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김지아 글 & 자료. 건축동인 건축사사무소
종로구 명륜동
오래된 동네는 뭔가 다르다. 동네 입구의 하마비下馬碑와 3·1운동 집결터 등의 안내문은 동네의 역사를 감지할 수 있는 기록이다. 그러나 비석과 표식 외에는 3~4층 규모의 다세대주택이 이미 점령한 곳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대상지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이다. 산업화 이후 1990년대까지 많은 변화를 겪은 오래된 동네에 지금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프로젝트는 여기서 출발했다.
모여 살기
두 필지가 연접해 있는 부지에 3층 규모의 다세대주택 네 동을 설계할 것을 요청받았다. 오래전부터 집합주택의 연접에 대해 고민한 바, 수평적 세대 분할보다는 수직적 세대 분할을 제안했고, 건축법에서 허용한 ‘맞벽’이라는 제도를 활용해 세대 간 벽을 연접했다. 그 결과 4세대가 수직으로 맞붙어 한 집처럼 모여 사는 집합주택이 탄생했다.
공간을 이루는 방식
공간의 구성은 간단하다. 레벨 차를 이용한 주차장 진입로와 지하의 멀티룸을 마련하고 1층 거실 앞에는 작지만 아담한 정원을 계획했다. 2층에는 침실을 배치하고, 서울과학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루프탑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공간들이 이 집 프로그램의 전부다. 세대가 공유하는 부분은 주차장과 기계실뿐이다.
수직 연결, 다양한 공간의 창출
작은 토지에 주택을 연접시키고 수직화하는 방법에 대한 많은 고민을 했다. 특히 옥탑까지 4개 층을 계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면적을 콤팩트하게 활용할 뿐 아니라 안전도 고려해야 했다. 이에 각 층마다 다른 계단 시스템을 적용하되, 1층의 작은 정원부터 하늘을 볼 수 있는 옥상 정원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수평이 아닌 수직 연결을 적용하자 보다 다양한 공간이 창출되었고, 결과적으로 사업성 역시 더 증가했다.
밈meme, 문화 모방적 유전인자
영국의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생물의 유전단위인 진gene처럼 복제 기능을 하는 문화 요소로 ‘밈’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한 개체에서 다른 지성으로 생각 또는 믿음이 전달되는 모방 가능한 사회적 단위를 뜻하는 밈의 대표적 예에는 지방에 따라 다른 노랫말과 가락으로 복제된 ‘아리랑’이 있다. 유행하는 머리 모양, 패션, 계속 귓가에 맴도는 광고문도 하나의 밈이다. 생물의 유전자처럼 밈도 복제되고 전달된다.
건축 또한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밈을 전달하는 매개자 역할을 한다. 오래된 동네, 이곳 명륜동에서 건축의 밈이 유전되어 이 집에 거주하는 이들이 새로운 역사로 자리하길 바란다.