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박종우 글 & 자료. 필동2가 아키텍츠 PD2GA Architects
2018년 가을이 시작되던 어느 날,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흔적이 묻어있는 정겨운 구도심은 그때로 돌아간 듯 여러 겹 덧대어진 주변 모습마저 아름답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세월의 흔적과 시간을 기억하고 주변과 대화하는 건축으로 방향성을 잡아야 했다.
집터는 1990년대에 멈춰있는 도심의 이면도로에 있었다. 주변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필요에 의해 작성된 도면으로 지어진 단독주택과 공동주택이 도시의 단면을 보여준다. 도시계획에 의한 격자체계의 도로망이 아닌지라 집터의 모양도 다변형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에 노면의 포장상태도 좋지 않았다. 골목길의 포장과 폭우 시 침수되는 위치 경사도도 중요했고, 그보다 도로의 확폭이 시급했다. 건축주와는 도로 폭을 늘려야 하는 최소 단위 얘기보다 좀 더 내어주는 방향으로 대화가 오갔다.
계획안은 주변 주민에게 도로를 내어주어 서로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고, 지나가는 길만의 용도가 아닌 내어준 저층부는 쉼과 여유로 기억에 남길 바랐다. 이에 내어준 도로와 저층부의 계획은 상가로 부피를 채우기보단 최소한의 시설만 두어 안쪽 집터라는 편견을 보완하기로 했다.
건축물은 지하 1층, 지상 6층 건축물로 1층부터 4층까지는 제2종 근린생활시설, 5~6층은 단독주택(다가구주택)이 자리하고 있다. 각 층마다 면적(건축 면적 357.65㎡)은 같지만, 구성은 다르다. 똑같은 구조가 층마다 반복되는 걸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다.
현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건축물이 들어선다면 정돈되지 않은 주변 건축물과 어떻게 하면 대화하는 건축이 될 수 있을지, 새로 짓는 건축물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는 건축을 하려면 재료를 최소한으로 한정하고 단순화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건축에 사용된 주재료는 콘크리트, 철, 벽돌로 한정하고 그 재료들 사이 경계가 어색하지 않고 하나로 읽히길 바랐다. 건축물의 뼈대 역할을 하는 철근콘크리트 마감의 패턴은 유로폼 노출콘크리트와 송판 노출 콘크리트로 외벽의 슬래브 부분과 저층부는 송판노출콘크리트, 계단실과 내부 벽체는 유로폼 노출 콘크리트를 활용했다.
다소 차분한 내부 콘크리트 마감은 구로철판 손스침이 더해지며 더 단순해졌다. 외벽은 층과 층 사이에 석분 시멘트 벽돌로 쌓았고, 층을 명확히 보여주는 송판 노출 콘크리트의 띠를 둘러 튀지는 않지만 눈에 띄게 만들었다.
주변 건축물의 외장은 특정되지 않은 돌, 타일, 벽돌, 드라이핏 등 다양한 재료가 세월을 그대로 보여준다. 집터 주변의 건축물은 관리가 되지 않아 세월의 얼룩이 그대로 묻어 있지만 새로 지어지는 단독주택, 다가구주택, 다세대주택, 상가주택의 외장재보다 멋스럽다.
이런 주변의 모습을 기억하고 변화하는 도시에 순응하는 건축을 하는 게 절실했으며, 해당 건축물은 조금 더 단순하고 간결해야 하였으며 지루한 층의 반복이 아닌 도시의 배경이 되고 주변과 대화하길 바랐다. 어두운 골목길이 아닌 걷기 좋은 거리가 되고 길은 다시 활기를 되찾길 바라며 우리는 그 건축이 제대로 작동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