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에이알에이 건축사사무소 ar-Architects 정리 & 편집. 이현준 에디터
대학생 두 자녀를 둔 부부가 평생을 살겠다며 지은 집이다. 대지가 위치한 지역은 전형적인 주거밀집 지역이었다. 설계 단계에서 건축주는 집 내부에 두 대의 주차공간과 정원, 그리고 독립된 욕실과 드레스룸을 요구했다. 비교적 단순한 요구였다.
반면에 대지가 가진 특징들은 아주 까다로왔다. 첫째는 신축공사를 위해서 문화재 발굴조사를 해야했다. 두번째는 집의 남쪽면 파사드가 4차선 도로에 접해 있다는 점이었다.
발굴조사 첫 날, 조선시대 석축의 일부분이 발견되었으며, 발굴을 완료하였을 때에는 대지의 절반이 조선시대 성곽의 일부분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문화재를 보호하고 대지의 특성을 재해석하면서 설계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면서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어야 했다.
조선시대 김해읍성은 마을이라는 공동체를 외부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성곽은 ‘보호’의 상징이다. 또 보호의 기능을 극대화하기 해당 시대의 기술이 집약되는 결정체였다.
우리는 문화재 조사 과정에서 발굴된 이 성곽의 상징을 이 집에 적용하기로 했다. 김해읍성이 전쟁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했다면 이 집의 담장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한다.
우리는 이 집을 설계하면서 전통 한옥의 외부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의 전통 가옥에서는 앞마당, 뒷마당, 툇마루, 대청마루같은 다양한 외부공간들이 집 전체를 감싸며 다양한 기능들을 해왔다. 반면, 현대에는 정형화된 형태로 삶을 기능적으로 해결하는 아파트가 주거 형태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 기능적인 구조의 아파트가 절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외부공간이다.
우리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옥의 개념을 빌어 이 집에 다양한 외부 공간들을 만들어 넣었다. 각각의 외부 공간은 서로 소통하면서 각각의 내부 공간과 매치되도록 해 매번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대문을 열면 현관까지 지붕만 뚫려 있는 돌마당, 현관과 식당을 사이에 두는 중정, 이 중정은 앞마당과 주방 그리고 뒷마당을 잇는다. 또 앞마당은 2층 데크과 연계된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남쪽 파사드였다. 이 집 외부 공간의 대부분은 집 안에서 기능하지만, 남쪽 파사드와 그 안의 정원은 동네와 소통을 해야했다. 건물의 남쪽면이 4차선 도로에 연결돼 있기 때문에 전면이 외부에 노출됐다. 거주자의 프라버시를 확보하기위해서는 개구부를 최소화 해야했고, 외부와 소통도 해야했다. 이 두가지를 함께 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우리는 이 모순을 역설로 바꿔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는 많은 스터디를 통해 외부로부터 시야는 차단하면서 내부로 빛과 바람을 유입할 수 있는 스텐파이프 스크린을 계획하고 이를 ‘스틸 그로브’라고 불렀다. 사용된 스텐파이프는 총 4종류이다. 여러 번의 샘플 제작을 통해 시야를 적절히 차단하면서 가장 안정적인 형태를 찾아냈다.
우리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많은 시공자들을 만났다. 운이 좋게 장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골조팀과 금속팀을 만났다. 김해읍성이 한 시대의 기술의 집성이었다면 ‘스틸 그로브’는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시공기술의 결정체다. 우리와 함께한 시공팀들이 있기에 이 집의 디테일이 가능했다.
이 집은 주거환경과 프라이버시의 동시 해결 이상으로, 동네의 가로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 시도한다. 해가 있을 때는 어두운 집안 앞의 스틸파이프들이 가로의 입면을 형성하는 동시에 집안에서는 안정된 외부공간을 제공한다. 해가 졌을 때는 집안의 조명들이 스틸파이프 사이로 새며 새로운 형태의 입면을 동네에 만들어주며, 동네와 또 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