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현경 글 & 자료.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 a.co.lab
영문학 전문가인 건축주가 정한 씨타델 카페라는 이름은 일견 도시 외곽에 있는 흔한 카페 이름 같다. 하지만 이 이름에는 건축주가 생각했던 꽤 심오한 집에 대한 핵심적인 가치와 의지, 개인적 갈등 그리고 모순이 모두 담겨 있다. 그러한 모든 의미가 상당 부분 나의 건축 작업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건축주는 애완견 두 마리와 집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들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 citadel은 돌 성채를 뜻하고, canine은 개를, feline은 고양이를 뜻한다. canine과 feline의 합성어인 CaFe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카페의 의미와는 다르다.
이 건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개와 고양이를 위한 돌성채를 만들고자 했다. 여기에서 개와 고양이는 인간이 아닌 나머지 생명체 전부를 의미한다. 또한 이 건물의 이름은 A.J.크로닌이라는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 성채(citadel)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회사에서 은퇴를 앞둔 건축주가 소설 성채의 주인공처럼 말년의 삶을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이상과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보통 나의 작업은 주변적이거나 무성적인 나머지 영역에서 정규분포 밖에 위치하는 비주류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중심 바깥에 위치한 수 많은 평범한 서사들도 충분히 기념되고 기록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압축해서 ‘나머지성’이라고 부른다. 그 나머지는 저울의 균형을 찾기 위해 필요한 부족한 것과 남은 것을 뜻하는 Balance(균형, 나머지)의 의미이기도 하고, 기형과 편차를 뜻하는 Anomaly의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건물의 정면보다 뒤 편을 통해, 그리고 도시의 중심보다는 변두리나 배후지에서 더욱 많은 이야기를 읽어내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꽃만 기억하지만, 꽃의 대부분은 줄기와 이파리, 그리고 뿌리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나머지의 개념은 전체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다소 보수적인 정규 건축 교육을 받고 특정한 건축적 심미안이 옳다고 지속적으로 교육받은 건축가이기에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 심미적 완성도가 높은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그것이 가능한 재력과 미감을 갖춘 유별나지 않은 평범한 건축주를 선호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 씨타델의 건축주를 만났을 때, 요구 사항이 이상하고 디테일한 매우 특이란 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엘리트 교육을 받고 사회 지도층 인물을 대하는 업을 가진 사람임에도 가장 서민적인 태도와 솔직하고 대담한 자기표현, 틀 안에 갇히지 않은 건축주를 경험했을 때 내가 생각하는 나머지성과의 유사함을 감지했다.
건축주가 추구하는 성채의 이상에는 사후에도 무너지지 않는 집을 원하면서도 인간의 집이 가지는 초개와 같은 가벼움이 담겨있다. 이동하는 집의 사례를 가져와 보여주면서 천 년을 버티는 성채를 요구하고 거대한 바위를 상상하지만, 그것이 갈라져야 더욱 돌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당에 가마솥을 데우는 화덕을 바라면서도 집에서는 개의 발톱을 위한 돌바닥 위에서의 입식 생활을 감수하겠다는 동서양의 문화가 혼재된 대한민국 마초 남성성과, 말년을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한 안식처를 만들겠다는 그의 이상이 놀랍도록 어울렸다.
이 집은 이렇듯 여러 가지 가치와 이상 그리고 모순된 요구들이 가득한 곳이고, 그 요구들이 가지는 정확한 형상들은 매우 피상적이지만 그 모두를 담는 형상은 가장 보편적인 것에서 찾으려 했다. 그 모순적인 형태 발전 과정은 이상하리만치 순조로웠다. 전체적인 집의 형상으로 건축주가 요구한 것은 캐러밴 에어스트림 버스의 그것이었는데, 난 그 형상을 조금만 다듬어 절반의 돔(semi-dome)과 볼트(vault)로 정리했다.
영속성을 뜻하는 성채의 의미와 건축의 근원적이고 본능적인 형상을 만족시키는 과정이었다. 서구의 고전건축이 돔과 볼트를 고안한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건축가 없는 건축으로서의 볼트(sail-vault)는 오랜 시간 존재해왔다. 이 근본적인 형상은 전체적인 집의 조형 언어로 사용했다. 건축주의 거침없는 다양한 언어를 그대로 형상화하면서 그것들 사이의 조정을 하면 이 사회의 나머지성이 형상을 가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