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건축그룹[tam] 정리 & 편집. 김현경 수습 에디터
첫인상
건축물 대장에 적혀 있는 1984년이 기억에 남는다. 무수한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열심히 지어지고 있었고, 빨리 짓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던 시절이었다. 이 집도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동네 개발업자가 지었던 집이다.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 옆집과 비슷한 모양을 한 여러 채의 집들이 어우러져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개발의 손길이 먼저 닿았던 아파트 단지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빨리’의 미덕으로 지어졌던 집들은 40년도 채 되지 않아 세월을 힘겹게 견디고 있다. 1970~80년대에 지어졌던 이런 집들은 이제는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가 되었다.
집은 당시에는 흔했던 조적식 구조로, 언뜻 보기에는 연식에 비해 양호해 보였다. 평지붕이었던 옥상은 단열과 누수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샌드위치 패널로 덮여 있었다. 실내는 이런 옛 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재 마감(거실, 주방)과 일부 벽지로 돼 있었고, 큰 구조 변경 없이 거의 처음 만들어진 그대로 계속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낡은 공간의 리모델링이 가져다 준 밝은 분위기로의 레노베이션
대지 남측에 위치한 건물들이 모두 3층 이상이어서 한낮에도 실내에는 빛이 잘 들지 않았다. 크게 만들어진 창문들 덕분에 많이 어둡지는 않았지만, 남쪽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많지 않았다. 자연히 ‘빛’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 방법은 넉넉하지 않은 예산 내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어야만 했다. 빛의 유입을 우선 순위로 두고, 예산 문제를 이후에 고민하기로 했다. 단순히 천창을 만들어 빛만 들어오게 할 것인가, 입체적인 천창 계획으로 단조로운 천장에 공간을 줄 것인가의 두 가지를 놓고 고민했다.
예산을 생각하면 전자가 적합했지만, 단층주택의 단조로운 천정에 변화를 줘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는 후자가 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다행히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공감해준 건축주 덕분에 기존의 단층주택에서 볼 수 있는 공간과는 다른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밝은 공간, 특히 햇빛이 잘 들어오는 공간은 외부의 낡은 벽돌 조차도 밝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기존 건물이 갖고 있는 여러 제약들 때문에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해야만 하는 것들,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계속 충돌한다. 더구나 기존 마감재들을 철거한 후에 나타나는 벽의 상황은 건축가를 난감하게 만들기 일쑤다. 목재 마감을 걷어내자 나온 벽의 큰 균열은 가장 우선해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었다. 보강을 위해 기둥을 세울 자리를 찾는 것조차 신중해야 했지만, 이를 통해 방과 거실이 연결되는 큰 공간이 조성될 수 있었다. 시원하게 트인 공간과 천창으로 확보한 공간감이 더해진 이곳은 이 집의 새로운 중심이다.
3열로 배치된 필지 중 가운데에 위치한 대지는 진입 도로 같은 외부 공간도 이 집의 전체 분위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시멘트 블록으로 된 담장, 낡은 콘크리트 바닥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담장과 바닥을 모두 교체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어 신경 쓸 것이 많은 담장보다는 바닥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벽은 흰색 페인트로 밝은 분위기를 이끌어 주고, 바닥은 전체를 화산석 벽돌로 마감하여 자연재료에서 풍기는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기존의 낡은 벽돌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했다. 낡은 것들로 둘러싸인 채 마당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던 두 그루의 나무는 그대로 건물들 사이에서 계절을 보여주는 요소가 된다.
마당에서 면한 건물의 입면은 기존 벽체의 구조적 역할을 보장한 채 적용된 창은 잘 정돈된 마당과 내부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던 입구를 막고 확장한 계단을 통한 출입구와 경사로를 따라 새롭게 추가된 출입구는 내부 이용자의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또한 기존의 낡은 플라스틱 선홈통을 대신해 설치한 빗물용 사슬은 시간이 지나 녹이 슬면서 1984년의 벽돌과 함께 이 집이 가진 또 하나의 시간 풍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