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이재 건축연구소
모녀가 함께 좋은 풍경을 누리는 집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성북천은 도심 속 운치 있는 산책로다. 성북동에서 시작해 동남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가다 보면 보문동이 나오는데, 건축주는 성북천의 환경에 매료되어 이곳에 모녀가 함께 모여 사는 집을 짓기로 했다. 집안에서 아름다운 하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주택 ‘보문유가’는 이렇게 탄생했다.
성북천이 내다보이는 대지는 코너에 위치한 면적 95.2㎡의 작은 땅이다. 인근 곳곳에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있지만, 오래된 건축물도 많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이곳에 새로 지어질 집이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지도록 외관은 절제된 디자인으로 계획하고, 코너에 위치한 작은 대지라는 점을 고려해 가용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고자 했다. 부정형 대지에 대응하는 동시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확보하는 해법으로 대지 형태를 최대한 따르는 배치를 택했다. 이와 더불어 작지만 열린 디자인으로 성북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실내로 들이고자 했다.
보문유가는 근린생활시설을 갖춘 다가구주택이다. 규모는 지상 1층부터 4층까지, 연면적은 약 60평에 이른다. 1층은 근린생활시설으로, 2층부터 4층까지는 주거 공간으로 계획했다. 진입 공간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가 아닌 작은 도로 쪽으로 배치하고 남쪽으로 난 현관을 통해 따뜻한 햇빛이 유입되도록 했다. 2, 3층은 최대 면적 확보를 위해 공간 형태가 같지만 가구 배치를 달리해 차별화했다. 4층은 정북사선제한 조건에 따라 반은 실내, 그외 공간은 옥상으로 계획했다. 옥상에는 작은 정원이 있어 자연과 교감하며 마음을 틀 수 있다.
바깥을 향하는 수평적 실내 구성
주거 공간 설계에서는 채광과 조망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보통의 다가구주택 설계는 수평적 공간 구성보다 수직적 공간 구성이 우선되기 마련인데, 각 층의 실내가 외부로 향하는 수평적 방식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도심에 위치한 다가구 주택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고려해 큰 창을 되도록 내지 않는다. 하지만 대지에서는 성북천 전경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했으므로 2~3층에 큰 창을 두었다. 사계절 변화하는 경관을 느낄 수 있는 곳에 위치한 건축물의 특성을 반영하여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적막함 가운데 더해진 밝음
대지 주변에는 1990년대초에 지어진 붉은 벽돌 빌라가 즐비해 적막한 분위기를 냈다. 이곳의 풍경이 한층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밝은 회색의 화강석을 외장재로 사용했다. 함수율이 낮은 화강석종을 잔다듬 처리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거친 표면 또는 고운 표면이 드러난다. 화강석의 물성을 살려 빛의 방향에 따라 돌의 질감을 드러내고자 한 것. 규격화한 판재로 1층부터 4층까지를 마감해 좀 더 규칙적인 방식으로 리듬감을 보이고자 했다.
보문동 성북천 주변 낡고 오래된 주택가, 어둡고 적막한 산책로 인근에 들어선 보문유가가 색다른 밝은 풍경을 만들어내길 바라본다. 나아가 성북천을 찾는 많은 주민의 일상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