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사무소아홉칸 Architects Office9kahn
여행자의 집, 특별한 여정에서 돌아와 일상을 가꾸는 집
여행과 캠핑을 사랑하는 남자가 평생에 한 번, 자신을 위한 집을 짓는다면 어떤 땅을 선택해야 할까. 집을 지을 땅을 오랫동안 찾아온 건축주는 전원주택단지 안에서도 동쪽으로 나무가 우거지고 남쪽으로는 농경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조용한 땅과 인연을 맺었다.
땅을 결정하고 구입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지역 건축사사무소의 지인에게서 건축주를 소개받은 것은 2019년 봄이었다. 화창한 날 방문했던 대지의 첫인상은 낯설지 않은 주택 단지의 이웃집들과 옹벽을 뒤로하고 마침내 펼쳐지는 지평선을 마주한 땅 끝의 해방감,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집은 북측 인접 대지의 보강토 옹벽과 설계 당시 비어 있던 서측 이웃 대지를 고려해 주로 동쪽과 남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좋은 풍경을 보고자 앉은 집의 자세를 결정하면서도 곧 이웃이 될 옆 대지와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인사할 수 있는 배려를 집의 첫인상이 되도록 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집의 디자인과 함께 외부 담장 계획을 고려했다. 담장은 기본적으로 땅의 경계를 나타내고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한 켜 안으로 들인 담장은 마당의 용도를 좀 더 명확히 규정하면서도 이웃을 배려하는 젠틀함이 될 수 있다. 단순히 경계 짓는 역할에서 나아가 간결하되 흐름을 만드는 경관 요소가 될 수 있도록 U블럭의 형태로 담장을 만들고 조경을 더해 시퀀스를 만들었다. 집의 북쪽 담장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홍단풍이 방문자를 맞이한다. 집을 나설 때와 돌아올 때 항상 마주하는 나무 한 그루를 두고자 했다.
집의 구성은 크게 본채와 안채로 나눌 수 있다. 본채는 2층 규모로 대지 안쪽에 배치했고, 안채는 바깥쪽에 배치해 조금은 이색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주로 블라인드를 열고 생활하게 되는 공간을 안쪽에 두어 이웃과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면서 다양한 마당 활동과 차경을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본채는 1층 거실과 주방 다이닝, 2층 서재와 손님방으로 주된 활동 공간이 된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동쪽으로 열린 주방 다이닝 영역과 남쪽을 보는 거실 영역이 있다. 거실로는 대지의 장점인 펼쳐지는 원경이 잔디 마당과 어우러지듯 들어온다.
반려견과의 생활을 고려해 본채의 바닥 마감은 포세린 타일을 선택했고, 특별히 거실 화장실 영역에 반려견을 씻길 수 있는 독립된 샤워실을 설치했다.
주방 다이닝 영역은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아일랜드 싱크대와 함께 뒷마당으로 연결된 보조 주방이 숨어있는 밀도 있는 구성이지만, 시각적으로 복잡하지 않도록 디자인했다. 식탁에서 눈을 마주볼 수 있는 위치에 반려견의 쉘터shelter를 만들었다. 다이닝에서는 코너 창을 내어 동측 숲의 풍경과 아침 햇살을 즐기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자작나무로 마감된 계단을 오르면 2층 테라스로 향하는 복도를 두고 남쪽으로는 방이, 북쪽으로는 샤워실이 위치한다. 1층과 마찬가지로 서재는 동쪽을, 손님방은 남쪽 풍경을 나누어 바라보도록 창을 냈다.
안채는 오직 건축주만을 위한 공간인데 안방과 드레스 수납, 화장실을 묶어 거실과 연결하되 작은 복도 공간을 지나도록 했다. 이 복도 공간은 큰 창을 통해 낮은 꽃과 가까운 마당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다.
안방은 아늑한 감각을 위해 조도를 낮추고 원목마루를 깔았다. 특이하게도 안방 영역인 안채가 집의 얼굴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고측 창을 내어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해 질 무렵 노을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남쪽으로는 길고 폭이 좁은 창이 있어 해가 깊이 닿으면서도 고요함을 해치지 않는다.
집 앞 잔디 마당은 반려견이 뛰어놀기 좋도록 켄터키블루 그라스Kentuckyblue grass를 식재했고, 거실과 다이닝에서 직접 마당으로 드나들 수 있게 했다. 본채 앞 데크는 처음에 석재 마감을 고려했으나, 공사 예산에 맞추는 과정에서 콘크리트 코팅으로 변경했다. 다만 추후에 석재 타일 마감을 할 수 있도록 마감 레벨의 여지를 두었다.
입면 마감 재료는 경제성을 고려했는데, 본채에는 직접 손에 닿는 부위에 오랫동안 차분하고 자연스런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열처리 목재 사이딩을 적용했다. 데크를 따라 알미늄 처마를 설치해 일사량을 조절하고 비 오는 날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처마 아래에 앉아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안채에 대해 건축주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집 마당에 널린 이불 빨래를 보며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건축주의 회상을 듣고 안채 앞에 데크와 조경, 이불 빨랫대를 계획했다. 실제로 이곳이 애정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9년 봄부터 약 6개월간 설계했던 여행자의 집은 코로나19가 전세계에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3월에 착공해 10월에 사용승인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두의 일상이 멈추었듯 건축주 역시 즐기던 여행을 멈추어야 했다. 평범한듯 당연했던 하루를 우리는 이제 보다 깊고 넓게 느끼고 일궈야 할지 모른다. 여행이 특별한 일상인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여행처럼 특별하게 다가올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