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디자인밴드 요앞 designband YOAP 정리 & 편집. 김영욱 에디터
맑은 바람이 불어와서 마음이 아주 상쾌(爽快)한 것이
마치 오래간만에 그리운 친구(親舊)를 만난 것 같음
세 쌍의 부부가 같이 집을 지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죽마고우였고 함께 방방곡곡 구석구석 여행을 다니길 좋아했다. 어느 날 돌이 유명하다는 어느 강가로 나들이를 나왔다. 강가의 경치에 매료된 세 부부는 퇴직 후 이런 곳에 모여 같이 집을 짓고 살자고 호기로운 말을 나눴다. 그 날 저녁 근처의 한 음식점에서 아주 우연히, 강가 토지가 매물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땅이 임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계약은 당장 이루어졌다. 정년까지 십 여 년 간 세 친구 내외는 틈틈이 땅을 관리하며 그곳에 지을 집을 상상했고 구상했다.
여주시 능서면 내양리 마을 끝자락에 자리 잡은 대지는 탁 트인 하늘 아래서 남한강을 바로 내려다보고 있다. 내양리로 진입하는 도로의 언덕을 넘으면 너른 농지를 배경으로 작은 부락같이 옹기종기 서있는 네 채의 건물이 보인다. 세부부가 함께하는 귀촌 생활을 꿈꾸며 완성한 ‘청풍래고인’이다.
건축주와 건축가 간의 지난한 소통 끝에, 능서면의 지형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강 건너 겹겹이 펼쳐지는 산맥에 겸손히 어우러지는 ‘청풍래고인’의 외관이 만들어졌다. 구조가 정형성에서 벗어난 탓에 도드라져 보일 수 있기에 주변 환경을 가장 관용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색인 황토색 벽돌을 택했다. 덕분에 <청풍래고인>은 눈에 띄면서도 튀지는 않는다.
이 집은 세 부부가 각각 노년을 담아낼 주택 세 채와 여가 밑 손님맞이를 위한 공동시설 건물 한 채로 이루어져 있다. 노년을 지낼 집이기에 건축주 세부부는 크지 않은 단층집을 원했다. 단층집이지만 기초가 50cm 가량 지면에서 띄워 올려 더 나은 조망권을 확보했다.
세 부부가 함께 살아갈 곳이기에 공유될 부분 속에서 각 집이 가질 부분을 지키는 것도 중요했다. 주택 정면에는 널찍한 테라스를 두어 외부에서 주택 내부가 빤히 보이지 않도록 외부 공간 영역이 나누었다. 사적인 외부 공간 확보를 위해 침실과 접한 뒤뜰과 다락을 통해 연결되는 옥상 테라스를 구성했다. 남한강을 바라보는 건물의 북측 면에는 거실과 주방, 식사공간이 배치되고 사적인 침실공간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논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는 가장 안쪽 공간에 구성됐다. 층고가 높은 거실 천장에는 남향 빛을 들이기 위해 둥근 채광창이 마련됐다. 크지 않은 집 안에서 다양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1세대 귀촌 인구 중 많은 수가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귀경한 사례를 흔히 들어왔던 건축주와 건축가는, 건축적으로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였다. 결론적으로, 내부 공간이 불필요하게 크면 안 된다는 것이 공동된 의견이었다. ‘청풍래고인’의 각 채는 최소한의 공간을 집약적으로 갖추고 있다. 단독주택이면서도 최대한 동선의 경제성을 살렸다. ‘보여주기’보다는 ‘살아가기’에 초점을 맞춘 결과다. 그 대신 함께 생활하고 즐길 수 있는 공동 생활공간을 두어 하루에 많은 시간 외부공간과 공동생활시설에서 함께 지낼 수 있게 계획하였다. 공동시설은 전체가 오픈된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되고 남한강을 바라보는 면에는 높은 창을 계획하였다. 남한강의 경치가 공간을 채우며 주택과는 다른 공간감을 준다.
건축주들은 모든 건물의 평면 구성과 외관 마감재를 통일하자고 약속했다. 건축주들은 다양한 의견을 펼치면서도 중요한 지점에서는 한 발짝 씩 물러서며 약속을 지켜냈다. 건축물의 완성도를 위해서 또 비용 발생으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 초반부터 건축주들 사이에 정해놓은 약속이었다. 이것은 건축가에게는 행운이기도 하면서 과제이기도 했다. 통일성을 확보할 수는 있지만 자칫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고, 더군다나 건물들을 똑같은 모양으로 세우면 오히려 조화로움이 깨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었다. 건축주들이의 약속이 향한 방향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조형적 제스처를 통해 각 건물의 외관에 변주를 주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농촌의 전경에 녹아들고 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남한강과 그 너머 산맥들의 경치를 바라보며 ‘청풍래고인’은 같은 듯 다르게, 다른 듯 같게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