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자료. 권현효 건축사사무소 삼간일목 소장 정리 & 편집. 장경림 수습 에디터
건축주와의 만남
사무소로 들어오는 설계 의뢰의 경우, 대부분 대지를 매입한 건축주가 우리의 이전 작업들을 살펴 본 후 문의를 남기면서 시작된다. 이후 서로 대화를 나눈 뒤, 방향을 잡고 설계 작업에 들어간다.
후암동 ‘키다리 집’의 경우, 이전에 우리가 설계한 성북동 주택(하얀 여름)의 공간 활용이나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들어 건축주가 연락을 했다. 하지만 대지의 크기나 형상이 협소하고 까다로운 조건이어서 협소주택의 특성상 본격적인 설계 작업 이전에 사전 검토 및 기본 계획을 먼저 진행했다. 가능성을 확신하고서야 본격적인 설계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평소 후암동을 좋아했지만, 집의 대지를 처음 보았을 때는 너무 좁은 땅이라 솔직히 당혹스러웠다. 이전에 작업했던 가장 작은 협소주택의 대지 면적이 14평 정도였는데, 이 땅은 공부상 면적이 12평이었다. 도로 확폭과 도로 가각전제를 거치면, 실제 건축 가능한 대지 면적은 9평으로 줄어 들었다. 여기에 건폐율 60%를 적용하면 가용 건축면적은 5평 남짓했다.
다행스럽게도 요구된 건물 프로그램이 1인이 거주할 공간 15평과, 추후 가게 운영을 위한 1층 상가 공간 4.5평 정도여서 새로운 도전을 위한 설렘이 존재했다.
채워가는 집
1차 계획안은 기초적인 자료를 통한 기본적인 구성과 볼륨, 면적 등을 파악한 건축가의 해석이 들어갔다. 본 설계는 건축주의 구체적인 요구사항을 반영해 방향성을 정리했고, 이를 바탕으로 더욱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구성을 짰다. 건축주가 정리해서 보내준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삶의 공간은 살면서 채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큰 창문이나 발코니 등을 통해 주변과 연결된 느낌이면 좋겠습니다. 작은 공간으로 인해 느껴질 수 있는 답답함 같은 것을 창을 통해서 최소화하고 싶어요. 계단 아래의 부분이나 모서리 등 공간을 알차게 활용하고 싶습니다. 1층의 층고 조절을 통해서 상가로서의 활용성도 강화하고 싶습니다.”
건축주를 요구를 반영해 1층에는 작은 가게를 구성했고, 대지의 높낮이 차이를 이용해 주택 내부의 계단 아래 공간은 층고를 확보한 화장실로 만들었다. 대지의 높은 부분에 형성된 주택 현관을 들어서 한 층을 오르면 2층에는 작은 거실과 식당주방이 있다. 3층에는 침실과 화장실이 있고, 남측에 형성된 계단으로 4층까지 이어진다. 4층에는 정북일조사선규제로 인해 셋백setback된 공간을 활용한 작은 테라스와 서재를 마련했다. 북측 모서리를 활용해 책장을 겸하는 돌음계단을 설치하여 옥상 테라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함께 도전한 초(超)협소주택
이 집의 경우 일반적인 가족구성 공간과는 다르게 1인 가구를 위한 협소주택으로, 화장실을 제외하고 모든 공간을 오픈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간결하지만 효율적이며 융통성 있는 구성이 필요했고 협소주택 특유의 세밀한 공간 활용이 요구됐다. 초(超)협소주택이라 부를만한 키다리 집은 주변 건물과의 관계, 대지의 형상과 고저차 역시 신경써야만 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갖가지 공사 여건을 고려하면 단순히 공사비의 문제를 떠나서 건축주와 건축가, 시공자의 도전이 함께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건축주의 취향과 생활 방식을 존중하고 건축가의 새로운 해석이 더해져 설계는 완성됐다. 그러나 협소한 대지 조건으로 시공단계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직면할 수 밖에 없었다. 여러 공정이 동시에 이뤄지기가 힘들었고, 현장 관리도 어려움이 많았다. 공사 기간 역시 애초에 계획했던 것보다 늘어났는데, 건축주는 늘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많은 이의 노력 덕분에 키다리 집은 후암동 골목 사이에 무사히 완성될 수 있었다.
수평은 수직으로, 복도는 계단으로
대부분의 집의 구성은 수평적으로 펼쳐진 공간과 동선의 연결을 위한 복도 및 공용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키다리 집은 층별 면적의 한계로 인해 공용과 전용의 구분이 없으며 계단이 집의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는 주요 공간이어야 했다. 또 가급적이면 가볍고 층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로 계획되어야 했다.
남측에 위치한 계단 공간은 이동이 많은 수직 복도의 기능을 하며 내부 공간과 도시의 전망을 연결해준다. 결국 수평적으로 펼쳐진 공간 구성은 좁은 땅의 키다리 집에서는 계단을 중심으로 구성된 다층의 수직적 공간구성과 형태로 전환되었다.
작은 것과 좁은 것은 다르다
공간이 작은 것과 공간이 좁은 것은 조금 다른 의미이다. 작지만 연결되어 있어 확장감을 줄 때가 있고, 공간은 크지만 왠지 모르게 갇혀있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공간의 지각은 단순한 물리적 크기뿐 아니라 공간이 품고 있는 다양함과 연결된 심리적인 크기가 반영되어야 한다.
후암동 키다리 집은 일반 주택의 수평적인 구성이 다층의 수직적 구성으로 치환돼 있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두 개의 테라스와 창, 내부의 핵심 요소인 계단 공간을 통해서 공간과 풍경이 연결돼 있다. 분명 협소하며 불편함이 함께 하겠지만, 삶의 방식과 태도에 따라 공간은 적절히 비워지고 또 채워질 것이다. 오래된 동네에 또 하나의 새로운 배경으로 조화를 이루며,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이 더욱 알차게 확장될 수 있는 집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