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현경 글 & 자료. 건축그룹[tam]
친구의 전화
2017년 말, 이 집은 친구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했다.
“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는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서 땅 보고 다니고 있어. 준비하고 있어!”
“좋네~. 어느 동네 보고 있어?”
“그래, 지번 말해주면 내가 이것저것 따져볼게. 그런데, 아직 동네가 결정되지 않았으면 사무실 있는 성북동도 한 번 봐봐. 조용하고 살기 좋아.”
“에이~. 거기는 저택들이 있는 동네잖아. 엄두가 안 나.”
“그런 곳도 있는데, 작은 골목길들로 둘러싸인 곳도 있어.”
“한번 가봐야겠네.”
며칠 후, “성북동 가봤는데, 너무 좋은데? 우리 가족들이 다 마음에 들어해. 그쪽으로 알아봐야겠어.”
이후, 동네 부동산 사장님, 건축주와 함께 여러 곳의 땅을 검토했다. 예산이 한정적이었기에 땅 값으로 치를 한계를 정해놓고, 건축 방법은 리모델링, 증축, 신축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검토했다. 마침 협상 가능한 적정가격의 땅이 나왔고, 두어 번의 협상 후에 바로 계약을 했다.
대지는 좁은 골목길과 오르막이라는 한계에도 큰 도로에서 20~30m 정도만 올라가면 되는 성북동 골목길 재생 시범사업 대상지의 초입에 있어 공사 여건도 비교적 좋은 곳이었다. 집 앞의 좁은 도로는 거의 이 집만 사용하는 길로 이 집의 앞마당처럼 보여서 좁은 길에 면한 땅이라는 답답한 느낌은 없었다.
Must have!
건축주는 계획을 건축가에게 전적으로 일임해줬다. 이는 건축가들이 항상 바라는 상황이지만 그만큼 큰 책임감이 따라오는 일이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었다. 임대용 원룸이 꼭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가능한 조건과 다양한 건축 방법들을 조합해 계획을 하는 중에 원룸이라는 조건은 가장 큰 벽이었다. 작은 면적과 차가 접근할 수 없는 대지라는 것이 큰 벽의 원인이었다.
무수한 고민의 끝에 도달한 결론은 임대 원룸이 들어가려면 가족이 쓰는 방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축주의 긴 고민 끝에 임대 원룸이 선택됐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위한 방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기에 드레스룸으로 쓰려던 작은 공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거실의 풍경
언덕의 아래 능선에 위치한 대지는 2층 높이에서의 풍경이 근사하다. 서쪽 언덕 능선의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집들과 그 뒤로 보이는 하늘은 이 집만이 가질 수 있는 훌륭한 정원이다. 거실에 난 서쪽의 큰 창은 능선의 풍경과 옆집에서 잘 가꾼 옆 집 마당 정원의 풍경을 함께 집으로 끌어들인다.
남쪽으로 난 창은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눈높이와 같아 햇빛은 들이고 시선은 차단해야 하는 이유로 불투명한 재료를 사용했다. 또한 이 집을 특징짓는 디자인 요소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다. 밤에 거실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 보이는 창의 형태는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된다. 주방 앞의 작은 창으로 보이는 한옥의 지붕은 서쪽 능선의 자연 풍경과는 또 다른 운치를 선사한다. 여러 풍경이 들어오는 거실에 서 있으면, 다양한 동네의 풍경을 작은 집에 최대한 담아내려 했던 고민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해진다.
좁은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을 피하고자 시원하게 뚫린 높은 천정을 만들었고, 다락도 막히지 않는 채로 조성했다. 2층 거실과 다락을 입체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심리적으로 하나의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이는 다락이 분리된 공간이 아닌 거실의 연장선에 있는 다른 방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한다. 다락의 벽체를 대신한 작은 기둥 같은 난간 열주는 한쪽은 책장으로 활용해 부족한 수납공간을 보충해주었다.
마당 옆 집
언덕 위의 작은 집은 입구의 데크를 빼면 여유 공간이라고는 없다. 하지만 큰 마당을 가진 옆 집과 반대 편 능선에 늘어선 자연들을 효과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자신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을 장점으로 바꿀 수 있었다.
큰 약점을 극복한 이 집은 그래서 ‘마당 옆 집’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