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종우 글 & 자료. 스튜디오 李心田心 Studio LXJX
해안에서 3km 남짓 거리에 있는 대지는 8자 모양의 특이한 생김새로 눈길을 끌었다. 임의로 큰 대지를 나누기 위해 잘라낸 듯 반듯하게 생긴 도시의 여느 필지 모양과는 달랐다. 제주도 전통 민가들은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가 따로 쓰는 두 동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을 염두에 두고 누군가가 손으로 직접 경계를 그어 놓은 것 같은 모양새가 마음에 들었다. 건축주 역시 민가의 오랜 전통대로 본인과 부모님이 거주하는 각각의 건물 설계를 의뢰했다.
건물 형상은 대지의 모양과 남북의 방향을 따르는 두 개의 정방형을 겹쳐 놓으면서 시작됐다. 사면이 땅에 접하는 정사각형의 벽과 공간은 대지의 방향에 맞추고 천창은 남북의 방향을 따랐다. 지붕의 경계는 천창과 벽면의 모서리를 입체적으로 연결한 정사각형이 되었다. 이로써 천창, 지붕, 벽 세 개의 정방형은 서로 맞물리며 비례적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바닥과 벽면에 투사되고 시간과 계절에 따른 태양의 높고 낮음에 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궤적이 되어 공간에 새겨진다. 투사된 빛은 형상적일뿐 아니라 촉각적이다. 건축주는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빛의 괘적을 쫓아 실내를 거닐었던 일상을 들려 주었다.
내부 공간은 중앙의 천창을 중심으로 아홉으로 나누고 부부와 자녀 침실을 대각선 방향으로 대칭시켰다. 다른 두 모서리에는 주방과 가족 공간을 두고 그 둘을 잇는 중앙 공간은 넓은 벽면을 이용하여 건축주가 소장 중인 작품들을 위한 갤러리로 계획했다. 지붕선을 쫓아 만든 네 면의 테라스와 창은 서로 다른 모습의 외부와 만나게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용의 변화에 반응하는 내부 공간과 외부를 병치해 풍경을 완성하고자 했다.
규모가 작은 부모님 세대는 둘로 나눠 거실과 주방을 북측에, 침실과 화장실을 남측에 각각 배치했다. 동남향의 거실창은 테라스와 연결되고 작은 텃밭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 풍경을 위한 창문은 외부의 테라스로 연결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건물이 중앙에 배치됨에 따라 외부 공간도 자연히 4분할되었다. 각 외부 공간은 아마추어 조경가이기도 한 건축주가 서로 다른 성격을 부여해 가꿔 나갈 것이다. 이로써 4방향의 창은 단순히 방향만 달리 하는 것이 아니라 4개의 정원이 만들어 내는 풍경을 담는 그릇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