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비유에스건축 B.U.S Architecture
어린 아이들이 제주에서 지내며 느낄 수수하고 담백한, 느리고 한적한 강정동의 추억을 가끔이라도 되새길 수 있는 작은 공간. 그런 감흥을 지인과 인연이 닿는 이들도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은 공간. 이 두 개의 공간들이 너무 요란하지 않게 분리되었으면 하는 게 클라이언트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였다.
대지는 강정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2층 이상으로 올라가면 마을과 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2층과 다락이 있는 규모로 계획했다. 2층은 클라이언트를 위한 세컨하우스 개념의 공간이다. 2층 내부와 테라스에서 1층의 마당이 보이지 않게, 그러면서 마을의 풍경과 바다는 훤히 내다볼 수 있게 계획했다. 1층은 지인들을 위해 마련한 곳으로 한 달간 머무를 수 있는 배려의 공간이다.
제주도 중에서도 강정 마을이란 곳에 한 달간 머물때 과연 어떤 장소와 경험을 기대할 수 있을지가 건축가로서 가진 주된 고민이었다. 개인적으로 제주도에서 진행했던 여러 프로젝트와 비교할 때, 이번 강정동 프로젝트의 햇볕이 가장 따뜻하고 포근했던 기억이 든다. 서울은 한참 추웠던 시기인데도 강정동에만 오면 서울의 한기를 금새 잊을 수 있었다. 조용하고 따뜻한 이 마을을 오갈때, 유독 많은 동네 강아지들이 길가에 누워 낮잠을 자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바쁜 출장 업무를 보는 나로선 이렇게 아무데서나 누워 낮잠을 잘 수 있다는게 마냥 부럽기만 했다.
이런 경험을 하다보니 문득 어디에서든 편하게 눕거나 기대어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지친 심신을 회복하고, 가족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공간에서 숙면을 취하는 것만큼 사람이 건강해지는 쉬운 방법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15평 가량의 공간에서 몇 명이 방문할 지 모르는 의외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침실 개수와 공용 공간의 확보라는 딜레마도 존재했다.
독립적인 침실은 하나만 계획한 후, 집의 나머지 공간은 모두가 눕고 기대고 앉을 수 있는, 이를 테면 ‘공용수면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했다. 실제. 인원에 커다란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집 곳곳에 놓안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방을 만든다고 생각하기 보다 방에 존재하는 수면 공간을 집 안에 분산 배치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강정동에 지은 주택 디자인은 ‘수수강정’이란 그 이름처럼 수수하게, 담백하게 마무리됐다.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이 집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고민했던 클라이언트의 마음도 이제 얼추 다 정리가 된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