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윤선 글 & 자료. 적정건축
평담재는 십년 후 은퇴 생활을 미리 준비하는 교수와 전직 프랑스 요리사인 중년 부부를 위한 집이다.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전에 살고 경험한 주택에서 살고 싶었던 부부는 다음과 같은 공간을 요구했다. 요구사항이 명확한 부분은 충실히 반영하고자 하였고, 당시 생활 모습을 관찰해 표현하지 못한 공간적 욕망을 발견해 설계에 담았다.
“전라남도 장성군 진원면 진원리.
안채 사랑채처럼 두 채를 원합니다.
하나는 살림집 37평 정도. 다른 하나는 서재 겸 손님 오면 묵으실 게스트하우스.
파란 잔디 깔린 집이 아니라 프라이버시가 확보된 안마당.
제가 허름하게 입고 다녀도 볼 사람 없는 안마당 뒷마당이 있는 집이 좋습니다.
마음은 한옥인데 몸은 양옥이거든요.
툇마루가 좋지만 필요한 건 포치, 파티오, 백 야드 이런 거지요.
담장이 꼭 있었으면 합니다.
일본 주택 같은 섬세한 동선도요.
단층이 좋습니다. 무릎이 안 좋아서요. 일부분 2층도 좋습니다.”
현장 답사 후,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부부의 성격을 중요시하면서도 동네와 잘 어울릴 수 있는 배치를 고려했다. 부부는 마당과 담장을 원했는데, 예산 범위를 생각하여 집의 배치로 성격이 다른 마당들을 나누었다. 동네 이웃과 편히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미국식 포치(앞마당)와 가족만의 공간인 백 야드back yard, 식재 마당들이 그것이다.
집 전체에 대한 요구 사항 중 특히 중요했던 것은 손님과 별채이다. 오랫동안 해외에 체류하며 맺은 인연으로 손님 치를 일이 많은 분이었기 때문이다. 손님을 위한 공간은 중요하지만, 평상시에 활용 빈도가 낮기 때문에 늘 집을 사용하는 부부의 공간을 해치지 않는 적정선을 찾는 것이 중요했다. 서재에 작은 복층 공간을 넣어 손님이 서재를 별채처럼 편히 쉴 수 있게 했다. 일상적인 공간과 이벤트 공간에 대한 적절한 균형점이었다.
손님 공간과 가족 공간은 식탁에서 만난다. 가족과 손님이 모두 공동으로 사용할 공간인 다이닝 존dining zone을 중심에 두고 북쪽으로 확장하는 가족 존family zone과 동쪽으로 확장하는 손님 존guest zone이 엮이는 형상이다. 다이닝 존의 6인용 식탁은 가족의 대화 장소이면서 동시에 손님과의 접점이다. 평상시에 손님 존은 서재로써 부부가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호젓한 취미실로 쓰인다.
평담재의 중심은 키친과 다이닝 공간이다. 기존의 거실과 텔레비전 중심의 집과는 다른 모양을 갖추게 된 이유다. 사이 공간은 미닫이문으로 여닫으며 각 공간을 분리하거나 통하게 할 수도 있다.
설계 당시 건축주의 거주하는 집을 관찰해 두 가지 설계의 포인트를 얻었다. 먼저 아내의 공간인 주방이다. 전직 요리사답게 주방 살림이 굉장히 많았다. 수집한 그릇과 각종 조리도구가 캐비닛에 빼곡히 쌓여 있는 것을 보고, 요리사로서 공간적 욕망이 무엇일까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남들보다 넉넉한 주방이 필요하였고, 요리하는 모습이 집의 가장 포인트가 되면 좋겠다 싶었다. 부엌데기가 아닌 쉐프의 요리공간으로 말이다. 그 앞에 6인용 식탁이 있어 넉넉하게 쓸 수도 있지만, 키친 앞에 작은 카운터에서 부부가 즐기는 티타임과 가벼운 식사도 의도된 것이다.
또 하나는 남편의 공간이다. 처음 만날 때부터 ‘우리 집 정원사’라고 소개하신 남편 분은 생태학자이며 집 외부의 공간을 책임지기로 하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아빠들이 그러하듯이 집안에는 그의 공간이 없다. 그래서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작업해야 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의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과 유대를 느끼면서도 가벼운 서류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은 방을 거실 한켠에 마련했다. 1.8미터 폭의 작은 방이지만 현장에서 제작한 목재 상판을 얹어 만든 널찍한 책상이 생겼다. 이방은 양개 미닫이문으로 돼 있어 문을 닫으면 두 명이 잘 수 있는 작은 방이 된다. 타지에 나가 있는 딸들이 돌아오면 쉴 수 있는 작은 패밀리 룸이다.
단층집은 대지에 넓게 퍼져 있음으로 외부공간과 적극적인 관계를 만든다. 각 공간마다 가장 정합한 분위기와 뷰를 선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높이와 형태의 창문을 내었다. 집의 중심인 다이닝 공간에는 서쪽에 논의 목가적인 풍경이 잘 담길 수 있게 큰 윈도 시트가 있다면, 부부 침실에는 아침햇살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낮고 넓은 창이 있다. 장지문은 공간의 활용과 더불어 별도의 차양 시설이 필요 없는 차분한 한옥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장지문과 키친을 감싸는 탄화 애쉬목을 제외하고는 집 안에 특별한 인테리어는 없다. 공간의 위계에 따라 만들어진 박공의 공간이 잘 드러나게 깨끗한 벽지로 마감하였다. 가족의 공간은 살림집의 따뜻한 우드톤이라면 서재는 합판 노출과 에폭시 바닥으로 이성적이고 중성적인 느낌으로 대비를 주었다.
외벽은 백고 벽돌과 청고 벽돌을 공간에 성격에 따라 교차로 사용하였고, 지붕은 슁글로 마감해 주변의 집들에 비해 튀지 않게 하였다. 대신 박공의 옆면을 강조하는 흰색 엣지와 철물 디테일을 살렸다. 세 개의 집이 엮인 모티브를 강조하려 한 흰색 엣지는 회색과 검은색과 대비를 이뤄 흡사 한복의 두루마기 동정 깃 같기도 하다.
평담재平淡齋는 건축주가 처음부터 지어온 이름으로 평평담담平平淡淡하다는 중국말에서 나온, 아무 일도 없다는 뜻이란다. 예로부터 공부하는 집은 齋를 붙였듯이, 책 읽기를 좋아하는 건축주의 취향을 담은 곳이며 인생의 후반기가 아무 일 없이 현재와 같길 바라는 큰 욕심 없는 두 분의 성격과 꼭 닮은 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