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장경림 글 & 자료. 씨엘건축사사무소 CL architects
월산리, 달님이 노니는 곳
서류를 두고 온 걸 알고 10분 뒤에 차를 돌려 다시 그 집을 찾아갔을 때 이미 그 땅엔 나보다 먼저 진한 어둠이 찾아와있었다. 불빛이 귀해지는 까만 어둠 속에 그 집은 고요히 놓여있었다. 부부는 노란 불빛에 기대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공기는 어느새 묵직해져서 진한 흙냄새와 이슬 냄새가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다른 곳보다 빨리 진한 향의 어둠 손님이 찾아오고 주변은 차분하게 아래로 가라앉고 그 위로 둥실 달님이 노니는 곳, 월산리이다.
비밀의 정원
다른 곳보다 금세 진한 어둠이 찾아오는 골짜기 땅. 그리 굽이굽이 찾아 들어가는 깊은 숲속도 아닌데 이 작은 골짜기는 신기하게 작고 진한 것들이 응축되어 있다. 이 땅은 산비탈에 기대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경사는 약간의 평지를 마련해놓고 다시 저 아래를 향해 비스듬히 흘러간다. 자칫 잘못하면 에너지가 속절없이 저 너머로 흘러버리고 말수도 있는 약간의 긴장감이 있다.
그 긴장감을 해소해 주는 것이 두 부부의 비밀의 정원이다. 그들이 정성스럽게 가꾸는 소박하고 화사한 정원이, 그 안의 밝고 환한 생명력이 이 땅의 중심을 잡아주고 에너지를 모아준다. 그렇게 그 땅은 낮고 소박하고 단순하다. 낭만적이다. 불안감을 내재한, 동시에 낭만적인 풍경의 이 땅은 작은 개울을 건너와야 비로소 들어올 수 있다. 굳이 울타리를 치지 않아도 땅이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있다. 그리고 개울을 건너오면 안쪽에 작은 자연 연못이 건강하게 숨 쉬고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 옆에 이 땅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 같은, 가장 단순한 형태의 담백한 셸터shelter를 만들고자 했다.
두 개의 셸터shelter, 큰 것과 작은 것
건물은 주인이자 주인이 아니다. 원형질의 가장 단순한 형태로 기능을 담고자 했다. 가장 원초적인 삼각 지붕의 집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 단순한 두 개의 볼륨이 그 원초성이 주는 아우라로 땅에 단단히 서 있다.
개울을 건너 들어오면 먼저 큰 것을 마주하게 되는데 외부로부터 듬직하고 담담한 이미지를 준다. 건물을 살짝 돌아서 땅 안쪽으로 들어오면 작고 밝은, 정원으로 열린 작은 매스를 볼 수 있는데 이 작은 것은 두 부부의 보석 같은 정원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정원 일을 하고 밥을 짓고 식사를 하고 그림을 그린다. 햇빛을 찾아, 그늘을 찾아 들락날락 자연과 셸터 사이를 오가다 보면 어느새 어둠이 찾아올 것이다. 어둠이 짙어지면 부부는 좀 더 견고하고 폐쇄적이며 아늑한 큰 매스로 들어가서 밤을 즐길 것이다.
자연으로 열린 순환형 평면
두 개의 셸터는 각각의 기능을 달리한다. 바깥쪽의 큰 것은 창문을 최소화하며 주로 프라이빗한 기능을 담아 거실, 서재, 침실 등을 두었다. 안쪽의 작은 것은 자연에 활짝 열린 카페 같은 분위기의 주방 식당 공간을 연출하였는데 이는 설계 초기부터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기도 했다.
1층은 두 개의 바닥 레벨로 구성했다. 바깥쪽과 안쪽의 공간의 깊이감과 실제 대지 레벨을 고려한 것인데 거실에서 계단을 두 단 올라가면 식당과 손님방이 나온다. 식당은 정원과 안마당으로 활짝 열려있으며 손님방은 뒷마당과 기존의 자연 연못에 열려 있다. 연못 공간은 특히 여름철에 햇빛을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이 있는 곳으로 사용 빈도가 높아 부출입구를 두고 주방을 가까이 두었다. 각각의 마당은 여유 있게 걸터앉아 즐길 수 있도록 캐노피와 툇마루를 두었고 붉은 벽돌로 따뜻한 자리를 만들어주고자 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우주선에 탑승하는 기분으로 좁고 길게 정중앙에 배치하였는데 2층 전체가 하나의 순환형 평면으로 막힘없이 흐르게 하고자 했다. 서재와 침실만으로 구성되었고 침실은 정온한 분위기로 연못과 그 뒤의 숲의 풍경을 담고자 했다.
서재는 밝고 환한 분위기로 긴 고창을 두어 정원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창턱에 걸터앉아 저 멀리 호숫가 풍경까지 볼 수 있도록 하였다. 2층 중앙의 욕실은 양쪽의 복도에 면해있는 다소 독특한 구조로 천장도 경사 천정으로 두어 밝고 환한 개방적인 분위기를 연출, 집 속의 집 같은 콘셉트로 두었다.
목구조와 구조미와 천연 슬레이트
오래전 건축주는 건강상의 이유로 양평에 내려왔다. 목구조와 내부 천연재료들은 그런 이유에서 결정되었다. 사실 작은 셸터의 경우 오픈형 평면이다 보니 특히 목조로 구현하기가 어려운 형태였는데 일부 중목소재를 반영하고 디자인적으로 구조를 노출하여 오히려 목구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시골집의 야외활동에 포치가 필수적으로 필요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지붕의 처마 형태가 아닌 다른 형태의 깊은 포치를 만들어서 구현, 사용의 편리함을 높였다.
외부재료는 벽과 지붕을 동일한 재료로 선정하여 셸터의 성격을 더욱 부여하고자 했다. 은색의 천연슬레이트는 모던하고 시크하고 무표정한 소재인데 날씨에 따라서 그날 그날이 다르게 변하는 매우 매력적인 재료였다. 도회적이면서 자연의 무늬와 칼라가 아름답고 외관의 단순한 형태를 구현하기 적합했다. 내부 재료는 벽돌, 목재, 규조토 등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붉은 컬러로 따뜻하고 원초적인 질감이 있는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했다.
에필로그
“우린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서로에게 해주고 싶어 새집을 짓게 되었는지도 몰라요. 정말 잘 지어졌으면 좋겠어요. 애들 아빠가 장남의 무거운 짐을 지고 열심히 살았거든요. 이 집이 남편에게 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난 작업 일지를 보니 설계 초기에 건축주로부터 개인적으로 받은 문자를 적어둔 게 있다. 나는 월산리 땅의 매력으로, 건축주는 저 고운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가 시작이 되었구나 싶다. 두 분과 그들의 정원과 월산리의 달님에게 좋은 셸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