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현기 글 & 자료. 소보 건축사사무소
채광면과 조망면
편집디자이너로 일했던 건축주는 은퇴 후의 삶을 담아낼 집 그리고 자신만의 책을 만들고 싶은 이들을 위한 카페가 융합된 건축물을 계획했다. 대상지는 경기도 양주시 외곽에 조성된 민간개발 주택지다. 특이하게도 언덕의 북사면에 개발되었는데, 한 개 층 정도의 높이 차가 나는 경사지다.
남측에는 이웃집이 들어설 수 있어 채광도 가리고 사생활 침해도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큰 창을 조망이 좋은 북쪽에 놓을지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어도 채광을 위해 남쪽에 놓을지 고민이 들었다. 그러던 중 관점을 바꿔 ‘오히려 모든 면을 대등하게 바라볼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북사면 언덕 위에 수평, 수직 모두 3×3 격자로 이루어진 정육면체를 만들어 올리며 스터디를 시작했다.
3×3에서 3×4로
고전 건축에서는 3×3 격자 평면의 가운데 칸이 가장 높은 위계를 갖는 ‘공간’으로서 중앙홀과 천창이 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여러 층이 적층되는 현대 건축에서 가운데 칸의 위상은 달라졌다. 채광이나 환기가 보장되지 못해 대부분 층을 연결하는 ‘동선’으로 기능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가운데 칸이 다시 공간의 성격을 갖게 하고 싶었다. 가운데 모듈을 또 한 번 쪼개어 3×4 격자 평면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운데 두 개의 모듈은 때에 따라서 합쳐지거나 나누어지고, 때로는 다른 모듈로 번져나가면서 공간의 성격을 띤다.
격자의 확장
중앙 칸에 적용한 쪼개고 결합하는 방식을 건물 전체로 확장해 나갔다. 격자가 나누어지는 곳의 마감재 재료와 바닥 패턴 그리고 가구의 모듈을 달리하여 칸마다 다른 경험을 유도했고 공간을 구분 지었다. 큰 창을 갖기 힘든 남측 방들을 수직으로 확장해 사생활 침해에서 자유로운 고창을, 필요에 따라 합쳐진 공간에는 적절한 기능을 가진 창을 놓았다. 격자라는 틀에서 창을 배치했지만 불규칙한 입면이 만들어졌다. 다만, 조망 기능에 충실해야 했던 북측에는 규칙적인 창을 놓았는데 수직, 수평 모두 3×3 격자에서 시작된 원래의 형태와 구조를 보여주고 싶었다.
노출 콘크리트가 프로젝트의 공간과 구조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재료로 판단하여 마감재로 사용했다. 북측 입면의 격자를 강조하기 위해 투명유리 대신 저반사유리를 사용했고, 유리면을 외장 마감면에 맞췄다. 맑은 날에는 주변을 비추며 매스에 구멍이 뚫린 듯 보여 건축물의 구조가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