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경섭 글 & 자료. 에브리아키텍츠 EVERYARCHITECTs
중림창고가 위치한 대지는 길이 55m, 폭은 좁은 곳이 1.5m이고 넓은 곳이 6m인 길고 얇은 모양새이다. 거기다 대지 고저의 차가 8m에 달하며, 맞은 편에는 4m의 언덕길을 사이에 두고 성요셉 아파트와가 자리하고 있다. 아파트 앞길은 오랜 세월 여러 사람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경계와 가게들로 독특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본래 중림창고 터에는 불법건축물인 창고가 있었다. 지은지 50년 된 아파트, 자연스레 형성된 거리가 함께 만들어낸 풍경 속에서 창고는 언덕길의 한 부분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새로 올릴 건물 역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인식되기를 바랐다.
길가에 면한 가게들의 조형 언어를 해석하면서 새 건물을 분절된 단위의 조합으로 구성하기로 하였다. 이를 통해 건물 매스와 외부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지만 세련됐다기보다 다소 오래된 듯한 투박한 분위기의 중림동의 풍경은 중림창고 내외부 재료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오래된 동네 골목의 이미지는 중림창고 전체 동선의 흐름을 만드는 데 반영되었다. 비록 건물 내부 폭은 좁지만,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이 보일 만큼 두터운 깊이감을 지니고 있다. 깊이 있는 내부 공간이 외부 공간과 수직으로 연결되고, 끊어지며, 다시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되면서 공간성과 시각적 요소가 한층 다양해졌다.
레벨 차를 반영한 내부는 오픈된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지만 높은 공간, 낮은 공간, 2층으로 연결된 공간, 외부와 연결된 공간 등 여러 단위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이용자에 의해 다양한 공간이 가변적으로 사용되도록 의도한 결과물이다. 때로는 휴식이나 모임을 위한 장소로서, 혹은 팝업 스토어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중림창고 대지는 길가에 길게 면해 있기 때문에 맞은편 길가에서 건물의 전체 형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없었다. 이런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거리로 면한 모든 면에서 건물 내부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건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보일 수 있도록 1층 전면을 개방하였다. 덕분에 중림창고 내부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이들을 불러들여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또 건물과 도로 사이의 외부공간에는 경사지에서 건물로 진입하기 위한 물리적 수단으로서 단을 조성했다.
중림창고는 중림동을 배경으로 한 옛 사진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길에서 담소를 나누던 풍경을 이곳에서 재현해 사람들에게 길에서의 추억을 선사할 것이다. 또 동네의 공공 거실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건너편 아파트 주민들이나 행인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언덕을 올라가던 이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아이들이 모여서 재밌게 놀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이 공간이 갑갑한 도시 내에서 도시인들에게 여유를 줄 수 있는 곳이 되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