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환 학생인턴 글 & 자료. 터미널7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북악산 아래 모여 사는 아홉 세대의 아홉가지 이야기
평창동구 平倉洞口
세종대로에 서서 볼 수 있는 광화문, 북악산, 북한산 보현봉이 겹치며 만들어내는 조화로움은 서울을 상징하는 경관이다. 대지는 그 경관 너머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에 위치한다. 세검정에서 북악터널로 이어지는 길에서 평창동의 들목으로 올라서면 마주하는 삼각형 땅.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이 땅은 평창동의 입구로 인식될 수 있는 장소였다. 이러한 장소적 특성을 반영하면서 땅이 가지고 있는 높이 차이, 일반적이지 않은 삼각형의 형태, 주변의 유려한 산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삼각형에서 온 세 가지 방향성은 각각 북한산 보현봉과 형제봉, 북악산으로 향하고 이 방향성을 따라 두 개의 동을 배치하고 중앙에 공용 마당을 계획했다. 주차장과 보행로는 모두 이곳을 통해 두 개의 동으로 흩어진다. 두 개의 동은 도로에 면하는 삼각형의 긴 변을 공유하면서 각각 남은 두 변을 따른다.
긴 변에는 보다 프라이빗한 실을 배치하고, 가로로 긴 얇은 창을 두어 도로 너머 다른 집들과의 시선 교차를 최소화했다. 가로로 긴 창은 길고 가늘게 쌓아 올려진 사비석과 함께 집의 입면을 이루고, 수평적 요소들은 길을 따라 보현봉으로 흐른다. 다른 두 변에는 다이닝과 거실을 배치하고 전창을 통해 적극적으로 풍경을 끌어들인다. 최소화한 창호의 프레임은 형제봉과 북악산을 그림처럼 담는다. 콘크리트와 테라조로 마감된 단정한 회색톤의 공용 계단은 집 내부의 경험을 극대화한다.
단층 5세대, 복층 4세대로 구성된 9세대의 주택은 큰 틀은 같지만 모두 다른 모양과 구성, 입면을 가지고 있다. 한 변에만 면하는 집은 복층으로 구성하여 침실과 거실, 주방에서 모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마당이 없는 집은 발코니를 가지고, 복층의 마당은 두 개 층을 연결한다. 길의 레벨에 놓인 집은 삼각형 모퉁이 한쪽을 앞마당으로 사용한다. 욕조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북악산을 조망하기도 한다.
각 세대는 주변과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조우한다. 마당을 지나 내부로 들어가기도 하고, 거실에서 연결된 마당에서 풍경을 바라보기도 한다. 침실에 연결된 사적인 마당에는 식재를 심어 안락함을 더했다.
경사지에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계단에서의 경험 또한 단조롭지 않게 만들고자 했다. 도로와 가장 멀리, 대지 가장 안쪽에 놓인 계단은 최소한의 구조체를 제외하고 전부 자연에 열려 있어, 계절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풍광을 온전히 담아낸다. 땅의 가장 낮은 곳에서 북악산의 능선을 배경 삼아 계단을 오르면 공용 마당에 닿고, 공용 마당은 다시 세대 내 마당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주택으로 향하는 길옆 초록색 구조물은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대지 바로 옆에 지어지고 있는 평창동 미술 문화복합공간에서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계획이다. 갤러리는 출입구와 쇼룸 공간을 제외하고는 땅에 묻혀 있는데, 사무공간과 전시공간 사이 선큰 마당을 두어 제한된 채광을 개선하고 대나무 숲을 조성해 두 공간을 자연스럽게 구분했다.
9세대, 9가지의 서로 다른 삶이 자연을 통해 연결되고 대중에 열려 있는 갤러리와 함께 다채로운 경관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