸을 법하다.
텃밭 일을 보고 들어갈 때는 현관 옆 수돗가를 통해 먼저 씻을 수 있고, 외부 화장실 역시 농사일을 하다 수시로 이용할 수 있도록 수돗가 옆에 배치했다. 거실창을 통해 신발을 벗고 드나들 수 있도록 마당 앞에 작은 툇마루를 두었다.
건축주는 새 집을 지은 뒤 관리상의 문제로 옛 농가를 철거할지 고민했으나 기존 농가 주택의 존재감이 유년시절의 기억을 담고 있는 시간적 가치를 넘어 연속된 삶의 풍경으로서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에, 길게 보고 여러 가지 활용방안을 찾아 보기로 했다. 앞마당의 무너져가던 축사 역시 잘 정리하는 수준으로 남기게 되었는데, 그 쓰임새는 건축주 몫으로 남겨 두었다.
농촌이 경쟁력을 갖추는 방법 중 하나가 농촌만의 목가적 풍경을 잘 보존하고 그 마을만의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존 농가는 옛 한옥집 구조에 덧대어 온 가족의 역사가 남아있기도 하였고, 한 가족에 대한 삶의 풍경이 기록되어 있는 곳이기에 건축주의 은퇴 후 귀농의 삶 역시 그 풍경의 일부로 연속되기를 기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