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안인규 학생 인턴 글 & 자료. 건축사사무소 서가
농지에서 택지로 변한 대지
운양동은 한강 변에 위치하며 과거 농지 상태였다. 김포한강신도시 등으로 주변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농지는 단독주택전용지로 조성되었는데, 농지를 매립해 조성된 땅은 무르고 지내력도 부족한 상태였다. 누가 먼저 집을 지을지 서로 눈치를 보며 기다리듯, 몇 년 동안 단독주택 필지들은 비워진 상태로 남겨져 있었고 잡초들만 무성한 상태였다. 운양동 건축주 가족들도 주변 이웃 주민이 없는 땅에서 먼저 신축을 진행하기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하나둘씩 차근차근 시작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설계를 시작했다.
대지는 인접 대지 및 도로와 평평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북으로는 6미터 도로가 면해 있고 남측과 서측으로 공원 부지에 면해 있다. 북측의 도로 너머로는 한강 생태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한강이 흘러 2층 정도의 높이에서는 좋은 조망을 가질 수 있다. 남측으로는 갈대밭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지만, 그 사이로 공원 산책로가 있어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주택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적절한 열림과 닫힘을 통해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 풍경들은 주택 내부로 끌어들이면서 외부의 시선에 대해서는 건축주 가족들의 사생활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삼대三代 그리고 사돈査頓
운양동 주택은 요즘 같은 시대에 흔하지 않은 삼대와 사돈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인 가구가 점차 늘어가고 있는 시대적 흐름과 달리 각자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운양동 주택을 통해 다시금 모여 살기로 한 것이다. 가족은 성인 다섯 명과 유아 한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동안 서로 다른 주택의 유형에서 지내왔던 터라 새로 짓는 주택에 대한 요구사항도 가지각색이었다. 주요 구조를 포함한 구축 방식부터 시작하여 내부 공간 구성 및 인테리어 등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요구사항 등이 다양했다.
사돈 사이가 친하다고 하여도 하나의 공간에 모여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으리라 생각했다. 이에 각자의 사생활은 독립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각각의 거주 및 중정 공간은 분리하고,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가족 구성원들이 다 함께 모일 수 있는 공유 마당을 계획했다. 주택의 매스는 동선 및 대지의 형상과 기능 등에 따라 주차장 그리고 사돈들이 나뉘어 사는 공간들로 계획했으며, 각각의 공간들이 중첩되거나 만나고 나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마당과 중정 등 외부 공간들이 만들어졌다.
주택 내부의 공간 배치는 가족 구성원들의 나이 및 조망에 대한 요구사항을 반영했다. 연세가 있으신 부모님들의 주생활 공간은 이동의 편리성 및 외부 중정 공간의 접근성 등을 고려하여 1층에 배치하고, 각각의 침실에 면해 툇마루를 계획했다. 2층에는 젊은 부부와 유아가 머무는 공간으로 각각의 침실 위치 및 거실의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조망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어느 방에서는 한강이 보이고, 어느 방에서는 갈대밭의 풍경이 펼쳐지며, 복도에서는 내부 중정과 이웃 공원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 다른 방향의 조망과 크기와 높낮이 등이 다른 성격의 공간들을 통해 여러 갈래로 나뉘었던 가족 구성원들의 요구사항을 하나의 주택에 담아낼 수 있었다.
무채색 콘크리트의 빛깔 너머
운양동 택지개발지구는 오랫동안 비워진 대지와 무성한 잡초 그리고 공원의 모습이 혼재돼 다소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리아네 두 가구 주택도 주변 건물이 없던 시기에 설계를 시작했고, 장차 변해갈 대지 주변의 풍경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각자의 개성을 지닌 집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마을이 조성되었을 때, 리아네 두 가구 주택은 이러한 동네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 잡을까?
내부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규모에 따라 서로 다른 크기의 박스 형태 매스만으로 조합해 예측할 수 없는 주변의 변화 속에서도 간결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동네 한 곳에 자리잡기를 원했다. 이렇게 간결한 형상을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해 노출 콘크리트 및 그 색상과 유사한 콘크리트 벽돌로 외벽의 마감재를 단순화했다. 이를 통해 각양각색으로 만들어질 주변의 집들 가운데 하나의 비워진 배경이 되면서도, 공원의 녹음과도 어우러지는 집이 되기를 기대했다.
공공영역에서 바라보는 무채색의 파사드를 지나게 되면 각기 다른 기능과 형상을 지닌 중정들이 놓여있고, 공과 사의 중간 영역인 중정을 지나면 가족들의 생활이 담긴 사적 공간을 만나게 된다. 크지 않은 대지 면적에서 집안 내부까지 이르는 동선을 이런 방식으로 늘어뜨린 것은 단독주택 전용지들 가운데서 사적 공간을 보호함과 동시에 집까지 이르는 과정에 대한 공간적 경험을 주기 위함이다. 또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안 내부로 빠르게 들어가기보다, 동선의 중간 중간에 놓인 중정의 나무와 풀, 그리고 하늘을 보며 일상에 대한 소소한 즐거움이 가족들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했다.
늦가을 운양동 중정에 심어둔 나무와 풀들이 지난했던 겨울을 견디고 서서히 자라나 이 집과 조화를 이루고 있듯이, 운양동 리아네 가족들도 새집과 새 동네에서 이웃 주민들과 어우러져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