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지오 아키텍처 G/O Architecture
산이 있는 집은 종로구 구기동의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크고 작은 단독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올라가야 한다. 집을 오가는 길이 힘이 들지만, 그만큼의 전망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마당에 산을 바라볼 수 있는 평상, 현관 앞쪽에 낮은 긴 계단을 두어 앉을 수 있도록 했다. 마당 중앙 공간은 어떤 조경을 하기보다 깨끗한 종이처럼 바탕이 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는 사람의 생활을 담고, 산을 담을 수 있도록. 산 앞에서 어떤 조경을 디자인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당 한 켠에 베어진 나무 그루터기도 그대로 두어 의자로 사용하고, 그 옆에는 집을 바라볼 수 있는 벤치를 설치했다. 어디든 앉을 수 있고, 어디를 바라보아도 자연인 집이다.
30년 이상된 구옥을 처음 만났을 때 산에 반했다. 멀리 북악산이 보이고, 마당 한 면이 깎아내리는 듯한 산이었다. 일반적으로 주택의 경계를 담장으로 구분하는데 이 주택은 경계의 한 면이 담장 대신 산이었다. 주택 자체는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조용하게 산과 어우러져 있었다. 리모델링하면서 기존의 집을 최대한 보존하고 조용히 산을 바라보고 즐길 수 있는 집이 되길 바랐다.
아이러니하게, 건축가의 집이 건축 자체의 행위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목표가 된 셈이다. 집은 최대한 조용히, 최대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산을 바라볼 수 있는, 산이 주인공인 그런 공간이길 바랐다. 외관은 있는 그대로,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내부는 기능적인 부분의 보완 및 스타일링만 했다.
새벽에 고양이가 대문 아래로 들어와 마당 가운데 마치 자기 집인 양 앉아서 쉬고 있었다. 산을 넘어 자주 드나든다. 마당의 산 바로 앞에 사는 새 가족이 마치 자기 집인 양 수돗가의 물을 마시고, 복숭아나무에 하나 달린 복숭아를 먹어 치웠다. 내 집인데, 내 복숭안데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생각해 보니 그 고양이와 새 가족들에게 이 집은 내가 오기 전부터 살던 그들의 집이었겠구나 싶다. 늘 그렇듯이 마당에 와서 쉬고, 마당에 열린 과일을 먹고, 물도 마시던 그런 그들의 집이었다. 나는 그들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사 후 조금 부지런해졌다. 그리고 집을 위해 계절별로 해야 하는 일이 다르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다. 주택에 살면 계절별로 해야 하는 일이 다르고, 할 수 있는 일도 다르다. 봄에는 잔디를 깎거나 식물을 심고, 여름에는 나무와 마당에 물을 자주 뿌리고, 가을에는 낙엽들을 쓸고, 겨울에는 눈을 치워야 한다. 집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계절마다 다르고, 집을 활용하는 것도 계절마다 다르다. 그리고 자연도 계절마다 달라 마당의 나뭇잎 색깔과 마당에 찾아오는 동물이나 곤충들의 종류도 다르다. 계속 변화하는 집에 사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