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황지윤 학생인턴 글 & 자료. 제로리미츠 건축사사무소 Zerolimits Architects
오래 전 상담을 했던 클라이언트가 2년쯤 지난 어느 날 다시 연락을 해왔다. 그동안 고향인 무주에 귀촌할 땅을 구입하고 가족들과 인근 마을에서 거주 중인데, 구입한 대지가 너무 가파른 경사지라 건축이 가능할지 걱정이라고 전해왔다.
직접 방문한 대지는 얼핏 보기에도 꽤 경사가 있는 산골 중턱에 위치한 밭이었다. 덕유산의 산세와 마을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경사지의 대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시원한 전망을 갖고 있는 땅이었다.
대지는 동쪽으로 흐르는 경사면으로 높이 차가 6m정도 되었으며 원래는 밭으로 쓰였으나 현재는 방치된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보다 얼마만큼의 세월을 견뎌냈는지 가늠할 수 없는 고목 한 그루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건축주께 건축이 불가능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견을 전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오는 길 내내 덕유산의 시원한 전경과 오래된 고목이 머릿속에 계속해서 맴돌았다.
공간 계획은 동쪽으로 흐르는 경사와 남쪽 그리고 동북쪽을 조망할 수 있는 대지의 기본 조건에서 이곳이 갖고 있는 장점(조망, 향)을 최대한 누릴 수 있고 주변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배치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우선 단단히 뿌리 내린 고목과 사시사철 다른 매력을 뽐낼 덕유산의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다. 지형에 최대한 순응하며 자연스러운 사적 공간으로의 접근을 위한 각기 다른 레벨의 마당이 있으며 이 마당들은 각 내부 공간들과 연결되도록 배치했다. 2층 주거 매스는 정동향 축을 유지하고 있으며 1층 게스트 하우스 매스는 덕유산을 조망할 수 있게 남향 배치를 했다.
건축주는 가족들이 거주할 공간과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할 공간을 원했다. 그리고 두 공간은 별도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있되 내부적으로 연결되기를 원했다.
제안한 공간은 2층에 3개의 매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경사지의 특성을 이용해 각 층이 개별 출입구를 갖도록 했다. 2층이 메인 주거 공간으로서 건축주 가족이 거주하는 곳이다. 남쪽과 동쪽 2면으로 개방되어 있는 거실과 아이들 방, 식당 주방이 횡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각 공간의 전망에 따라 창들이 배치되어 있다. 마스터룸과 드레스룸은 별도의 매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1층은 손님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로 거실, 방, 뒷마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층과 2층은 거실로 이어져 있으며 가변형 문으로 구획돼 있어 필요에 따라 개폐할 수 있도록 했다.
3m 이상 차이 나는 경사지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번 계획에 많은 사항을 결정짓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평지가 아닌 경사지의 땅에서만 가능한 건축적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건축주가 요구한 공간을 확보하며, 최대한 지형에 순응하는 구성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 효율적인 시공이 가능한 계획이기도 해야 했다.
주거매스의 축을 경사 흐름의 방향과 최대한 동일하게 배치하여 지형 흐름을 따르게 했고, 기능상 효율적인 접근성이 필요한 게스트 하우스 매스를 진입 동선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배치하고 덕유산 조망과 향을 고려하여 남향으로 배치했다. 결국 두 개의 매스가 서로 다른 축으로 중첩되었고 각각의 공간 성격에 따른 향과 조망을 확보하도록 풀어냈다.
덕분에 주어진 조건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활용하는 집이 탄생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