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종우 글 & 자료. 나오이플러스파트너스 Naoi+Partners
이탈리아의 문화와 언어에 평소 관심이 많았던 건축주는 10년 넘도록 사용하지 않았던 집이 있는 정릉의 한 부지를 갖고 찾아왔다. 가족들을 위해 좋은 집을 짓고 싶다는 그는 3000여 권의 책을 소장했다는 만만치 않은 조건과 유럽의 시골 농가주택의 사진이 담긴 CD음반의 표지를 보여줬다.
건축주는 자녀를 위해 집을 지으려는 목적이 가장 컸고, 가족들이 정릉의 산자락에서 울창한 숲과 인접해 지내기를 원했었다. 문제는 3000여 권의 책이 들어갈 공간이었다. 건축주는 옛 집의 건축 면적을 유지하는 크기 않은 집에 2층으로 짓기를 원했다. 또 집이 골목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점을 살려 주변의 경관을 내다 볼 수 있는 옥상 야외 공간도 원했다.
대지는 북악산 가까이 위치하였고, 울창한 숲 때문에 다른 곳보다 기온도 낮고 조용한 곳이었다. 대지에 면한 도로는 차량이 통행하지만 막힌 도로여서 좁고 공사하기 까다로운 상태였다. 이 도로의 끝자락에는 사찰이 여러 개 있고 등산로로 향하는 길도 있어 외부인의 통행이 의외로 잦았다. 남쪽으로는 북악산과 바로 만나고 양 옆에는 높이 차를 가진 주택들이 면하고 있었다.
첫 미팅부터 벽돌을 꼭 사용하고 싶다는 건축주의 요청 사항이 있었다. 벽돌은 많이 사용하는 재료이지만, 집의 개구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어 그 크기와 간격에 의해 건물의 입면이 크게 달라진다. 무엇보다도 쌓아서 만들어지는 벽돌의 물성을 잘 드러내려면 벽은 벽답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기본 개념과 함께 건물의 개구부는 각각의 크기와 서로 간의 거리를 고려해 계획했다.
외부인의 통행이 잦은 도로로부터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 현관 입구를 건물 뒤쪽(남향)에 두기로 했다. 북향인 도로에는 창문을 최소화하고 동향과 남향에서 필요한 햇빛을 받기로 한 것. 크지 않은 공간에 많은 책을 넣어야 했고, 숲과 인접하고 있어 건물 뒤는 자연과 관계를 잘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여기서 생각난 건축적 요소가 바로 이탈리아 전원주택(빌라)이 많이 도입한 ‘로지아Loggia’였다. 건축주도 이러한 외부공간에 대해서 긍정적이었고 우리는 집과 함께 좋은 외부공간을 디자인하려고 집중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시공이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복잡한 설계는 공사비 증가에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이었다. 건축주의 예산에 맞춰 건물의 전체적인 틀은 단순한 형태로 계획했고, 내부 공간에서 다양한 변화들을 줘 지루하지 않도록 했다.
건축주는 겉으로 보이는 단순함 속에 아기자기한 공간들의 배치가 시공 때 생겼던 아쉬웠던 부분들을 덮어주는 것 같다는 후담을 전해왔다.
이 집은 외관의 건축적 형태가 굳건하고 공간을 규정하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훨씬 자유로울 수 있었다. 대지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지만 실제 이탈리아 건축에서 많이 드러나는 형태다. 건축주의 눈에 그러한 모습이 보였고, 우리도 당초의 생각을 잘 실현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프로젝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