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경섭 글 & 자료.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봉개동 단독주택이 위치한 대지는 제주시 중산간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도는 한라산이 있는 탓에 대지가 북사면인 경우가 많다. 이 집의 역시 북사면이라, 채광과 일조에 대한 고민이 컸다.
건축주는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주해 정착한 이였다. 농사에 관심이 많은 건축주는 자연에 가까이 있는 집을 짓고자 했다. 건축주의 바람에 맞춰 산책하는 듯한 동선을 구성하는 공간을 제안하였다. 집과 외부 공간 사이에 많은 접점을 만드는 것이 이 집의 중요한 요소였다.
집의 방향과 입면
우리나라에서 집을 북향으로 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집 내부 채광에 있어 북향은 좋지 않은 컨디션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집의 대지는 앞서 말한 것처럼 북사면에 위치해 있었다. 채광에는 불리한 지점이었지만, 반대로 주택 전면부의 개구부를 최소화 하여 상징적인 입면을 구성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채광 문제를 해결하고자 동서 방향으로 창을 내었으며, 거실에 북쪽과 동쪽 그리고 남쪽까지 세 면에 큰 창을 배치했다. 이를 통해 건축주 가족이 외부의 빛은 물론, 제주도의 사계절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긴 복도와 각 실의 연결
이 집의 상징적인 입면인 현관을 지나 집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긴 복도와 마주하게 된다. 다른 일반적인 주택과 중요한 차이점 중 하나가 현관에서는 내부의 어떤 실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도를 따라 집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오다 보면 안방과 욕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코너를 돌면 한쪽 편에 자리한 테라스와 마주한다. 자그마한 수돗가를 가진 테라스다. 테라스의 개구부를 통해 마당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테라스를 나와 1층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주방과 거실이 펼쳐진다. 거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큰창 너머로 오름의 자태가 눈앞에 펼쳐진다. 봉개동 단독주택에서 거실은 계절감과 자연의 정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다. 일반적으로 주택에서 복도는 부수적인 공간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집은 긴 복도를 활용해 공간의 강약을 조절하고 외부 환경과 내부 공간 사이의 리듬이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각 실의 레벨 변화와 스킵플로어
봉개동 단독주택의 대지는 경사져 있기 때문에 공간의 레벨이 순차적으로 공간의 높아지는 모양새이다. 현관과 안방, 욕실은 가장 낮은 위치에 자리해 있다. 거실은 지면에서 1.5미터 정도 위에 있기 때문에 주변 풍광을 더 적극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ㄱ자로 꺾여 있는 형태는 순차적인 레벨로 이어져 2층에서는 스킵 플로어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1층 거실과 이어져 있는 2층 가족실은 한 사람은 반층 아래로, 다른 한 사람은 반층 위로 진입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서로 간의 공간감이 맞물리면서도 각각의 영역이 구성된다. 이처럼 대지의 경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건물은 내부 공간에서 색다른 재미를 주는 공간을 조성할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들이 마주할 수 있는 구조
같은 집에 사는 가족 구성원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움직인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공용 동선을 최소화하고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보다 각자의 영역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도록 구성된 경우가 많다. 이 집은 가족 구성원들이 내부 공간을 이동할 때, 주된 생활공간을 지나면서 자연스레 마주치도록 했다.
예를 들어, 2층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집에 들어와 긴 복도를 지나친 뒤 주방과 거실을 거쳐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거실로 가려면 복도에서 적지만 몇 개의 계단을 올라야만 한다. 또 마당과 2층 테라스에서 실내와 원활히 소통할 수 있는 큰 창을 여러개 배치하였다. 이러한 요소 하나하나가 가족 구성원들 간의 마주침을 일으킨다.
봉개동 단독주택은 농촌의 삶을 동경하던 건축주의 바람대로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창과 동선, 지형에 대한 고려 등으로 둘 사이의 공간감을 긴밀히 연결하였다. 일반적인 주택과 다른 모습의 입면 구성을 통해, 제주 중산간 농촌주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다. 농촌에서의 삶이 척박한 공간이 아니라 풍성한 공간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