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정훈 글 & 자료. 지랩 Z_Lab
명월리는 제주의 마을 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마을 어귀에서부터 수령이 400~500년 된 팽나무 군락지가 펼쳐지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명월성지와 명월대가 남아 있는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새로 들어설 스테이 ‘잔월’을 명월리의 유서 깊은 환경을 존중하고 선비들의 문화를 이어가는 풍류의 공간으로 기획했다.
대지와 건축의 배치
대지에는 팽나무와 동백나무 등 오래전부터 이곳에 자생해온 제법 큰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형화되지 않은 대지를 돌담으로 둘러싸고 있는 제주다운 환경에 순응해 공간을 구성했으며, 마을 어귀에서 이곳까지 이어지는 시퀀스와 주변 민가와의 조화를 고려해 건물의 형태와 지붕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시선의 이동이 자연스럽고 작지만 풍부한 경험이 가능한 공간이 탄생했다.
잔월에서의 경험
대지 중심에는 올레 초입과 밭을 바라보는 대청마루가 있다. 전통 건축의 누각을 모티브로 디자인한 대청마루는 명월리의 풍류를 느끼며 마을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기능한다. 제주의 오래된 전통 가옥에 쓰인 목재를 대청마루의 바닥 마감재로 재활용해 새롭게 지어진 건물에서 오래된 시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너른 지붕 아래 놓인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명월리의 풍류를 상상하고, 잔월의 풍경과 바람, 나무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실내 못지 않게 넉넉하게 확보한 옥외 공간은 바람이 통하는 길인 동시에 안락과 여유를 누리는 시골스러운 분위기를 형성한다. 소박한 크기의 두 침실로 향하는 시선이 낮게 깔리도록 하되, 공간은 어두운 색으로 마감해 차분함을 의도했다. 천장에는 창을 내 바깥의 커다란 나무의 녹음에 집중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정원을 마주한 스파
건물 가장 안쪽에 위치한 스파 공간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사우나 내부를 탄화목으로 마감하고 여유로운 크기의 욕조를 배치했다. 섬세하게 연출된 작은 정원은 또 다른 즐길 거리다. 정원은 콘크리트 가벽으로 둘러싸여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고, 그늘을 드리우는 팽나무와 어우러져 이곳에서의 공간 경험을 완성한다.
나무를 지킨 건축
기존 수목을 보존하기 위해 사전에 건물의 위치를 세심히 측량하고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무들이 지붕과 처마와 충돌하는 지점이 생겼다. 나무의 보존을 우선으로 생각해 처마를 잘라내는 등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했다. 이러한 자세에는 프로젝트를 대하는 지랩의 철학과 지역성을 존중하는 시도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